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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Apr 27. 2024

책을 낼 결심

 책을 낼 거다. 3개월간 정한 콘셉트대로 글을 쓰고, 그간 쓴 글을 정리하고 손을 보아서 분량을 만든 후 원고를 완성할 것이다. 그 후엔 출판사에 투고할 것이다. 

 원고가 누군가에게 선택되는 여부는 나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낼 결심이 아니라 ‘원고를 완성해 투고할’ 결심이다.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작정한 대로 매일 쓰진 못해도 그간 꾸준히 글을 써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글쓰기였나? 출판되지 않는다고 모두 소용없는 글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하고 취미나 성취감으로 글을 쓰는 거라고, 쓰는 행위와 쓰려는 노력에 나름의 이유를 갖다 붙이곤 했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읽히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글을 완성한 날이 훨씬 많긴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날도 있고 가끔은 남에게 내보이고 싶은 글을 쓰는 날도 있다.


 세상 어딘가에 내 글을 좋아해 주고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에 공감하며, 나의 글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누군가가 있어 주기를 소망해왔다. 그렇게 내가 쓴 것으로 나를 설명하고 이해받으며 누군가의 삶에 위안과 영감을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야만 한다. 지금처럼 매일 숙제처럼 완성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지인 한두 명이 읽는 것으로는 나의 소망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투고를 결심했다.      

 투고를 위해선 책의 원고가 완성되어야 하고 원고는 책의 전체적인 메시지나 콘셉트에 맞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목차가 필요하고 일정 분량의 글이 필요하다.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낱장의 글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수정할 시간과 노력 또한 요구된다. 


 그간 글을 써온 스타일은 이렇다. 하루에 길어야 한 시간 반, 일상 속에서 건진 단상들을 짧은 분량의 글로 완성하고 제목을 붙여 문서를 저장한 후 블로그에 올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쓴 글들은 파편적이고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곤 했다. 

 원고를 완성하기로 결심한 지금, 글을 쓰는 것보다 그간 써온 것을 다시 읽어 수정하고 파편적인 글들을 정리해서 뼈대를 만드는 일이 더 걱정된다. 그간 엄두가 나지 않고 하기 싫어 미루던 일들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원고가 완성되니까, 책으로 나오든 그렇지 않든 투고라는 것을 해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주말 아침,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평소처럼 5시 50분에 눈이 떠졌다. 가만히 누워 책을 읽었다. 단편 소설 한 편과 산문집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직장인과 시인의 삶을 병행하던 이가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 ‘작가’로 사는 이야기를 읽는 중이었다. 

 읽는 만큼 쓰고 싶다는 생각, 그렇게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 나의 글이 언제든 구매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연달아 들었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동네에 위치한 ‘공유 서재’가 떠올랐다. <책과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라는 콘셉트의 공간 이용권을 구매하고 노트북, 읽고 있는 책과 정리가 필요한 책, 만화를 그릴 도구, 평소 단상을 메모하는 작은 수첩까지 빠짐없이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이용자가 없어 나만의 작업실을 가진 듯한 즐거운 착각 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투고를 위해선 가외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조용히 집중할 공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다 쉬어갈 겸 인터넷 창을 열고 공유 서재의 월간 회원권을 검색해본다.     

 글감을 어렵게 찾아 첫 문장을 시작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 그간 모은 글을 다시 보고 수정하는 것, 완성된 원고를 투고할 출판사 리스트를 만들어 송부하는 것, 일상에서 그럴 시간을 만드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일을 제일 먼저 해보려 한다. 집밖에 나만의 작업공간을 마련하는 것, 월간 회원권을 결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책을 낼 결심은 ‘결재’로 첫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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