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는 우버택시보다 프리나우
"윤서야, 밖에 봐라. 여기가 로마야."
라고 휴대폰만 쳐다보는 아이에게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 나는 '뭐야 이게 우리나라보다 더 못하잖아'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게 사실입니다.
공항기차를 타고 떼르미니역으로 가는 길에 있던 동네들은 솔직히 완전 실망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그냥 상상 속의 로마와 달랐다는 것이 정답이네요. 드라마나 영화, 책을 통해 꿈꿨던 로마는 온도시가 콜로세움과 신전이 그득하고, 모두 공화정 로마시대의 토가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실망이었습니다.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지금의 로마시민들도 유적지라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도심지에 살 수는 없었을 것이고, 우리처럼 대도시는 워낙 임대료도 비쌀 거니 도심지에 근무하는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외곽에 살 것이라 그들의 집이 그렇게 화려할 수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른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짬밥이죠. ^^
공항에서 로마시내 떼르미니역까지는 대략 3-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일단 로마는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 영어로도 표지판이 잘 되어 있고, 영어나 이탈리아어나 비스무리한 단어가 많아서 공항에서 표지판을 따라 공항기차 매표소로 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공항 건물에서 나와 길을 건너서 앞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처음이라 맞는 것인지 잠깐 의심한 것이 전부니까 웬만한 분들이라면 모두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짐이 많으시면 조금 생각해 보셔야 해요. 거기다가 아이까지 있다면....
저와 딸은 제일 작은 기내용 여행용 가방에 위, 아래 각각 세 개 정도의 티셔츠와 바지 일주일치 속옷과 양말, 세면도구, 여벌 잠바 하나씩이 전부였습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코인세탁소도 있고, 필요하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가벼운 티셔츠정도는 사입을 요량으로 최소한의 짐으로 떠나는 것이 목표였어요. 아마 엄마랑 가는 여행이라면 불가능하다는 점, 저도 인정합니다. 게다가 패션테러리스트인 저라서 가능한 것도 인정합니다. 다행스럽게 아빠 닮은 딸이라 3일 내내 같은 잠바에 바지 입어도 아무렇지 않은 딸이라서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가벼운 배낭하나에 기내용 작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인천을 떠나서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당연히 캐리어 찾을 일도 없어서 남들보다 빨리 나왔고, 입국 심사도 간단히 끝났습니다.
아빠짐(입고 간옷은 제외) : 반팔티 3개, 긴팔 2개, 속옷 5개, 짧은 양말 5개, 바지 1개, 바람막이 1개
딸짐 : 긴팔티 3개, 바지 3개, 속옷 5개, 양말 5개, 바람막이 1개
공통짐 : 세면도구, 노트북, 수첩, 필기도구, 충전기, 돼지코
생각해보면 아침이나 저녁에 샤워할 때마다 속옷이랑 양말은 빨았고, 다른 옷은 로마에서 한 번(1만 원 정도 코인세탁소 이용), 파리에서는 한번 민박집에 있는 세탁기를 사용했었습니다.
왼쪽사진 밑에 여행가방 보이시죠? 그게 전부고 옷걸이에 걸린 바람막이와 후드티가 전부입니다.^^
사실 여행 일정 짜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앱은 마이리얼트립이었고,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가이드를 고르는 일도 역시 마이리얼트립을 활용했다. 결론적으로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선택한 가이드는 딱 1명 빼고 거의 완벽하게 좋았다. 어찌 보면 잘못 선택한 베르사유궁전 등을 돌아보는 여행도 내가 무지해서 선택을 잘못한 거지 가이드 잘못은 아니었다.
로마의 첫 여행지는 바티칸이었다. 전날 도착해서 시차 적응도 못해서 새벽 늦게 잠들었는데, 로마의 첫 여행지가 바티칸이고 아침 일찍 가야 많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인터넷 후기를 보면서 마이리얼트립을 뒤지고 또 뒤졌다. 솔직히 말하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고, 후기 숫자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이리얼트립은 선택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여행의 특성상 모객이 넘쳐서 못 받는 경우도 있고, 날짜나 시간에 따라 전부 달라서 예약을 받고 서로 톡으로 주고받은 후에 확정이 되면 안내가 오는 절차다.
떼르미니역과 숙소와는 삼각형 꼭짓점에 있는 지하철역 무슨 그림 앞에서 7시 30분쯤 만났던 기억이 난다. 처음 보는 한국사람들 10명 가까이가 모이게 되면 같이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 궁이 있는 전철역으로 이동하고 거기서부터 줄을 한 시간가량 서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외국사람들은 주로 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가는 사전예약자들이었지만 한국사람들은 이렇게 가이드와 같이 입구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역사와 그림을 보면서 사전 설명을 듣게 된다.
졸린 눈을 비비고 로마라는 생경한 도시, 그것도 TV에서나 보던 교황님이 사시는 바티칸이라는 작은 나라 앞이라고 하니 뭔가 느낌이 생겨야 하나 역시 졸리다. 다행스럽게 아이는 시차도 필요 없어서 잘 자고 일어난 덕분에 가이드의 재밌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잘 듣는 것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서 사진을 몇 장 찍어야 할 건대라는 생각만 드는 아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어느 배경으로 찍어야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만 고민합니다.
바티칸궁 앞에서 몇몇 한국가이드를 봤는데 다들 나름 열심히 잘하셔서 솔직히 어느 정도 댓글과 좋아요가 있는 가이드라면 안심하고 선택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간혹 원래는 경험 많은 가이드를 선택했는데 개인사정으로 땜질로 오게 되는 초짜 가이드만 아니라면 됩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어느 정도 걸러진 가이드는 이미 그 바닥에서 정식 자격증까지 갖추고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장사하는 사람이고, 고객의 평가를 즉석에서 혹은 끝나자마자 댓글과 좋아요로 받는 직업이다 보니 웬만해서는 재미없을 수도 없겠다는 생각도 듭디다.
어찌 되었든 제가 로마첫날 선택한 여행은 마이리얼트립 투어퍼즐 [바티칸+로마 시내투어]"하루완전정복"이었습니다. 당연히 마이리얼트립이나 투어퍼즐에서 1원도 받은 거 없는 사실 주면 받겠지만 주지도 않아서 못 받은 순전히 내돈내산 스토리입니다.
일단 비용은 인당 12만 원이어서 싼 건 아니지만 가격은 다른 투어도 비슷했고, 로마까지 가서 여행하는데 아낄만한 돈은 아니라고 생각되었고, 큰딸을 가르쳐야 한다는 아버지의 교육열을 충족시키기에는 감당가능한 비용이라 과감하게 2인 24만 원 질렀습니다.
오전에는 아침 7시 40분 Ottaviano역 지하통로에서 만남이 시작되어 바티칸 궁 투어가 대략 1-2시쯤 끝난 거 같습니다. 정말 다리는 아팠지만 놀라운 예술작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이드 설명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눈알 굴리고 머리 돌리면서 시간이 지나가더군요.
그리고 점심으로 한 3시간 정도 텀을 두고 오후에 다시 나보나광장에서 만나 판테온, 베네치아광장, 트레비분수, 포로로마노, 개선문, 콜로세움까지 도는 코스였습니다. 마지막은 콜로세움 앞에서 석양이 질 무렵 설명을 듣고 헤어져서 택시를 타고 돌아온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간단히 적었지만 정말 하루사이에 로마를 수박겉핧기식으로 일주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봐서 정신이 몽롱할 정도고 그냥 하루 만에 로마에 적응된듯한 아니 로마에서 오랜 기간 머물렀던 기분이 들정도로 로마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이동수단은 당연히 "도보"랍니다. 골목골목마다 전부 관광명소고 유적지 같은 모습이라 놓치기 싫었고, 실제로도 대부분은 관광지가 숙소인 떼르미니역부근이어서 많이 걸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사춘기 딸이 피곤함 때문에 짜증 날까 봐 전철도 이용했지만 그보다 적재적소에 택시를 탔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할 때는 유럽은 우버택시라고 들었는데, 프리나우와 볼트도 많다고 해서 왠지 국내에서 실패한 우버 서비스에 신뢰가 가지 않아서 저는 프리나우를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했습니다. 강추드립니다.
우선 택시기사 사진부터 등급까지 확실하게 공개되고, 도착지와 출발지를 지정하면 대략적인 비용도 나오고 무엇보다 카카오택시처럼 가고 있는 길을 보여주니까 외국인이고 말도 못 한다고 돌아가거나 바가지요금을 쓸 일도 없어서 솔직히 값비싼 한인택시를 써야 하나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로마에서 한 번도 한인택시를 사용한 적 없이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프리나우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카카오택시를 많이 사용해서 사용법도 동일하고 심지어 모든 이용내역이 기록으로 남아서 혹시나 모를 사고 대비에도 좋고, 불안하고 겁 많은 아빠 혹은 엄마에게 정말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가격도 매일 장거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걷다가 너무 힘들거나 약간 출퇴근 시간이 다가오거나 밤에 무서울 때 번화가까지는 걷거나 전철 타고 내려서 숙소까지만 타다 보니 그렇게 비싸거나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부녀는 로마의 첫날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까사미아민박으로 돌아가 라면을 하나씩 때리고 잠들었답니다. 다음날은 포지타노, 폼페이로 가는 남부투어가 기다기고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 만나서 장시간 버스를 타고 간다는데 인생 사진을 건진 포지타노가 다시 떠오르네요. 정말 '맘마미아'를 수도 없이 외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