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20분 전에는 매장에 도착해야 마음이 놓인다.
본격적인 업무와 손님맞이에 앞서 재고빵 빼기, 행주 빨아두기, 빵 네임텍을 구분한 후 유제품과 케익을 냉장고에 진열하고 나면 창문 너머로 출근하는 파트너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도착하고 얼마지 나지 않아 손님이 두 명이나 매장에 들이닥쳤다. 아직 개점 시간이 되지 않아 매장 조명을 켜두지도 않았건만 알아서들 잘 찾아온다.
'아, 벌써 오고 난리야.' ,'여기가 편의점인줄 아나.', '빵 먹고 싶어 밤새 어떻게 참았데?!'
요즘들어 개점 시간 이전 혹은 직후에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보면 저절로 볼멘 소리가 나온다.
파트너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이라 아직 빵들은 빵짝에 실려 진열이 되기도 전인데 손님이 묻는다. "여기서 빵 꺼내가도 되죠?" 기어코 손님은 빵짝을 옮겨가며 빵을 한무더기 담아 계산대로 향해 걸어온다.
아침부터 10만원 너치 빵을 사고 매장을 떠나는 손님을 보며 마스크 안에선 '오늘도 험난한 하루가 예상된다'며 한숨이 흘러나온다.
빵집을 열기도 전에 오는 손님이야 그렇다치고, 문제는 영업시간에 오는 손님들 마저 버겁게 느껴지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구워 나온 빵을 진열하고 포장하는 일도 벅찬데 손님이 몰려든다. 모든 빵들은 사가는 손님을 위해 존재하건만, 가끔은 그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성가시다. 빵 포장 이렇게 밀려있는데 제발 말시키지마, 흐름 끊지마 하는 적반하장의 사고방식이다.
출근 시간에 목이 마르고 허기진 일련의 무리가 다녀간 후 아홉시가 조금 넘으면 잠깐 숨돌릴 틈이 생긴다. 그래봤자 이미 오래전 차디차게 식은 단과자 4종(단팥빵, 소보루, 슈크림, 완두앙금빵)을 포장하고 진열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가 다반사이지만 그 와중에 커피를 마시고 어제 남은 빵을 데워 먹으며 허기를 채운다.
요즘들어 손님들은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직장인 무리가 떠나면 필라테스 수업을 가는 중년 여성들이나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손님들이 틈을 주지 않고 꾸준히 빵을 사러 온다.
손님이 부쩍 많아졌다고 느낀 어느 날, 나와 파트너가 너무 친절했던 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손님한테 너무 잘해줬어! 그래서 그들이 계속 오고 있는 거야!!!
예약도 많고 음료 주문도 많아 평소보다 바쁜 화요일이었다. 퇴근을 한 시간 남짓 앞두었는데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산더미였다. 테이크 아웃 컵에 열라게 얼음을 퍼담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음에 해야할 일의 목록들이 떠올랐다.
커피를 만들고 산더미처럼 쌓인 냉판을 닦으려는데 커다란 헤드셋을 낀 여성이 샐러드를 들고 계산대로 걸어왔다. 매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할 생각인지 음료를 주문한 손님, 헤드셋을 끼고 있어 잘 듣지를 못하신다.
할인과 적립을 물어도 대답이 없기에 급한 마음에 결제를 진행했는데, 그제야 통신사 할인 바코드를 내민다. 바빠죽겠는데 방금전 결제를 취소하는 절차까지 더해져 속이 탄다. 다시 결제를 하는데 손님들이 매장에 하나둘 들어선다. 냉판 닦기는 이렇게 또 순번에서 미뤄지는 거다.
일련의 무리(?)가 떠나고 냉판을 가열차게 닦는데 헤드셋을 끼고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손님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는 너무도 즐겁게 음악을 감상하며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업무를 지연시킨 손님에 대한 원망이 사르르 사그라들었다. 화요일 점심 시간, 파리바게트에 들어와 크랜베리 리코타 샐러드와 빅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먹는 손님에게는 죄가 없다. 나의 존재 이유는 포장되어질 빵이 아니라 그걸 사먹어 매장을 유지시키고 수익을 남겨줄 손님이 아닌었던가.
손님을 응대하며 빵을 포장하고 냉판을 동시에 닦는 신기도 없는데다, 음료를 초스피드로 만드는 재주를 부리지 못하는 나의 죄도 아니다.
그냥 일이 많다. 일은 늘어나는데 직원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었으니 힘들 수 밖에. 결국은 다 돈이 문제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해서 당장 내일부터 손님을 바라보는 눈길이 다정해질 것 같진 않다. 그러기엔 항상 밀린 일이 있다는 게 문제다. 나에겐 포장해야 할 빵들과 정리해야 할 물류, 닦아야할 냉판, 만들어야 할 음료가 너무나도 많다.
요즘 도쿄바게뜨에서의 내 모습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잠깐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여섯 시간의 난리 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