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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당고수 N잡러 Apr 21. 2021

모노폴리 로스쿨 출신 변호사, 꽃놀이패 독점의 향유

모든 장사꾼의 꿈

전화 문의를 하면서 무료 상담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대표님처럼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가 쌓아온 지식과 한정된 시간을 판매하는 것이라 상담료는 반드시 선입금을 원칙으로 하고 입금 후에 상담이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일단 전문 변호사를 찾는다는 건 회사에 매우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고, 웬만한 사람들한테 자문을 구해도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지막으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담료가 비싸서 상담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담료를 듣고 상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지 않고 그저 알아보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내 시간에 가격을 매기는 일이었다. 나의 지식과 시간은 도대체 시장에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했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차츰차츰 시장 상황과 내 지식과 정보의 가격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가격 결정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독점구조였다.


처음부터 시간당 100만 원의 수임료를 받을 수는 없었고, 솔직히 그 정도로 실력이 있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웬만한 식품 사건이라면 행정처분 문서 한 장이나 간단한 사실관계를 듣기만 해도 수 십장에 달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할 수 있고, 그동안 수집해 놓은 각종 판결문과 불기소 사유서를 첨부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서면을 제시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식품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많은 기자들이 자문을 받거나 인터뷰를 따고 싶은 변호사가 되었고, 필요할 때 내 기사를 실어주거나 서로 도울 수 있는 기자도 생겼다. 게다가 각종 방송작가들까지 식품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을 하면서 고마워한다. 처음 변호사가 되고 나서 기자들에게 나를 좀 알아달라고 소개 이메일을 보냈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동료 기자나 작가의 추천으로 연락이 오는 게 다반사다. 어차피 인터뷰 비용을 지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기자나 작가들이 시간을 뺏어 미안해한다.


포털사이트에 굳이 비싼 검색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이미 ‘식품 변호사’나 ‘식약처 변호사’ 등을 검색하면 블로그의 글이나 신문기사가 자동으로 첫 페이지 상단에 위치해 있다. 독점적 지지 덕에 학계, 산업계, 연구기관 등에서도 다양한 자문이나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서 더욱 탄탄하게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그렇다고 넋 놓고 노만 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판례나 전문서를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고, 업계 실무자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이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듣고 나만의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기자나 실무자에게 연락이 오게 되고 즉석에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니 역시 준비된 혹은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독점으로 얻는 장점이 크기는 하나 때로는 사건 당사자 양쪽에서 모두 연락이 와서 난감해질 때도 있고, 업계의 유일무이한 전문 변호사다 보니 글 한 줄, 말 한마디가 매우 조심스럽기도 하다. 모든 것은 득실이 있으니 이 정도는 향유하는 이익을 생각해서 충분히 감내 가능하다. 언제까지 이 생활이 가능할지 누군가 새롭게 독점을 깨고 혜성같이 등장할지 모르는 불안감도 사소하지만 큰 걱정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 식품 사건을 이토록 많이 처리한 그리고 할 변호사는 아직 없었기에 오늘도 묵묵히 처리할 서면을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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