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하늘 아래,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길. 그 길 중 하나를 달리고 있었다. 숨이 차서 멈추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을 만큼 위험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어딘가로 도망가야 하고, 그 길은 좁았다. 목적지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 느낌이 그렇다.
달리면서 온 몸으로 느낀다. 시간이 없다. 흙색 하늘, 흙색보다 어두운 흙색 길. 그 위를 달리는 사람들. 내가 몇 사람을 앞서갔고, 몇 사람이 나를 앞서가기를 반복한다. 누구를 앞서갔는지, 누가 앞서갔는지 모른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앞만 보고 달리는데 앞에 뭐가 있는지 안 보인다.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된다. 그 상황에 미친 듯이 매달린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나무인지, 사람인지, 가로등인지. 가로선 몇 개로 느껴지는 색깔들을 보면 내가 빠르게, 엄청 숨차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달리는 길 오른쪽. 커다란 배경 하나가 생겼다. 둥그런 동산 하나가 어느 순간부터 배경이 되었다. 그 배경은 몇 가지 선으로 표현되지 않고 명확한 색을 띤다. 분홍색? 회색? 온 하늘이 흙색으로 가득하고, 그 옆에 흙색 물이 흐르는데 물이 너무 얕아 몸의 거의 대부분이 드러나 있는. 분홍색 고래. 얕은 물에 적응하기 위함이었을까. 가자미처럼, 가오리처럼 납작한 고래.
고래는 나와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멈추어 있었나? 눈이 마주친 것 같다. 나는 못 본 척 지나가지만 달려도 달려도 고래는 내 오른쪽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달리고 있는 게 맞나? 저 고래는 왜 저기로 가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이리로 가면 살 수 있나? 고래는 저렇게 있다가 죽는 건가. 쟤는 죽는 수밖에 없는 건가.
달려도 살 수 없다면 이렇게 달리고 싶지 않은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물 위에서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고래. 길 위에서 헐떡이는 나. 소리가 나지 않는데 헐떡이고 있는 나. 허무함. 혹시나 하는 희망. 못 본 척하고 싶은데 나의 배경을 차지고 하고 있는 고래. 내가 달리는 모습도 명확히 보이진 않는다. 내가 달리고 있으니까. 고래의 모습은 일부가 보인다. 고래는 나의 왼쪽 하늘에서 보는 것처럼 등짝이 잘 보인다. 그런 꿈이었다. 그런 꿈.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 떠오른다. 느낌으로 떠오른다. 나는 어떤 길을 달리고 있는지 모르고 달리고 있다.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고, 거기로 가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죽을 순 없어 달린다.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수없이 무시해나가는 사람들. 그러다 결국 살기를 포기한 것 같은, 무시할 수 없는 고래를 만난다. 분홍고래. 분홍고래는 무시가 안되는데 나는 분홍고래를 돕지 않고 방관한다. 무엇을 위해 나는 달리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