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시기는 고등학교 때였다. 야간자율학습 때 자주 멍 때리고 앉아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곤 했다. 수학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었지만 미처 알지 못한 개념 하나에 넘어지기 일쑤였고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노트 정리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는 시도조차 하기 않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의 암흑기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는 사실을. 화장품 하나 고를 때에도 다방면으로 다 살펴보는 나를 무한정 신뢰하는 동생을 보며 뿌듯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서 여러 생각들을 내려놓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뇌의 생각 담당 구역들이 살아 움직이는 한 절대 멈출 수가 없었다. 이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며 생각을 멈추는 방법들을 실천해 보기도 했지만 타고난 성향을 바꾼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미 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이해해 보기로 한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들을 글자로 옮긴다면 생각 정리도 할 수 있고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이점도 생긴다. 잘하면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취미는 '생각하기', 특기는 '상상하기'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나, 꽤 괜찮은 방법을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