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5 김수진

by 박주원

Footnote Unit: Interview #5 김수진 @art.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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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업을 오래 해 오시면서 더 능숙해진 것보다 더 조심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조심스러워진 부분은 재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오히려 작업이 타성에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익숙함이 쌓이다 보면 표현 방식이나 형식이 어느 순간 하나의 틀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익숙해지는 순간을 경계하고, 그 안에 스스로가 함몰되지 않도록 계속 의심하며 잠시 멈춰 서서 작업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와 같은 재료를 다룰 때 저는 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각적인 테크닉이나 기술적인 요소들이 그 감각을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작업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제가 아닌 상태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가까이 갔다가 다시 거리를 두는 과정을 반복하며 균형을 조율하는 것이 저에게는 작업 과정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작업이 지나치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작업을 하면서 에스키스와 결과가 거의 동일하게 나오는 방식이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작업을 시작한 이후에는 콜라주와 같은 방법을 활용해 외부에서 가져온 재료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작업의 주체가 저만이 아니라 재료나 외부 요소들과 함께 형성되도록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하나의 의미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물과 이미지, 재료들은 계속 분리되고 변형되며 다른 의미로 이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결과보다는 그 순간의 감각과 과정에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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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감뉴스 등 야외 작업을 하시면서 재료에 자연의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처음에 나무 등의 재료를 어떻게 쓰시게 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나무라는 재료는 저에게 따뜻한 물성을 지닌 존재로 느껴집니다. 야외에서 작업을 하는 ‘마감뉴스’ 활동을 하며 밖에서 작업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야외에서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가 나뭇가지나 버려진 나무, 혹은 죽은 나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 사용하는 대신, 떨어진 나뭇가지나 죽은 나무를 주워 엮거나 꼬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뒤에 보이는 신문 작업도 마찬가지로 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무언가를 엮고 꼬아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쭉 쭈그리고 앉아 반복적으로 하는 작업이지만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몰입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치유와 같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전시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비스듬히》 전시에서는 나무들을 서로 기대어 세워 공간 안에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하나의 구조가 서로 의지하며 서 있기 때문에, 하나를 빼면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방식입니다. 가능하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고, 폐기된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공되고 형성된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에, 작업에서도 재료나 제작 방식의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습니다.

최근의 쌓거나 기대는 나무 작업은 ‘구르놀다’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첫 전시 당시 1층 공간에는 1년간의 워크숍을 담은 아카이빙 설치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시 설치와 공간 운영 속에서 생긴 각목과 파이프 같은 폐기물, 작업의 부산물을 이용해 공간에 스며들듯 하나씩 쌓아 올리기 시작했고, 그 방식이 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작업의 제목인 <닿기 위한 행동> 역시 저 자신을 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저는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고, 나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작업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탐색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예전 작업에서는 개인전 제목이었던 《오만한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처럼 외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최근에는 점점 내부의 이야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적용되는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대한 담론보다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비록 작은 이야기일지라도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거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방식이 저 자신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KakaoTalk_20260312_113105370.jpg 김수진, <녹는 돌 Melting Stone>, 2026, Archival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120x70cm, 플로우앤비트 ⓒ김수진


3. 말씀해 주신 것처럼 작가님이 작품을 하시는 방식 자체가 날카롭다기보다는 엮고 둥글게 하는 방식들을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많이 사용하시는 재료인 신문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제가 사용하는 방식은 말씀하신 것처럼 날카롭게 절단하거나 분리하는 방식보다는 엮거나 꼬고 서로 연결시키는 방식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첫 개인전이었던 《오만한 이데올로기》를 준비할 당시 저는 ‘진리’라는 개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와 사회 속에서 말해지는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었고, 결국 ‘진리는 없다는 것이 진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였던 신문과 TV가 보여주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시 제목인 《오만한 이데올로기》는 대중매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작동하며 사람들의 인식과 현실 이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통해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인 매체였던 신문을 작업의 주요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문이라는 매체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후에는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2018년 이후에는 신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신문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신문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기사 속에서는 종종 하나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일부로만 등장하지만, 사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개별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문 이미지 속 인물들을 분리해 크게 확대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다시 연결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콜라주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문이라는 매체를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제 작업에서 사용되는 재료가 나무였다가 신문이었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 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작업을 통해 계속 가져가고 있는 공통적인 태도는 사물이나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 가능하며 서로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제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고,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KakaoTalk_20260312_112840676.jpg 김수진, <점으로 된 사람들>설치전경, 2025, 엘리펀트프리지 ⓒ김수진


4. 지금의 작업 세계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발목을 잡기도 했던 조건이나 환경이 있다면요?

지금의 작업 세계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저를 붙잡아 두기도 했던 조건은 결혼과 육아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정말 미친 듯이 작업만 하며 지냈고, 논문을 쓰고 개인 작업에 몰두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가족과의 생활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제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언니는 언제 가장 행복해?”라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이후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제가 작업을 계속하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 작업으로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공간 ‘아트 잠실’을 운영하면서 다시 작업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며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동시에 제 작업을 다시 시도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꾸준한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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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가님의 작업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 지금의 작업을 본다면, 어떤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챌 것 같나요?

제 작업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최근 작업을 보며 제가 조금 더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제 자신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분명해졌고, 그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작가 지인은 이번 작업을 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 너무 무겁게 고민하기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반드시 물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더 자유롭게 나아가 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의 마음 상태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 작가가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업을 계산해서 선택하기보다는, 지금의 상황에서 제가 마음이 가는 것, 그리고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맞다고 느낍니다.

결국 지금의 작업은 다른 선택지가 있어서라기보다 지금의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6. 아직 작업으로 만들지 않았지만 계속 곁에 두고 있는 미해결의 질문이 있다면요?

요즘은 ‘없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의 ‘무(無)’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없음’을 이야기하려면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없음’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계속 곁에 두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무중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마치 지구를 떠나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나 자신을 조금 떨어진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아주 작은 점, 어쩌면 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여기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모순적인 감각 속에서,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이것은 어떻게 보일까, 우리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하는 질문을 계속 떠올리게 됩니다.

아직 작업으로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질문들이 지금 제 곁에 오래 머물러 있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7.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와서 오히려 새로 생긴 압박이나 의무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아직 스스로를 어떤 ‘확고한 작가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결국 작업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도약하듯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업을 쉬었던 시간도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적으로 채워진 부분도 분명 있지만, 동시에 경험이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쌓아가야 할 것들이 많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저보다 나이가 어린 작가라도, 작업을 놓지 않고 더 긴 시간 동안 지속해 왔다면 저보다 더 많은 작업의 시간을 살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나이나 위치로 어떤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작업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계속 탐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느낍니다.

KakaoTalk_20260312_112638633.jpg 김수진, <닿기위한 행동_채집된 부산물>, 2024, 폐기물, 계단아래 가변설치, 아트잠실 ⓒ김수진


8. 지금의 작가님이 과거의 본인에게서 가장 단호하게 수정하고 싶은 작업 태도가 있다면요?

과거의 제 작업 태도에서 가장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지나치게 계획적인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조금 더 충동적이고, 그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는 태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더 열어 두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작업하는 경험이 저에게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감뉴스’와 같은 그룹 활동이나 야외 작업은 저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내에서 혼자 작업할 때는 내가 가진 재료와 방식 안에서 계속 매너리즘을 경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장소나 환경 속에서는 그걸 조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공간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 두게 됩니다.

저는 작업이 결국 ‘현재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매 순간 지금의 상태에 집중할 수 있다면, 나중에 길을 잃었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계획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성향을 조금씩 거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특정한 계획을 완성하기보다는, 공간과 상황 속에서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려고 합니다. 전시가 끝나면 작품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경험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스스로의 상태가 오르내리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변화를 그대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또 이런 상태가 왔구나’ 하고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죠. 결과를 미리 예측하며 집착하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를 지켜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믿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업 자체는 혼자 하는 일이지만, 전시는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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