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1 신혜정

by 박주원

Footnote Unit: Interview #1 신혜정 @wantgod21

진행자: 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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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업의 최근 변화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신: 올해 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에도 워크숍을 자주 진행해왔지만, 올해는 특히 장애가 있는 분들과 함께 수업하며 그들의 움직임과 몸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몸과 손에서 전해지는 촉감, 감정들을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몸에 대한 관심’이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사실 이런 관심은 이전부터 차근차근 쌓여오던 것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제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느껴요. 노화, 신체의 급격한 변화, 갱년기 같은 시간의 흐름이 몸에 남기는 흔적들이 있잖아요. 수업에서 만난 분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노화를 새롭게 체감하고 있었고, 아이를 키우거나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들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동료들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를 가볍게 판단해 버린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관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수업을 통해 제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며, 한쪽 시선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감각’에서 출발하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커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경험이 저에게 큰 에너지와 시너지를 주고 있어요. 그 감각들을 작업으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고, 올해의 만남이 저에게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저는 여성이나 노화 같은 주제가 너무 쉽게 ‘카테고리화’되는 흐름이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떤 이슈가 한 번 붐업되면 금세 재미있는 주제가 되어버리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중요한 경험들이잖아요. 그럼에도 사회 안에서 ‘여성성’, ‘노화’ 같은 흐름이 키워드로 너무 빠르게 정리되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각자가 지닌 복잡성과 개별성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작가님은 그런 단순화된 틀에서 벗어나, 그 지점들을 꾸준히,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를 해오셨다고 느꼈어요.


신: 작가들이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 그런 방향으로 푸시를 받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작업을 특정 범주에 넣어 설명하기를 요구받는 상황들이요. 그런데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해요. ‘굳이 그 틀 안에 넣어야 할까? 그리고 작업이 꼭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요. 어떤 작업은 그 틀 밖에 있을 때 오히려 더 정확해지고, 더 살아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거는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제가 유학을 하러 갔을 때도 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분들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정의를 내리게 되면 생각의 확장이 끝나버리는 느낌도 있어서요.


박: 맞아요. 왜냐하면 단어나 언어가 주는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도 전시를 할 때 주제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언어로 규정되지 않을 주제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신: 수업을 듣는 장애가 있는 분들이 모두 다른 장애를 갖고 계셔서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고려할 지점들이 있기는 한데요. 그분들이 매번 오셔서 자신을 열심히 예술로 표현하시는 걸 보면서 저도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다 같이 이 나이대를 지나고 있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그분들의 표현의 지점, 고민의 지점이 저와 비슷하기에 더 애틋한 감정을 갖고 수업에 임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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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손’과 ‘촉감’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신: 사실 손에 대해 언제부터 작업하게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제 손이 예쁜 편도 아니고, 늘 재료를 만지고 만들다 보니 예쁘게 유지되기 어려운 손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손을 예쁘게 가꿔야겠다는 생각도 하진 않아요. 그런데 작업이나 워크숍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많아졌어요. 어떤 사람은 손이 아름답고, 또 어떤 사람은 그걸 자랑하기도 하고, 손의 모양이나 질감도 모두 다르잖아요.

최근에는 손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사람마다 손금이 정말 지문처럼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어떤 책은 여성의 손금은 왼손을 봐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책은 오른손이라고 하고 관상서마다 말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손금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손금을 보러 다닌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손을 들여다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삶이나 시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도구가 되는 것 같아요. ‘삼라만상이 손 안에 있다’라는 식의 말이 왜 생겼는지도 조금은 이해되더라고요.

그리고 손에는 정말 많은 뼈가 있잖아요. 덕분에 우리는 불편함 없이 움직이고 만질 수 있는데, 저는 기능적인 의미보다는 감정이 전달되는 방식에 더 마음이 가요. 누군가와 스칠 때의 감촉, 아이를 안았을 때의 온기, 그런 체온과 부드러움 같은 것들이요. 그런 촉각의 기억이 제게는 더 큰 감정으로 남아요. 발로는 얼굴을 대지 않으니까, 손이라는 기관이 가진 정서적 기능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들이 작업에도 조금씩 들어와요. 2024년 작업에서도 손의 형태를 사용했는데, <본능적인 손>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은 손마다 다른 텍스처를 느끼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천의 질감을 다르게 하고, 안에 철사를 넣어 딱딱한 느낌도 주고요. 손이라는 주제를 통해 다양한 감촉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예민하고,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누구와 관계 맺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손이라는 매개가 필요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손과 접촉, 감촉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에는 접촉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요.


KakaoTalk_20251113_220919201.jpg 신혜정, <본능적인 손>, 2024, 천에 바느질, 인조손, 철망, 혼합재료, 가변크기 ⓒ신혜정


박: 작가님이 손을 직접 만들고, 감각을 많이 쓰시는 작업을 하시니까 자연스럽게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촉감이라는 것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건 출산 이후였던 것 같아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눈·귀·코·촉각 같은 감각들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거의 못 했어요. 그냥 ‘후각은 후각’, ‘촉각은 촉각’ 정도로만 느끼면서 살았고, 제 감각이 전체적으로 좀 무디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출산 이후에는 감각을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몸이 실제로 찢어지고, 양수가 터지고, 통증과 변화가 밀려오는 물리적 경험을 겪으니까요. 이후엔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감각을 쓰는 일이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는 걸 배웠어요. 아이를 만지고, 냄새를 맡고, 움직임을 확인하는 모든 순간이 예민하게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첫째를 낳고 그 감정이 크게 올라왔었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혹시 모서리에 부딪히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 갑자기 크게 올라오는 거예요. 원래 엄청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오감이 너무 열려버린 상태에서 불안이 훅 치고 올라오는 경험을 하니까, “아, 내가 정말 많이 예민해졌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죠. 생각해 보면 저는 예전부터 어떤 강박 같은 게 있었어요. 대학원에서 글자 하나 틀리면 그걸 파고들고, 콤마 찍어야 하는데 마침표를 찍었다는 식의 자잘한 오류를 너무 크게 느끼는 그런 감각이요.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 예민함이 어떤 지점에 과하게 몰려 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아요.

출산 이후 그 감각들이 한꺼번에 열리면서, 예민함과 불안이 더 크게 증폭되었는데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지금은 그게 제 몸과 삶의 경험을 해석하는 중요한 감각적 기반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거의 모든 감각에 무디게 살던 사람이 출산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뾰족하게 사는 연습을 강제로 하다 보니 지난 5~6년이 제 감각을 깨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그게 작가분들을 공부하면서도 도움이 되어요.


KakaoTalk_20251113_221141921.jpg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어린이실험실 전시전경, 2025 ⓒ신혜정


3. 작업 태도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신: 사실 저는 늘 삶, 작업, 일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했고요. 아이도 있고, 결혼도 했고, 가정을 뒤로한 채 미친 듯이 작업만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작업의 태도’에 대해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내년에는 정말 작업만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떠올랐어요. 하고 싶은 건 분명히 있는데, 그동안 일과 작업이 부딪혀서 완전히 못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요. 사실 저는 교육도 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워크숍은 제 작업과 연결되고, 제가 관심 있는 분야를 계속 심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정말 작업실에 오래 머물고 싶은 욕구가 커졌어요. 이 좋은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책 읽고, 공부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요즘의 작업 태도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는 “전시를 많이 하면 사람들이 봐주겠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전시를 해왔거든요. 그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전시를 한 번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면 더 좋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냥 많이 하는 전시가 아니라, 정말 내가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요.

그리고 제 관심사가 넓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걸 잘 좁혀서 작업으로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어요. 몇 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올해는 특히 그 마음이 강해졌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교육도 하고, 새로운 시도도 하다 보니 정작 제 작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게 조금 아쉬워요. 그래서 조금 더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작업의 태도로 삼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