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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Apr 22. 2024

나오니까 좋다

 아이에게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집안 정리를 마친 후 막 소파에 일자로 누웠을 때였다. 게임 시간을 마치고 거실로 나온 아이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오늘 도서관 갈까?”였다. 

 그대로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오후와 저녁 시간에는 휴식도, 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가 심심하다거나 답답하다며 짜증이라도 부리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다 결국 파국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과 후 어울리는 친구가  없는 아이의 지루함을 해소할 겸 수영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강습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니 한 주만 잘 버티면 된다. 하교 후 일정이 없는 날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후 첫날이다. 

 

 도서관에 도착해 어린이 열람실로 향하는 아이와 헤어진  2층으로 올라왔다.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아 빈 문서를 열고는 언제나처럼 떠오르지 않는 글감을 고민하며 멍하게 앉아있던 때였다. 

 정면으로 보이는 창문 밖에는 가로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내는 소리가 마치 백색 소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앞뒤, 좌우 모든 방향에 사람들이 앉아있지만 누구 한 명 방해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도 당연히 없다.

 그야말로 조용히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문득 선물처럼 느껴졌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나온 보람은 있었다. 

 

 귀차니즘과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수고에 돈을 쓰고라도 집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 집은 편안한 대신 새로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도 한 공간에 오래 있으면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독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지만, 도서관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똑같은 시리즈의 만화를 반복해서 보거나 다른 아이들을 관찰하며 두세 시간은 거뜬히 머무른다. 가끔 엄마의 기분이 좋으면 아이스크림이나 복숭아 아이스티도 얻어먹을 수 있다.

 이 모두가 엄마와 ‘언제 숙제를 시작할 것인가’하는 눈치 게임을 하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일 테다.

 

 자리에 앉은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첫 문장을 시작하고 마지막 문단을 쓰는 지금까지 집중을 깨는 사소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롯이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시간을 허비한 점, 즉흥적으로 떠오른 것을 쓰느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나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역시 하교 후 일정이 없는 수요일에는 아이와 서점을 찾기로 했다. 아이가 책을 고르고 구입한 걸 읽는 동안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 허락될 것이다.

 그땐, 주어진 시간을 꽉 움켜쥐기 위해 글감을 생각해 놓아야겠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써나가고 결국 글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미리미리 정리해두어야겠다. 

 

 글감부터 찾아야 한다.

 매순간 깨어있으려 애쓰고 남의 말에 더욱 귀 기울여야겠다. 잠깐이라도 걷거나 한적한 곳에 앉아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수첩과 펜을 꼭 챙겨들고 말이다. 

 우선,  좀 더 자주 집 밖으로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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