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템플스테이를 하고 왔다. 차를 타고 세 시간가량 운전해 도착해 절 옆에 마련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스님이 이끄는 문화재 투어, 저녁 및 아침 공양, 명상을 체험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1박 2일의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와 나눈 대화다.
드라마에서 모녀가 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장면을 보고 충동적으로 계획한 일정이었다. 별로 공들이지도 않고 일정을 검색한 후 예약 전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다음 주말에 뭐해? 템플스테이 갈래?”
나는 지금껏 엄마와 단둘이 가까운 데라도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최근까지도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어버이날이나 부모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가족이 포함된 일이었고, 주변에 볼 수 있는 다정한 엄마와 딸과 우리의 모녀 관계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지겨워한 적이 많았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감정을 다치게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의 지나치게 사교적인 엄마가 불편했다.
어쩌면 그건 스스로에 대한 지겨움인지도 모른다. 어떤 일에건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상처받아 며칠이고 괴로워하는 소심함과 사람과 어울리는 일엔 영 소질이 없어 여전히 어색하고 숙제같이 느껴지는 게 너무나 지겹다.
과연 엄마와 나는 이 여행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올까, 약간의 설렘과 우려를 동시에 느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장거리 운전을 한 경험이 거의 없어 최대한 방해를 덜 받고자 엄마를 뒷좌석에 앉게 했다. 운전에 집중하라며 조용하던 엄마가 어느 순간 입을 열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점점 안정을 찾아서인지 적막을 깨는 대화가 조금 반갑게 느껴졌다.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한 아빠나 나의 남편과 아이를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아빠를 최대한 오래 집에서 돌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여든이 넘은 아빠는 우리 모녀의 표현에 따르면 그야말로 진짜 ‘상 할아버지’가 되었다. 경미한 사고를 몇 번 겪은 후 많은 세월 자신의 업으로 삼던 운전대를 놓은 게 벌써 오래전 일이며 무릎 통증이 심해 5분 정도 걸은 후엔 한동안 앉아서 쉬어야 한다. 몇 년 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산책길에 넘어져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받은 후 딱 일 년이 지난 후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지셔 얼굴에 똑바로 마주하기 힘들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다니고 약을 챙겨 먹고 매일 정해진 일과를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계시지만 내가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처럼 아빠의 앞날도 조금은 예상 가능한 그것이다.
앞으로 아빠의 삶에서 ‘스스로’의 영역은 줄어들고 돌봄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질 것이며 그러한 변화에 나의 역할을 고민해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상상한 적 없고 어떤 결심해본 일도 없었다. 막연한 그 영역에 대해 엄마의 확고한 목표와 다짐을 들으며 어떤 감정이 들었던가.
그 말을 시작으로 엄마와 나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부모를 돌보는 일에 대해 처음으로 솔직한 생각을 나누었다. 두렵고 막연하기는 하지만 돌봄에 대해 큰 방향과 목표는 다르지 않다는 안도와 함께 엄마와의 대화가 이전처럼 부담스럽지 않다는 발견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숙소 바닥이 너무 따뜻해 예불과 108배 체험 및 인근 명소 등반 일정을 포기하고 서로 잠자기 바빴으며 돌아오는 길 친가 형제자매의 반백 년에 걸친 가정사를 운전대를 손톱으로 누르며 들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의 첫 여행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