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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나 Apr 21. 2020

엄마의 색

엄마가 대구에 왔다.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부산에서 대구에 오지 못하고 계속 있다가 이번주에 드디어 온 것이다. 


엄마는 보일러를 틀어둔 방을 두고 거실에서 자라고 했다.

원래 거실에서 엄마 아빠가 자고 나는 방에 들어가는데 혼자 자야 제대로 자는 나는 다음날 있을 일이 좀 걱정이 되었지만 원채 오랜만에 엄마를 보는지라 거부하지 않았다. 


불이 꺼지고 술 한잔 한 아빠는 골아떨어지고, 엄마와 나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독립한 집의 이웃 주민들, 할머니들의 길거리 화투소식 등 몇가지 선별된 에피소드를 전달했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세상 제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내 쪽을 향해 누워서 양손을 포개어 들었다. 어두운 그 안에서도 엄마의 눈이 깜빡깜빡거리고 있는게 잘 보였고, 우스워죽겠다는 듯 이불을 잡고 킥킥 거렸다. 소리에 예민한 아빠는 우리들의 수다 데시벨이 높아지면 뒤척거리며 신음소리를 냈고, 우린 10초 정도 정적을 유지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일찍자야 되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자려다가도 이건 들려줘야 하는데 라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말했다. 

이제 진짜 자자.

그래 이제 진짜 자자.

손잡고 자자.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가 갑자기 뿌리치며 말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손을 잡자 하는데? 나는 아빠손 잡아야 되는데!

입술을 실룩거리는 엄마가 자동으로 상상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항상 이말을 한다.

그래도 잡자. 

그러면 엄마는 만족스럽다는 듯 손을 다시 잡는다.

진짜 웃기는 아네. 참네.


매번 같이 잘때 하는 우리의 통과의례같은 제스쳐다. 나도 만족스럽다는 듯 천장을 바라보고 바로 눕고 눈을 감았다. 엄마의 손에서 오는 따뜻함을 느끼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계속 머리속으로 맴돌게 했다. 지금 또 이야기를 하면 밤새야 된다는 걸 알았기에 참았다. 아마 그렇게 한시간은 지났을 것이다.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아직도 안들렸다. 엄마는 아직도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밤새이야기 할까봐 엄마가 잘때까지 가만히 자는 척을 하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손을 꼭 잡고 가만히 있다. 눈을 감고 있었어도 눈을 뜨고 있었어도 엄마는 나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내가 잠들었다 생각했는지 엄마는 똑바로 누워 잠을 청했다.


엄마만의 유쾌한, 따뜻한, 귀여운 그런 색깔이 있다. 분위기라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던 끝에 생각해낸 단어가 색깔이다. 유쾌한 초록색 같기도, 따뜻한 노란색 같기도, 귀여운 분홍색 같기도 한 엄마. 이 세가지 색깔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엄마. 엄마만의 색이 내 손에 스며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색은 그냥 나를 웃게 하고, 그냥 재미있어지게 하고, 그냥 좋게 하고, 그냥 감동하게 한다. 그런 색깔의 엄마를, 엄마의 그런 색깔을 나는 참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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