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와 앞치마

by 김모씨

“나이 들어서 일하려면 둘 중 하나야. 빗자루 들거나, 앞치마 메거나.” 촌철살인, 요즘 말로 뼈 때리는 말을 자주하던 지인이 언젠가 했던 말이다. 그 말이 나왔던 장면을 떠올려보면 오후의 놀이터 벤치였고 나는 한 무리의 엄마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집 앞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30대 중반에서 40대 초의 여성들인 우리는 아이들이 등원한 후 카페에 모이거나 하원 후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함께 오후를 보내다 저녁때가 되어 헤어지는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대화 중 ‘일’에 대한 화두가 나왔을 때 회의적인 태도(누가 날 뽑아주겠어)를 취하는 이도 있었고, 누군가는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꼭 다시 일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고 오랜 회사 생활을 결혼과 동시에 그만둔 지인의 저 한 마디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청소부가 되거나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는 일 두 가지 선택지뿐이라니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앞치마를 메던, 빗자루를 들던 내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육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청소와 주방일을 뺀 여러 가지 일을 해보려 많은 시도를 했다.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에서 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어 수업도 했고, 공공기관에서 단기 파견직으로 사무 업무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는 방역 관련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소위 말하는 ‘철밥통’에 큰 꿈을 품고 공무직 필기시험 준비를 했으나 낙방한 적도 있고, 짧은 기간 9급 공무원 대비 인터넷 강의도 들었다. 지인의 빵집에서 일을 도운 것을 계기로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싶어 제빵 자격증을 땄고 계약직 사서 보조로 도서관에서 근무도 했다.

오랜 방황과 시행착오 끝에 잠시나마 정착한 곳은 제과점 아르바이트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시간씩 근무를 하는 그곳을 나는 아르바이트보다는 직장으로 여겼다. 생활이 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른 출근 시간에 지장을 주는 약속을 잡지 않았고 하는 일과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는 데 불만이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5년, 10년을 근무할 수 있지 않을까, 경험을 살려 비슷한 업종을 창업하면 어떨까 어렴풋이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언젠가 일하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다. 빵 포장을 마친 후 지저분해진 작업 공간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은 매일 되풀이되는 일과 중 하나이다. 그날따라 내가 ‘앞치마’도 메고 동시에 ‘빗자루’도 들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지며 몇 년 전 지인이 한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무리 내가 빵집을 직장으로 여긴다 해도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였다. 가족과 휴가를 가기 위해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데다 시급과 주휴수당, 4대 보험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막막했다.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조급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퇴근 후 좀 더 안정된 일을 찾아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경로로 알게 된 지역 여성비전센터란 곳에서는 다양한 직업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는 3개월 과정의 세무 회계과정에 신청서를 내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교육과정에 참여자로 선발되기 위한 면접이라니 형식적일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많은 지원자와 함께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 면접을 봤고 결국 탈락했다. 청년과 미취업자 우선이라는 담당자의 설명이 있었지만, 함께 면접을 치른 이들 가운데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했던 터라 실망이 적지 않았다. 합격자 공고를 확인하고 며칠 후 중장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공고가 나서 확인해보니 ‘청소 소독 관리원 양성 교육생’ 과정이었다.

사설 학원에서 수강료 일부를 자비로 부담하며 수강할 수 있는 비슷한 과정이 많았으나 고민 끝에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사무직으로 재취업하려는 마음을 완전히 접었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결론은 다시 앞치마 아니면 빗자루였다. 이왕이면 짤릴 걱정이 없는 정년이 보장되는 주방일 혹은 청소일을 찾고 싶었다. 당장 떠오른 것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 공무직과 공공기관 미화직이었다. 학교 급식실은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라 미화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공공일자리 채용사이트를 매일같이 들락거렸다.

지난달 공기업 자회사의 하반기 공무직 채용을 확인하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서류합격자는 대전에서 체력시험과 2차 면접을 봐야 했다. 서류 합격을 확인하고 곧바로 체력시험을 준비했다. 체력이 약한 나에겐 결코 만만치 않은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 윗몸일으키기와 악력테스트, 10kg 덤벨을 들고 스쿼트 연습을 했다. 세 종목의 점수를 계산하며 좌절과 희망 사이를 오갔다.

면접을 볼 겸, 가족과 1박 2일 대전 여행을 떠났다. 호텔에서 남편에게 미화직 면접을 보러 간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남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며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면접관으로 미화 일용직이나 기간제 지원자를 심사하던 경험을 돌이켜보며 알토란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원래 공무직은 기간제 경력자를 우선 채용한다는 말과 함께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체력 테스트에서 무난하게 통과해 2차 면접을 치렀다. 우려한 것처럼 경력자들과 함께한 면접이라 잠시 낙담했으나, 아쉬움 없이 대답하고 나와 속은 후련했다. 일주일 후 합격 결과를 확인했고 다음 달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합격 소식을 들은 남편은 정말 될 줄은 몰랐다며, 조금 마음이 복잡해진다 했다. 아들에게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말하게 되었다. 부모의 대화를 들으며 눈치를 챘는지 혹시 엄마가 하려는 일이 ‘청소’냐고 묻는 아이에게 그렇다 하니 조금 슬플 것 같다고 한다. 지금 하는 일보다 편하고 오래 할 수 있고 함께 휴가도 갈 수 있을 거라니 그런대로 수긍하는 듯 보인다.

책상과 모니터와 키보드에서 멀어져 나는 일터에서 빗자루를 들게 되었다. 그 결심과 일련의 행위 뒤에는 그저 안정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지금은 그거면 될 것 같다. 다음엔 무슨 일을 할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그걸로 지금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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