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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Sep 28. 2024

에키벤과 공깃밥

에키벤 은 일본 철도와 뗄 수 없는 관계.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에키벤 파는 곳이 표 파는 곳 다음으로 사람이 가장 붐빈다. 방송이든 인터넷에 떠다니는 글을 보면 다양한 맛의 도시락이 사람을 유혹하는 글과 동영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도시락을 기차역에서 고르고 먹는 것, 일본 여행의 버킷 리스트에 올리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먹어보면 어떨까? 먹어 본 이도 있을 것이고 아직인 이도 있을 것이다. 먹어본 이들의 경험담을 보면 대부분 "우와 맛있다"가 대부분이다. 내가 먹어본 결론부터 말하자면 ‘맛이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가 답이다. 몇 번의 경험이지만 다양한 에키벤을 먹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수많은 도시락 중 골라서 먹은, 역사의 레스토랑에서 먹거나 아니면 도시락 만든 것을 먹어 봤다.

검색하면 다양한 에키벤이 나온다. 구글 검색 결과 캡쳐

에키벤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지역별 한정, 특산물을 이용한 각각의 맛을 자랑한다.  2023년 기준 도쿄역 도시락 판매점에서 파는 도시락 종류가 150종이라 한다. 수산물부터 와규까지, 1,000엔부터 3,000엔까지의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으니 기차 여행 묘미의 한축이 도시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도시락 Top 10도 뽑는다고 하는데 2023년에는 1,350엔 가격으로 야마가타 현의 쌀을 사용해서 만든 규동이 1위에 뽑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 판매점에서 사 먹는 도시락 맛은 어떨까? 

다케오 역에서 먹은 도시락은 맛있었다. 따듯한 밥과 국이 나왔다.

처음 에키벤 경험은 규슈 사가현의 3000년 녹나무로 유명한 다케오 역의 도시락이었다. 규슈 에키벤 그랑프리에서 3년 연속 대상을 차지한 도시락이었다. 녹나무, 도서관을 보러 가는 길에 도시락 먹기가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도시락은 따듯하고 맛있었다. 대상 받을만했다. ‘따듯하고?’ 그렇다. 역 내에 식당에서 즉석에서 만든 도시락을 팔고 있었다. 뜨끈한 국물과 샐러드가 같이 나왔다. 물론 공장에서 만든 판매용은 따로 있었다. 따듯한 밥과 국이 있는 것이 냉장고 속 에키벤하고는 맛이 달랐다.두 번째로 맛이 있었다고 느꼈던 것은 미야자키 역에서 산 도시락이었다.  

가격 또한 만들어진 걸 파는 거와 거의 비슷했다. 가격이 1,500엔 정도였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규슈 토종닭을 맛보러 야마자키에 갔다가 가고시마로 돌아오는 길에 샀다. 역 내에 입점해 있는 식당에서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기에 맛있었다. 내 여행의 목적인 미야자키 토종닭으로 만든 도시락이었다. 쫄깃한 토종닭 맛이 제대로 살아 있었다. 이 두 가지를 빼고는 먹었던 에키벤은 맛이 별로였다.


내 경험상 냉장고에 들어 있던 도시락을 먹었을 때는 진짜 맛이 없었다. 한겨울 식어버린 도시락을 먹는 듯한 맛이었다. 쌀이 아무리 좋아도 밥은 단단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편의점 삼각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고 그냥 먹는 맛이라고 여기면 된다. 유통기한 1분 남은 냉장고에 오래 있던 김밥 맛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방송이나 블로그 표현대로 맛있다고 여기는 이유가 궁금하다.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억하심정? 억울해서? 다 비슷한 맛이니 그중에서 좀 괜찮은 맛을 고르는 정도? 잘 모르겠다. 입맛이 아무리 각양각색이라 하더라도 단단한 밥을 씹으면 딱 감이 올 것인데 말이다. 오사카든 아니면 남쪽 하카타역이나 북쪽의 치토세 공항에서 사든 맛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공항에  산 도시락과 하코다테 수산시장에서 산 게살과 새우 도시락

한 번은 딸과 삿포로 여행을 갔다. 공항에 내려 하코다테를 가기 위해 표를 사면서 도시락도 샀다. 나는 홋카이도이니 게의 살로 만든 도시락, 딸은 부타동을 샀다. 둘의 합친 가격은 음료까지 포함 3,000엔 정도 환율이 1,000원이 넘을 때였으니 도시락 가격으로 대략 3만 원 썼다. 그 돈이면 따듯한 밥이 가능한 금액이다. 공항에서 하코다테까지는 대략 4~5시간 소요. 가는 중간에 바다를 보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반쯤 먹다가 닫았다. 밥이 너무 단단했고 올려진 찬은 차가웠다. 이는 게나 돼지고기나 마찬가지였다. 딸아이가 선택한 부타동의 고기는 냉장고에서 구웠다가 남아서 하루 지나 먹는 구운 삼겹살 식감이었다. 올 때는 하코다테 근처 수산시장에서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게살과 새우 도시락을  샀다. 이는 먹을만했다. 

하카타역 수퍼에서 산 580엔 치라시 스시

후에 규슈 갔을 때 하카타 역 지하 슈퍼에서 산 도시락처럼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은 그중에서 맛이 있었다. 식당에서 바로 만들어 준 것에는 비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도시락에 든 밥은 왜 맛이 없을까?

가고시마 중앙역에 산 도시락 또한 맛없었다.

밥도 늙는다. 이를 전분의 노화라고 한다. 전분의 노화를 촉진하는 것은 바로 냉장 온도. 냉장 온도에서 전분은 가장 빠르게 노화가 된다. 한 번 노화가 된 전분은 다시 살리기가 어렵다. 전분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냉동이 확실한 방법이다. 빵 먹다가 남을 때, 식은 밥을 냉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험상 일본에서 먹는 가장 맛없는 밥은 판매점 냉장고에 든 도시락이 아닐까 한다. 저렴한 편의점 삼각김밥과 값비싼 에키벤의 맛의 수준은 비슷하다. 반찬의 양이 다를 뿐이다. 게다가 편의점의 삼각김밥은 밥 수준에서는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이런 일본의 에키벤 수준의 밥을 우리는 매일 식당에서 만나고 있다. 출근하자 밥을 짓고는 공기에 담아 온장고에 둔 공깃밥, 저녁에 팔다 남은 공깃밥 등등 우리 매일 수많은 식당에서 맛없는 밥 경쟁하듯 내주는 공깃밥을 먹고 있다. 

밥에 나온 뜨거운 수분은 차가운 뚜껑을 만나 물방울이 되어 다시 밥으로 떨어진다. 반복하다가 어느새 수분이 날아가면 밥은 뭉쳐진다.

냉장고에 들어 있던 에키벤과 온도는 뜨겁지만 숨이 애초에 죽어버린 공깃밥 공통점은 밥이 참으로 더럽게 맛없다는 것이다. 에키벤을 끌어들였지만, 실제 하고픈 이야기는 우리네 식당에서 공깃밥 좀 치우자는 거다. 식당 쥔장 입장에서만 좋은 것이 공깃밥, 먹는 이 입장에서는 최악이 공깃밥이다. 먹어 본 이들은 다들 끄덕일 것이다. 

밥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퍼서 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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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날이제철입니다


https://brunch.co.kr/publish/book/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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