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note Unit: Interview #2 김성미 @sculpus_
진행자: 박주원
1. 종이를 처음 사용하게 된 이유와 재료에 대한 감각을 여쭤봐요.
제가 대학원 때부터 부드러운 재료를 좀 선호했어요. 손이 편하고, 형태를 만지는 데 부담이 없고, 뭔가 계속 붙잡고 있어도 괜찮은 그런 재료들.
돌. 철. 나무 등 단단한 모더니즘 조각 재료와 공정 과정에서 나는 거친 소음과 먼지 등이 제게 안 맞았고 본능적으로 부드러운 재료 – 비닐, 라텍스. 천 등을 사용했어요. 졸업 논문 <부드러운 재료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해석 –지도교수 김영원 1999년>을 준비하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부드러움에 대한 기호는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선험적인 기억을 따라갔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 자궁 속 따뜻한 양수, 처음 찬 공기로부터 보호하려던 포근한 몸, 유년시절 즐겨 입던 손수 뜨개질해 주신 스웨터 등… 대부분의 부드러운 촉각에 대한 기억이 유년시절과 여성의 몸으로 부터의 출발이었고 그 기억을 재현하려 부드러운 재료를 선택한 듯합니다.
그리고 종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사실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였어요. 그때는 정말 집 안에서만 작업을 해야 하니까, 냄새 나면 안 되고, 소리가 나면 안 되고, 먼지가 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이라는 매체로 들어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칼로 들여다보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쓰면 쓸수록 종이가 가진 그 이중성이 너무 좋은 거예요.
종이라는 게, 어떤 도구가 닿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반응하잖아요. 종이는 표현방법이나 도구에 따라 날카롭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따스하기도 한 서로 상반되는 양면성/ 이중성을 동시에 지녔어요. 그 당시 모더니즘의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이 한 장의 종이는 그 양면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거죠. 처음에는 환경적 요소로 선택한 재료였지만, 사용하면서 제 생각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재료라는 생각이 들어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살짝 누르면 부드럽고, 세게 누르면 날카롭고, 빛에 따라 따뜻해 보이기도 하고, 또 생각보다 차갑게 보이기도 하고. 그때 제가 한참 고민하고 있던 것이 모더니즘적 사고가 너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구조였는데, 그걸 좀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종이가 그런 생각을 담아내기에 딱인 재료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종이를 이리저리 써보면서 여러 물성을 실험했어요. 한지처럼 결이 살아 있는 종이도 써보고, 종이를 아주 얇게 만들어 늘어뜨리는 작업도 했고, 반대로 로얄보드처럼 손으로 가공 가능한 거의 최댓값 두께의 종이도 써봤어요. 로얄보드는 너무 단단해서 15분, 20분만 다뤄도 손이 욱신거려서 한 번씩은 꼭 풀어줘야 해요. 그 정도로 종이라는 재료가 저한테는 ‘만지면서 생각하는’ 재료였고, 몸으로 받아들이는 재료였던 것 같아요.
2. ‘종이조각연습’이나 <몽중헌> 작업, <호흡의 시간> 등에서 종이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형태가 만들어진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그 흐르는 형태는 처음부터 의도 했다기보다, 제가 그 당시에 고민하던 사고와 재료가 만난 결과였어요. <호흡의 시간> 개인전이나 그런 흘러내리는 작업이 있는 전시에서는 그걸 일종의 숲처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안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처럼, 무대 세트처럼. 근데 막상 종이라는 재료로 하다 보니, 사람들은 “어, 들어가도 되나?” 하고 망설이면서 못 들어오더라고요. 그게 오히려 재미 있었어요. 종이라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어떤 선을 사람들이 알아서 읽는 거죠. 그리고 그 ‘흘러내림’은 오린 종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어떤 경계의 개념을 붙잡고 있을 때였어요. 그 사고가 재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 같아요.
사실 이 형태가 시작된 건, 제가 종이를 올려두고 있었는데 친구가 와서 “이렇게 자르고 남겨진 것들은 다 버릴 거야?”라고 한 말이었어요. 근데 그 말이 너무 크게 들렸어요. “완성된 형태만 선택되고 나머지는 버려진다”는 사고 자체가 이미 어떤 주/타자의 관계가 숨어 있는 거잖아요. 이미 어느 쪽에 질서가 있고, 어느 쪽에 우선권이 있고.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을 같이 가져가고 싶었어요. 보이는 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고, 보여지는 건 내가 개입하거나 타인의 의도가 묻어나는 상태잖아요.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던 거고, 그걸 저는 ‘아름다운 수평’이라고 불렀어요. 어느 것도 버려지지 않고, 어느 것도 우월하지 않은 상태.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3. 첫 개인전에서 성별·신체에 관한 작업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나오신 것 같았는데요. 이러한 작업을 하시게 된 맥락이 궁금합니다.
그때는 『이갈리아의 딸들』이 엄청 유행했어요. 다들 읽고 있었고, 저도 재미있게 읽었고.
“만약 이 책처럼 구조를 반대로 바꾸면,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 어떨까?"
“이걸 시각화하면 사람들이 뭔가 깨닫거나 느끼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소설의 배경은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과 지위가 서로 반대인 가상의 세계예요.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브래지어. 코르셋과 같은 형태의 속옷을 남성들이 입고 있죠. 실기실 한켠에서 분홍색 공단과 레이스. 가시철망 등을 이용해 남성용 속옷(*Peho: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속에 나오는 남성용 속옷)을 만들었을 때 당황하는 남학생들의 시선을 느꼈고, 그 때 분명히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요. 대상화 된 몸의 불편함을 체험한 자로서 남성을 대상화해서 이런 옷을 입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이런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했죠. 그때 가지고 있던 몸에 대한 관심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고요.
그리고 그 당시 주로 조각에서 사용한 재료들은—폴리코트 바르고, 깨지지 않게 유리섬유 넣고, 경화제 섞고—정말 인체에 안 좋은 것들이었어요. 냄새도 고약하고, 과정도 힘들고. 그래서 사실 조금 불편했어요. 그래서 저는 부드러운 재료들 위주로 재료들을 찾아보고 있었거든요. 흐름, 녹아내림, 끈적한 감각 같은 것들이 좋기도 하고 그런걸 표현해 보고 싶기도 해서 주로 조소과에서 쓰는 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재료들이 필요했어요. 그때 재료를 묶고 감싸고 봉합하는 행동들이, 나중에 제가 다시 석고붕대를 쓰는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 재료를 사용하고 하는 제스처들이 저한테는 치유, 회복, 보호 같은 의미였던 것 같아요. 어떤 건 숨기고 싶기도 하고, 감싸주고 싶기도 하고.
4. 오래전 여성성을 주제로 시작하신 작업이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하는 작업들, 여성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업들,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사공토크> 등의 활동으로 확장되신 것 같아요.
제가 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었어요. 그 당시 정치. 노동. 통일 운동 등 여러 갈래의 운동이 있었지만, 저는 여학생회 운동을 했습니다. 저희 집이 이남삼녀 중 넷째라 관심과 대접을 받는 아들들과 달리 저는 항상 사각지대에 있었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에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고, 관련 이슈들도 공부했고요.
이때, 1992년에 사공토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스컬퍼스(sculpus)’라는 여성 조각 그룹을 만들었어요. 여학우들과 함께 모임을 꾸렸고, 7–8년 동안 정기전을 계속 했어요. 조소과 특성상 수업시간 외에 선배, 교수님 작업실에서 작업을 도우며 배우는 기술들이 적지 않아요. 체력도 요구하고 밤새며 협업할 때도 있는데, 여학생들은 아무래도 불편하니 그런 기회가 적었어요. 그래서 여학우들 스스로 작업을 고민하고 창작의 기회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선후배 여학우들이 모여 1992년에 ‘스컬퍼스(sculpus) 라는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외부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는 모르나, 자체적으로는 스터디도 하고 전시도 기획하고 의미있는 활동이었어요. 앞서 활동하시는 여선배님들의 큰 지지가 있었어요.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MASS 라는 여성조각그룹인데, 저희와 같은 어려움을 미리 겪으신 분들이라 이해도와 공감대가 높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60–70년대 선배 학번 여성 조각가들과도 이어졌고, 같이 연합전도 하고, 지금도 그분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기획자님이 어느 날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하고 무슨 관련 있어?”
그 말을 듣고 약간 충격이었어요.
내가 하고 있는 운동들이 ‘당사자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거죠.
결혼하고 나서는 작업과 삶에 대한 문제들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고, 출산과 육아도 겹치면서 ‘아, 이게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오는구나’ 하면서 더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 작업의 끈을 놓지 않게 해준 게 ‘야외설치그룹 마감뉴스’였어요. 1년에 한번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바다, 들판, 폐공장, 강가 등 자연 속에서 2박3일 동안 작업하는 야외설치그룹인데, 작업 기간 동안 동반한 어린 자녀들은 서로 돌보며 작업하는 공동 육아 / 작업과 예술을 병행할 수 있는 고육책이었죠. 자연 속에서 설치하고, 자연 소멸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동육아도 하고, 회비로 운영되는 아주 건강한 구조의 모임. 정회원이 27명 정도 되고, 매년 회장을 새로 뽑아서 그 사람이 모든 전시 사업을 맡아요. 아무도 토 달지 않아요. 수평적이고, 서로 돕고, 같이 설치해주고…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는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마감뉴스가 1992년 결성되어 33년째 지속될 수 있는 비결은 수평적 구조이기 때문일 거예요.
2019년부터 시작한 ‘사공토크’는 ‘경력 단절 여성 작가를 위한 연대와 자립’을 목표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경력단절’이라는 제한적 요소가 또 다른 경계와 배척을 낳는 것 같아 그 단어는 빼긴 했지만, 처음에는 그 기준이 분명했죠. 사공토크에서는 작가를 초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아티스트 토크, 무형의 레지던시, 그리고 저희 스스로 기획해서 전시하는 구조 이렇게 3가지를 주축으로 삼아서 활동했어요. 토크를 통해서 정말 좋은 여성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됐고, 스스로에게도 큰 도움이 됐어요. 같이 사공토크를 이끌고 있는 김수진 작가랑 저랑 항상 “우리가 최고의 수혜자다”라고 말했어요. 나누고 돕는 과정에서 저희 자신이 제일 성장한 것 같았거든요.
박: 저는 선생님의 작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여성’이나 ‘생태’라는 단어를 굳이 의식적으로 가져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결이 읽힌다는 점이에요. 선생님이 오랜 시간 관찰해 온 자연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건네는 방식이 단순히 자연을 소재로 삼는 방식과는 다른 깊이를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건 단기간의 경험이 아니라 선생님이 꾸준히 쌓아오신 ‘관찰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작업의 제목이나 시선의 방향도 늘 독특한 중심을 갖고 있고, 이전 개인전에서 꽃잎처럼 떨어지는 형상들이나 판화로 특정 순간을 남기는 방식도 형태를 다시 보게 만드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고 계시다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요즘에서야 조금 이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30대 초반의 제가 상상했던 ‘나’와 지금의 ‘나’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특히 아이를 만나고 나서는 자기 입장이 아니라 타자의 입장을 자꾸 유추하게 되고, 그게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는 걸 요즘 많이 느껴요. 선생님도 삶 안에서 이미 그런 ‘타자의 시선’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작동시키고 계시고, 그게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는 식물을 잘 못 키우지만, 선생님의 작업에서는 생명들이 가진 특성이나 장점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관계 맺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예술에서 ‘모이는 것’은 쉽지만, ‘이어지는 것’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만들어 온 관계들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하나의 ‘역사’처럼 느껴져서 정말 인상 깊었어요. 경쟁과 우정이 종이 한 장 차이인 미술계에서, 선생님은 경쟁을 압박이 아니라 건강한 동력으로 바꾸는 구조를 만들어 오셨더라고요. 서로를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구조로요. 그래서 선생님의 작업들은 개념을 앞세우지 않아도 삶의 결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그로 인해 생태나 여성성을 이야기할 때도 깊이와 설득력을 갖는다고 느꼈어요.
5. 자연·생태·도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최근 전시 관련 단어 중 생태, 인류세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많은 관심으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는데, 전시장에서 식물을 직접 만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개인적인 경험으로 예전 전시장에서 1달 동안 식물을 놓고 고생시킨 적이 있어서 많이 반성했거든요. 제 목적을 위해 생명을 경시. 이용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태’ 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생물의 살아있는 생활 상태잖아요. 작업할 때도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구요. 저는 생태미술을 해야겠다고 의도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냥 식물을 좋아했고, 마감 뉴스 하다 보니 자연 속의 재료들—나뭇가지, 풀, 씨앗—이 계속 눈에 들어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태적인 태도가 생긴 거예요.
또한 팬데믹 시절 시각예술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속에서 만난 작가들과 함께 야외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자연스레 환경오염. 기후위기 등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생태적 태도와 실천에 대한 고민 등을 하며 함께 작업 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재료 선택시 꼭 필요한 것일까? 에서 출발해 자연 소멸 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작업하면서 생기는 부속물들이 자연에 남으면 어떤 영향을 줄까, 그게 순환되지 못하고 흔적으로 남으면 이게 맞나… 그런 고민이 생겼어요. 그래서 요즘은 최소한의 흔적, 최소한의 재료, 혼자 옮기고 설치할 수 있는 규모,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잉크도 인디고로 바꾸고 있고요.
요즘 진행하고 있는 작업 ‘씨앗 주머니’ 시리즈는 식물, 씨앗의 생애가 여성의 삶과 닮았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화려하게 기억되는 꽃과 열매는 아니어도 다음 생을 싹 틔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동과 긴 호흡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싶었구요. 이는 출산을 경험한 여성으로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흐름이라 생각합니다. '생태와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자연스럽게 에코페미니즘으로 연결하시곤 하는데, 어느 기류로 나뉘어 규정되고 싶기보다는 제가 관심 갖고 잘 좋아하는 것 – 식물. 여성. 몸 -에 대한 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6. 식물의 생명력에 대한 관심이 작업과 함께 지속되신 것 같아요.
식물 관련 유튜브나 영상을 많이 보는데, EBS에서 <녹색 동물>이라고 다큐가 있었어요. 식물이 종족보존을 위해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들이 너무 다양하고 과학적이어서 놀랍더라고요. 몸을 비틀어서 탄성을 이용해 튕겨내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에 씨앗을 띄우기 의해 나무가지를 낮추기도 하고 일정 온도가 돼야 터지는 어떤 씨앗은 몇십 년 동안 그대로 있다가 산불이 났을 때 퍼지고…어떤 식물은 40년 동안 물을 안 줘도 산대요. 그걸 보고 생명력 그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가 제 작업을 보고 ‘작업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는데,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제 작업이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이 되고, 작업이 다시 제 삶의 시선을 바꾸고… 그런 순환이 있다는 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의미였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런 식물의 생명력을 옆에서 관찰하며 공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