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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당고수 N잡러 Nov 23. 2022

사춘기 초등학생 딸과 유럽여행 간 아빠 1

구상부터 계획, 예약까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비행기표를 덜컥 예약하고 나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오빠, 바보야? 

매번 윤서랑 나갔다 오면 싸우고 오면서 유럽여행을 간다고? 그것도 10일도 넘게?"


와이프의 첫마디였다.

그러나 와이프가 놓친 것이 하나 있다.

미안하다. 여보야!!


사실 딸과의 싸움이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내가, 바로 내가 엄청스레 떠나고 싶었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디든 훌쩍 가고 싶어서 딸을 이용했다.

I'am so sorry다.



사실 남들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겠어요. 남과 평생을 살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 않습니까...


여행의 불을 지핀 사람들은 역시 주변 지인들이었습니다. 특히 큰딸과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모 신문사 기자님, 동네에서 가장 친한 옆 동사는 어머님께서 올여름과 겨울 유럽여행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나는 왜 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영업자라 시간도 뺄 수 있고(사실 올해 코로나와 경기 침체로 일도 많이 줄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젊었을 때 역마살이 꼈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내가 결혼하고, 사 남매 키우다 보니 여행다운 여행은 엄두도 못 냈고, 가족 여행은 가봐야 기사에 가이드에 수영 사역에 정말 고강도 노동이지 진정한 여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애 키우는 집은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자극받은 저는 또 바로 지르는 성격이라 한 여름 저녁날 바로 항공사 사이트를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바로 예약 잡고, 결제합니다. 물론 와이프의 허락을 받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

'네가 설마 과연 큰딸과 갈 수 있겠니? 가서 생고생을 해봐야 정신 차리겠지....'

와이프 눈을 보니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하지만 일단 항공권 지르고 나니 편해졌습니다.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왜? 항공권 환불 수수료가 아까우니까!!




여행지 결정은 솔직히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첫째 아이가 그리스 로마 신화 광팬이라서 만화책 수십 권도 부족해서 두꺼운 책까지 섭렵했고, 심지어 저는 이름도 헷갈리는 수백 명의 신들의 족보까지 눈감고 줄줄 외우는 지라 무조건 로마나 그리스였고, 그리스는 일단 직항도 없고 첫 여행으로 가기에는 이탈리아 로마가 적합했으니까요.


둘째는 제가 출장으로 네덜란드, 덴마크,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정도는 가봤는데 정작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핵심 국가를 못 가봐서 어느 곳이든 좋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탈리아에 가서 로마, 밀라노, 베니스를 거쳐 파리로 가는 여정을 선택했습니다.(솔직히 갑자기 계획한 여행이라 제가 이탈리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계획을 짜다 보니 피렌체도 빼먹고, 베니스도 1박이라 지나고 보니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다시 갈 이유가 만들어졌지만요)


그리고 파리는 뭐 워낙 유명한 곳이라 박물관, 미술관에 아이가 좋아하는 디즈니랜드까지 5일도 모자랄 정도니까 고민도 없었습니다.


여행지가 정해지고, 항공권 예약이 끝나면 바로 숙박입니다.




호텔 조식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먹는 것만 보면 환장하는 큰 딸을 위해서라면 유럽의 고풍스럽고 고급진 5성급 호텔을 예약해야 하지만..... 1박에 30-50만 원 하는 곳에 굳이 딸과 묵을 이유도 없고, 이렇게 10박 넘게 잤다가는 집안 거덜 나는 것은 순식간이라.. 결국 한식 없이는 못 살고 숙박은 저렴함을 고집하는 아빠의 선택은 한인민박이었습니다. 


일단 대다수 한인민박은 아침을 한식으로 무료 제공합니다. 그리고 가격이 호텔의 1/3 정도라 정말 저렴하고, 위치도 전철역에 가까워서 굳이 호텔에 잘 이유가 1도 없었습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예약이라 맛있는 조식을 준다는 유명 한인민박집에는 예약할 수 없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곳들이어서 후회는 없었습니다.


한인민박 전문 앱 민다, 마이 리얼 트립을 이용해서 이 것도 간단하게 해결되었습니다.(구체적인 것은 차차 풀어놓겠습니다.)




뭐가 이리 쉽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이렇게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것은 솔직히 사춘기가 다가오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와 아빠가 함께 다니면서 겪게 될 정신적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친 망나니처럼 이유도 없이 날뛸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을 경우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거나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도저히 손도 댈 수 없는 어마 무시한 '사. 춘. 기'의 어두컴컴한 암흑세계를 유럽에서 단둘이 엄마도 없이 경험한다는 상상만으로도 후들후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그냥 수수료 물고 취소할까, 과연 내가 중간에 비행기 타고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거 같은 불안함이 밀려오는데...


뭐 진짜 출발 전날까지 취소할까를 진심으로 레알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돈이 무섭더군요. 일단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항공권과 민박집에 결제한 금액은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환불 대금이 팍팍 감소하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마우스에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9월 말 아무도 모르게 인천공항을 떠났습니다. 그래 이와 이렇게 된 거 우리 사이좋게 추억이나 남기고 오자. 우리 둘이 친할 때는 코노도 가고 방탈출 카페도 가고 삼겹살도 먹으러 가고 어느 부녀보다 사이가 조차네~~ 


사실 딸과 단둘이 12년간 여행한 적은 없었고, 이제 진짜 사춘기가 오면 아빠랑은 말도 섞지 않는다는 주변 분들 말을 듣고 이게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딸과 싸워서 죽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타고 혼자 올 상황도 아니고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서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 딸을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면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2편에서는 여행 일정 짜는 얘기 좀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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