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읽는 청년 1인
최근에 인터넷을 하다가 '21세기 대한민국 6대 거짓말'이라는 유머 짤을 보게 되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목사부터 팩트체크를 하는 기자까지...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 집단인 의사, 법관, 검사가 어느새 사기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씁쓸하였지만 유머는 유머일 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올라가 있던 내 입꼬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검사의 말이었다. 2016년 나는 형사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남한테 피해만 안 끼치고 평범하게 살면 평생 죄지을 일이 없다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확고한 신념이었는데,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전과자들을 이해 못 하던 내가 전과자가 되게 생긴 것이다.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나는 룸식 호프집에서 저녁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마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주방 쪽에서 좀 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술 취한 여자 손님이 나에게로 와서 애교를 부렸다. 아무래도 술집이다 보니 별별 손님들이 다 있다. 이 정도는 귀여운 축에 속해서 적당히 호응도 해줬다. 마감시간에 가까워지니 손님들이 차례대로 빠져나갔고 나는 혼자 아르바이트 중이었기 때문에 나간 순서대로 방마다 정리를 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을 다 치우고 마감 알바가 해야 할 매장 전체 마감 정리를 한 뒤 새벽 5시가 되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하였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무엇인가 불길한 기분을 잠깐 느끼긴 했지만 그때 당시 이상한 점은 없었다. 찜찜한 기분은 그때 잠깐이었고 퇴근 후 피곤에 뻗어 집에 가자마자 바로 잠을 청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일어났고 내 휴대폰에는 점장님으로부터 검은색 지갑을 화장실에서 본 적이 있냐는 문자가 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 후, 2시간 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어제 나에게 말을 걸었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내 개인 정보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지갑을 본 적 있냐는 연락을 나에게 직접 해왔다. 나는 지갑을 본 적 없다고 하였고 지갑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전해줬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이번에는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형사는 고소인도 별다른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지갑을 돌려주면 괜찮다는 식의 말을 내게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내게 말하였다. 마치 범죄자인 나를 회유하는 듯 말하였다. 나는 매우 어이가 없어 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런데 그 형사는 본인도 역정을 내면서 '그럼 수사를 할 때 모든 사람을 다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하지 그게 아니면 어떻게 수사를 하냐며' 나에게 따져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범죄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용어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헌법에서 기술하고 있는 형사 피고인이란 범죄의 혐의가 있어 검사에게 기소되어 법원의 심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뜻한다. 여기서 유죄 판결이란 실형 선고 판결을 말한다. 내 앞에 있는 수사관은 검사가 아닌 형사라서 그런 것일까? 하물며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잔혹한 살인범이라도 할지라도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데 나는 왜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근현대 법치국가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형사법의 그간을 이루는 대원칙이자 헌법에도 명시된 국민의 기본 권리인데 이러한 원칙이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실제로 무죄추정의 원칙은 재판 당사자인 피고인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검사 등의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의 의심을 받게 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죄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함으로써 법률적 또는 사실적 측면에서 유형이나 무형의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된다는 원칙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이익이란 유죄를 근거로 한 사회적 비난 또는 기타 응보적 의미의 차별 취급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수사관은 고문이나 모욕적 언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통화 말미에 내가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니 직접 차를 끌고 우리 집에 와서 데려가겠다고 했다.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끌려가는 꼴을 보였으면 좋겠냐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다. 나는 더 이상 대꾸를 할 가치를 못 느끼고 '그냥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그때 당시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 했고 형사의 확고한 언행에 잠시 나의 판단력까지 흐려져 결국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더욱이 억울했던 점은 심지어 당시 형사는 명확한 증거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일 통화를 끝내고 출근을 해서 점장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사들은 매장 내 CCTV를 녹화하는 방법조차 몰라 증거 확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띄엄띄엄 영상을 본 뒤 화장실에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이 나라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화장실에서 나온 나의 모습을 보고 걸음걸이가 영 범죄자 걸음걸이 같다며 나를 지갑 도둑 취급한 것이다. 결국 직접 매장 CCTV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보고 내 휴대폰으로 재녹화를 하였다. 법적으로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확인 결과 나 말고도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은 고소인이랑 같은 시간대에 화장실에 함께 있었다. 확실한 증거를 들고 그다음 날 경찰서에 스스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해당 영상을 보여주며 이와 같은 사실을 이야기해 주니 오히려 형사 쪽에서 나에게 증거 제공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언제는 나를 범죄자 취급하더니 그 이후로 자신의 본적과 나의 본적이 같다며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지연까지 운운하며 친근한 척했다.
그 뒤로 경찰서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나는 그래서 그 일이 어떻게 종료되었는지 결과조차 알지 못 한다. 만약 이 당시에 내가 법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면, 나를 지켜주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더라면 형사의 부적절한 언행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늘 후회를 한다. 그때 당시의 나나 지금의 내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나는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혼자 억울함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면 명확한 범죄 행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타인의 범죄 혐의에 대해 내 의견을 굳이 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그저 혐의만 있으면 이미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TV 속 용의자들을 욕하고 범죄자 취급을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언론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사 기관을 포함하여 어쩌면 인간의 몸속 DNA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 상 명시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형사의 마지막 말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만약 내가 진짜 범인이 아니면 어떻게 책임 지실 거예요?"
"범인이 아니면 좋은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