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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Sep 18. 2024

일말의 성취감

 퇴사 욕구를 꾸욱 참고 다시 마음을 잡고 일하는 중이다. 연휴 기간 동안 추석 당일을 빼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두명이 함께 하는 일을 혼자 출근해 마무리했다. 내가 쉬었다면 사장님이 추석 연휴 내내 매장을 지켰을 것이다. 

 근퇴가 확실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타를 세우는 일도 없이, 2월말 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자리를 지키는 나를 사장님은 흡족해 하신다.

 "영아씨 그만두면 안돼.", "영아씨 나랑 끝까지 가자."등 사장님의 칭찬과 격려 섞인 말을 듣고 퇴근하는 날이면 몸은 힘들어도 기분이 좋다. 


 주변에서는 내가 받는 피드백에 돈이나 올려주고 그런 소리를 하라든지, 결국은 너만 이용만 당한다느니 하며 걱정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약간의 성취감을 얻긴 하지만 몸이 너무 고되어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지인들에게 달고 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은 별거 없다. 빵이 나오면 포장을 하고 음료를 만들고 배달 주문을 챙겨 보내고 손님이 빵을 들고 오면 계산을 해준다. 별거 없는 일이라도 처음엔 모든 게 너무 어려웠다. 

 근무를 시작했을땐 손님에게 제휴 할인과 포인트 적립 여부를 묻는 것도 부끄러웠다. 매장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서는 순간이 두려워 함께 일하는 직원 뒤에 숨고 싶었던 적도 여러번이다. 

 주문과 포장할 빵이 밀려 있을 때 손님이 들이 닥치면 속으로 '그만 좀 와라.'하는 혼잣말이 나오긴 하지만 손님을 대하는 게 예전처럼 두려운 일은 아니다. 손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린 것. 일을 하며 얻은 작은 성과 하나이다. 


 아직도 느린 손으로 고생이 심하지만 마지막 빵을 포장하고 제 시간에 매장 정리를 하고 퇴근 시간을 맞는 기쁨도 적지 않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빵 포장도 열두시가 넘어서면 끝이 보인다. 퇴근 시간인 오후 한시까지 못다한 빵포장을 마치고 냉판을 닦아 선반에 넣은 후 오후 판매에 지장이 없게 쇼핑백과 음료 컵과 홀더 등 재고를 채우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된다. 

 바게뜨를 썰어 달라고 요구하는 손님, 케익을 꺼내달라는 손님에 음료 주문, 배달 주문까지 일이 한꺼번에 몰아치면 속으로 절로 '미치겠다'는 말이 나오지만 바쁠수록 시간을 빠르게 흘러 어느덧 퇴근 시간을 맞이한다. 

 퇴근 매장을 떠나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렇게 다섯 번을 보내면 주말이 되고 이걸 몇 번 반복하면 한 달이 훌쩍 지나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석날을 맞았다. 지난 달 말부터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어서 참으로 꿀맛같은 '평일' 휴일이었다. 

 출근을 준비할 시간 즈음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여유를 부리며 읽던 책을 펼쳤는데 몇줄 읽지도 못하고 다시 잠에 빠졌다. 그렇게 침대에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거실에 나와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으며 텔레비전을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 어제 본 걸 또 다시 보며 시계를 언뜻 보니 한 시간이 또 지난 후였다. 

 '지금쯤이면 소보루 빵을 포장할 시간', '케이크에 과일을 올릴 시간', '마지막으로 카페모카 빵이 나올 시간' 등 시계를 확인하며 자동으로 빵집에서의 내 모습이 그려졌다. 

 딱히 한 것도 없이 오후 한시가 되었다. 빵집에서 보낸 여섯 시간과 집에서 보낸 여섯 시간 사이의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여섯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실감한 하루였다. 

 근무 시간 동안 시간 단위로 일을 끊어서 나름 휴식을 취하고 분위기도 전환하리라 다짐을 하기도 했다. 두 시간의 텀을 세 번 보내면 자유를 맞을 수 있다!


 매일 무언가를 마무리하고 일터를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일을 그만둘 수 없게 하는 이유이다. 빵집에서의 하루는 '파리의 토스트'를 시작으로 '카페모카'를 봉투에 넣는 순간 마무리 된다. 

 내일도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운전대를 잡고 초록 신호를 일곱개쯤 받은 후 매장에 도착할 것이다. 밤새 채워진 물통을 비우고 재고를 파악하고 오늘처럼 '파리의 토스트'에 후레쉬 타르타르 소스를 바르며 본격적인 포장을 시작할테고... 

 퇴근 길엔 작은 즐거움도 기다리고 있다. 상호 대차 신청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집에 돌아갈 예정이다.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힘들더라도 힘을 내서 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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