feat, 부평 쫄면
추억은 정확하지 않다. 오래된 추억일수록 정확성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비록 오래전 추억은 정확성이 제로에 가까워지더라도 아련함은 비례해서 커진다. 대충 “이랬을 거야”라고 생각 조금에 추측으로 채워도 예전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좋다. 특별한 음식을 만날 때면 추억은 방울방울이라 아니라 바랜 흑백사진처럼 쓱 지나간다. 나에게 있어 특별한 음식 몇 가지가 있다. 쫄면, 붕어찜, 엄마의 만두, 아빠가 가져다준 도시락 속 미군부대 도너츠 등이다. 이 중에서 쫄면은 고등학교 때 주말의 추억이 깃들어져 있다.
인천은 쫄면의 태생지다. 어쩌다 실수로 냉면이 쫄면이 되었다는 전설을 품고서 인천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그때의 기계가 여전히 있고 점포도 동인천역 인근에 남아서 여전히 영업 중이라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1987~89년 사이다. 그때의 인천은 인천과 부평으로 심리적인 38선이 그어져 있었다. 동인천, 제물포에 살던 사람들은 부평 사람은 인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부평 사람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무슨 선민의식 같은 것이 있었는 듯싶었다. 그랬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알았다. 그 당시 그쪽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인천에 칼집(칼국수집)이나 신포동 쫄면이 유명했다고 하나 나에게 쫄면은 부평 지하상가, 그것도 본 지하상가에 동떨어진 시장 로터리의 지하상가의 쫄면이 추억 속의 음식이다. 1980년대 부평 지하상가는 지금처럼 미로 형태는 아니었다. 부평역 입구에서 주욱 이어진 직선 형태로 지금은 사라진 동아백화점(동아아파트) 출입구까지가 전부였다. 1995년 부평 역사가 개발되면서 지금의 미로 같은 출입구 31개의 지하상가가 탄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 로터리 지하상가는 홀로 떨어져 있다.
아주 가끔 가볼 때가 있다. 내 고등학교 시절에의 번잡함은 사라졌다. 부평시장이나 미로 같은 지하상가는 여전히 사람이 많아도 그 지하까지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 식당이 있던 자리라 생각이 드는 곳은 더는 문을 열지 않는 옷가게가 되었다. 고등학교 토요일 수업을 끝낸 토요일. 친구 놈들 몇몇이 찾은 쫄면집. 시간을 거꾸로 돌려 88년도로 돌아가 내 놓이던 쫄면을 생각하면 콩나물이 많았다. 달걀은 삶은 것이 아니라 지단이었다. 콩나물이 들어가기에 쫄면의 국물이 우동 수프를 탄 것이 아니라 콩나물 몇 개 뜬 콩나물국이었다. 지금도 맛있는 쫄면 기준에서 콩나물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그때 추억 때문이다. 콩나물이 없거나 혹은 적거나, 콩나물 국이 아닌 우동 국물이 나오면 일단 맛없는 곳이라 치부한다. 콩나물의 아삭함은 쫄깃한 면과 같이 할 때 빛이 난다. 또, 지단은 어떤가! 기름진 지단의 맛은 매콤한 양념과 잘 어울린다. 면을 다 먹고 나면 그릇 바닥에는 약간의 채소와 지단이 남아 있다. 이때는 콩나물 국 먹던 숟가락이 필요한 때. 매운 양념이 흠뻑 묻은 채소와 지단을 숟가락으로 한꺼번에 떠서 입에 넣어야 할 타이밍. 매콤함에, 아삭함에 마무리로 기름에 지진 달걀지단의 고소함이 더해져 환상이었다. 이는 삶은 달걀이 흉내 낼 수 없는 맛이었다. 나중에 모든 쫄면에서 지단이 사라지고 삶은 달걀 반 개로 바뀌었을 때, 노른자를 으깨서 양념과 비비기도 했지만 지단의 고소함은 따라 올 수 없었다.
콩나물 한 봉지 사서 두어 번 콩나물국밥을 만들어 먹었다. 또 국밥 끓이는 싫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쫄면. 마침 원주시장에서 산 토종오이와 집에 있는 청리 토종란도 있으니 쫄면이다. 쫄면 만들 때 가장 핵심인 면, 오이, 달걀까지 있으니 바로 만들었다. 쫄면 만들 때 불편한 것이 면을 한 가닥씩 떼내야 한다는 것. 면을 떼내고, 오이를 썰고 지단을 만들다 보니 드는 생각은 3월에 사놓은 겨울 양배추. 양배추 상태를 보니 괜찮다. 검게 변한 부분만 칼로 도려내고 썰었다. 수분이 증발해 겉은 퍼석퍼석 했지만 안쪽은 단맛이 제법 괜찮다. 달곰한 겨울 양배추에 수분까지 날아갔으니 단맛은 더는 말을 안 해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양념은 온지음의 재래식 고추장, 설탕 조금, 식초, 다진 마늘, 수비초 고춧가루에 간장 조금. 콩나물 삶은 물로 점성을 조절해서 비비기 좋은 상태로 만들었다. 콩나물국과 쫄면, 추억 속 조합의 완성이다. 그때의 맛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추억 속 쫄면보다 지금의 맛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 속 맛에 대한 기억은 내가 만들어 낸 구라다. 살면서 기억에 대해 살을 덧대어 추억이라 포장해서 수정 가능한 상태로 저장한다. 또 다시 살을 덧대야 하니 영구 불변의 상태로는 저장하지 않는다. 이렇듯 추억의 맛은 구라다. 추억은 추억일 뿐, 오늘의 맛을 즐기자.
글을 다 쓰고 나니 헷갈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단은 엄마의 레시피인지 식당 아주머니의 레시피인지 가물가물하다. 어느 쪽이 맞을까? 상관없다. 추억은 색칠 덕지덕지 칠한 구라가 있어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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