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4 백연수

by 박주원

Footnote Unit: Interview #4 백연수 @yeonsubaek




1. 작가님의 작업은 보통 어떤 질문이나 감각에서 출발하나요?

제 작업은 명확한 개념이나 질문에서 출발하기보다는 몸에 먼저 와 닿는 감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마주치는 대상이나 시각적 요소,경험들이 감정의 결을 만들고, 그 결이 어느 순간 불쑥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집니다.

저는 개념을 먼저 설정해 작업을 진행하는 편은 아닙니다. 때로는 주제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표현하고 싶은 대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작업 과정에 들어가면, 나무라는 재료가 강하게 개입하면서 처음의 생각과 감각들이 뒤섞이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특히 나무의 성격에 집중합니다. 나무는 매우 많은 변수를 지닌 재료입니다. 나뭇결의 흐름, 밀도, 건조 상태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달라지고, 처음 의도했던 형태가 수정되거나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나무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 또한 작업 안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작업 현장에서의 감각적 경험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톱질을 할 때의 진동, 끌과 망치가 부딪히는 소리, 나무에서 나는 냄새, 손끝으로 전해지는 촉감은 나무를 단순한 재료가 아닌 하나의 존재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감각들이 축척되면서 작업의 방향과 분위기를 형성하고, 제 작업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2. 지금까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관심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상의 총체적인 흐름은 어떤 식으로 작업에 남았고, 현재 작업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관심사는 결국 삶입니다. 일상은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탄생과 성장, 관계와 감정, 그리고 죽음까지도 모두 일상의 층위 안에 존재합니다. 저는 제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감정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선택한 존재가 나무였습니다. 저와 나무,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언제나 하나의 삼각 구도를 이룹니다. 어떤 작업에서는 나무의 물성이 중심에 서고, 어떤 경우에는 저의 노동과 행위가 더 강하게 드러나며, 또 어떤 작업에서는 주제가 전면으로 부각됩니다. 이 균형은 작업마다 달라지지만, 세 요소의 긴장과 관계 속에서 작업은 형성됩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우던 시기의 작업에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심리적 경험과 서사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정리하며 보니 주제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그 시기의 내면 상태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간을 통과한 여성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던 지점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결혼과 육아의 시기에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했고, 에너지를 외부보다 가족에게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 시기 저는 사회적 관계보다 일상의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었고, 사물 이미지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의 원목에서 하부는 좌대나 테이블 상판처럼 남기고, 상부를 사물의 형상으로 조각하여 일체형의 덩어리로 완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대부분 수직과 수평이 분명한 안정적인 구조를 취했는데, 이는 불안을 잠재우고 균형을 유지하려 했던 당시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형식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약 2년간은 인체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사물에 비해 감정이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매개였습니다. 이전 작업에서 내부에 머물러 있던 감정들이 신체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나고, 그 정서는 다소 우울한 기조를 띠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내면에 억눌려 있던 불안과 감정적인 긴장이 외부로 표출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작업의 중간 과정에서 즉흥적인 요소가 더 자연스럽게 개입하도록 시도하고 있습니다. 마치 연필로 여러 번 선을 긋듯이 형태를 찾아가듯, 체인톱을 사용해 나무를 드로잉하듯 다루기도 합니다. 사전에 구상된 계획에 따라 완결되는 작업보다, 변화 가능성을 품은 과정 속에서 나무와 부딪히며 생기는 생생한 감각과 감정을 작업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하고자 합니다.


백연수, <Unfinished Scene>, 2025, 소나무, 지름 60x190cm ⓒ백연수


3. 나무라는 재료를 대하시는 태도가 궁금합니다.

나무는 저에게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시간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나무는 사람처럼 태어나 자라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를 다룰 때, 공간 안에 실재하는 물질과 직접 마주하는 감각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인식은 이미 나무 안에 깃들어 있는 형태와 시간의 흔적을 존중하는 태도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나무를 완전히 통제하여 의도한 형태로만 만들어내는 완성보다는, 나무의 성질과 흐름을 작업 안에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형식적으로 완결된 조형을 향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열려 있는 상태를 지향합니다. 다듬어졌지만 완전히 닫히지 않은 형태, 작가의 개입과 재료의 성질이 함께 공존하는 지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무를 대하는 저의 태도는 만들어내는 행위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시간과 물성을 존중하며 그 가능성을 함께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백연수, <슬리퍼>, 2014, 소나무, 각 37x20x33cm ⓒ백연수


4. 나무를 다루는 과정에서 작가의 신체와 노동은 작업 안에 어떻게 남는다고 느끼시나요?

나무를 다루는 과정에서 작가의 신체와 노동은 작업 표면에 중첩된 흔적으로 남게 됩니다. 저는 기계를 통한 간접적인 방식보다 직접 자르고 깎는 물리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 힘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나무 위에 그대로 기록됩니다.

제 작업에서 노동은 단순히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청각, 시각, 촉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나무와 더 깊이 교감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톱이 나무를 가르는 소리, 끌이 결을 타고 들어갈 때의 진동, 나무의 냄새와 가루의 질감은 저를 작업에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감각의 집중은 일상의 시간과는 다른 밀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작업 공간을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처럼 경험하게 합니다. 그렇게 신체와 노동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나무와 제가 만나는 방식이자 작업 안에 축적되는 시간의 층으로 남게 됩니다.



5. 동시대 조각에서 나무라는 재료는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동시대 조각에서 나무는 여전히 유효한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환경적 맥락이나 생태적 관점에서 나무를 다루는 작업들이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나무는 전통적인 재료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해 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동시대 조각의 흐름이 산업적 재료나 기술 중심의 경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나무는 그와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시간성과 촉각성, 그리고 느린 노동의 과정을 환기시킵니다. 이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동시대의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분명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연수, <Emerging Things> , 2025, 오동나무, 135x65x50cm ⓒ백연수


6. 작가님의 작업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시나요?

제 작업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축적’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나무와 제가 맺은 관계의 시간은 결과물 안에 층처럼 쌓입니다. 어떤 감정과 상태로 작업에 임했는지, 어떤 도구를 선택했는지, 힘의 방향과 속도는 어떠했는지 같은 요소들이 나무 위에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고 겹쳐지며, 결국 하나의 형태를 이룹니다. 완성된 조형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 노동의 밀도가 축적된 상태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형태를 만드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시간과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연수, <쌓기연습>, 2024, 캄포, 12x12x160cm ⓒ백연수


7. 앞으로 나무라는 재료를 통해 더 탐구해 보고 싶은 지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재료가 바뀌더라도 유지될 핵심적인 태도는 무엇일까요?

최근 흥미롭게 사용하고 있는 오동나무는 작년 개인전을 준비하며 우연히 만나게 된 재료입니다. 나무마다 밀도와 결이 다르기 때문에 체인톱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채색 기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저에게 하나의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어떤 나무를 만나느냐에 따라 작업의 방식과 기술이 함께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이 열립니다.

앞으로도 나무라는 재료를 통해 탐구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확장입니다. 재료를 일방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의 만남 속에서 작업의 언어가 어떻게 새롭게 생성되는지를 계속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재료가 바뀌더라도 유지될 핵심적인 태도는 분명합니다. 제 작업은 언제나 일상의 삶을 기반으로 할 것이며, 손의 감각과 시간의 밀도를 존중하는 태도 또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물질을 사용하더라도, 몸의 노동과 축적된 시간이 작업 안에 남는 방식을 지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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