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하루만 Nov 18. 2023

글을 써야 내 바닥을 안다.

일주일에 한 번, 글을 꼭 발행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올해까지만

6개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블로그를 운영해 보라는 멘토님의 말도 가볍게 무시한 채 살았다. 나는 회사에서 업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니 글쓰기를 안 해도 되지 않나,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러나 내가 이 회사에서 죽을 때까지 있진 못할 테고 그렇다면 나에게 '회사에서의 글쓰기'를 빼면 뭐가 남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못했다.


진짜 없나?

없을 걸

없.. 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나의 미래를 살짝 엿본 후, '쓰고 발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 업무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개인적인 채널에 에너지를 나눠 쓴다는 사실이 좀 찜찜했다. 죄책감 비스므리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인지, 뭔가 이뤄보겠다는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하지 않은 그 마음은 가볍게 빼기로 날려버리고. 일단 '쓰는 것'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2가지를 정했다. 안 정하면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



발행 기간은 일주일에 한번으로 정했다

우선 발행하는 습관 만들기부터! 일주일에 한 번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는 게 좋고 누워있는게 편하고, 씻는 게 귀찮은 나는 매일 발행은 죽어도 못 하겠고. 2주에 한번은 너무 띄엄띄엄이라 습관이 될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일주일에 1편으로 정했다. 일단 올 12월까지는. (매일 발행하시는 분들, 진짜 존경한다)



어디에 올릴까?

스레드에 짧은 글을 쓸까? 페이스북을 다시 열어볼까?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해 봐? 한 5분쯤 고민하다가 머리르 좌우로 흔들어 방금 전 고민은 털어냈다. 하던 곳에 하자 싶었다. 브런치에서 꾸준히 알림이 오는 것도 한 몫했다.


세소식을 기다린다고? 아닐 걸~ 요즘 읽을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240일! 에이, 내 글이 그리울리가 있나~ 지금은 브런치에 글 쓸 여유가 없다구!









브런치에서 알림 오면 괜히 딴지 걸듯 중얼거리고 쓱 보고 말았다. 어차피 모두에게 똑같이 가는 알림문구일 뿐이니까. 물론 알림을 받기 싫으면 브런치 앱을 삭제하든지 설정에서 조정하면 될 텐데 난 그걸 하지 않았다. 왜 안 했나~ 그 마음을 살펴보니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미련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스티커를 떼고 남은 끈적임같은 미련.


그래서 다시 브런치에 들어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쓰자는 마음으로 '작가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4년 전, 3년 전, 1년 전에 써둔 글. 글자가 있지만 글이라기보단 먼지에 가까웠다. 주변을 향한 치기 어린 화, 날을 바짝 세운 감정, 진지충이라고 욕먹을 듯한 글자들이 난무했다.


딱히 부끄럽진 않았다. 이런 게 '나'라는 걸 인정하면 의외로 속 편하다. 속 편하다고 해서 평온하다기보단 후련함 쪽이 더 가깝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던 사람의 마음이랄까. 작가의 서랍은 나의 대나무숲이었다.


별의 별 지저분한 마음을 다 가지고 있구나 싶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날수록 글이 달라져 있다는 사실이다. 4년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진 않은 모양이다.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푸념에 가까웠던 글은 조금씩 달라져 그것마저도 수용하고 그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실행해 본 것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스스로를 실험용 쥐 대하듯,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시도해 봤던 것들.


서랍 안에 4년 동안이나 묵혀 있는 것들을 마주하니까 역시 난 글을 못 쓴다며 다시는 안 쓰겠다거나 혹은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기보단, 오히려 글을 무조건 써야겠단 생각이 더더더 들었다.(내 글을 봐주시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글을 써야하는 이유, 마음도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단 자신을 위해서다. (남을 위해 살아야만 '잘 살게 되는 세상'이 온다지만..)

기록은 속내를 드러낸다. 내 머리 속에서 떠다니는 생각들이 전부 입밖으로 나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진 사람과 기억 중에 좋은 것만 남기려고 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과거조차 포장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 땐 어쩔 수 없었다거나, 그건 누가봐도 그 사람의 잘못이니까 내가 굳이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든지. 일단 오늘을 살아할 힘이 필요하단 핑계로 지나간 일을 덮어놓고 합리화하기 일쑤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실수를 모두 기록하고 드러내는 것. 과학자들이 실수하는 방법입니다. 어제의 실수를 기록해놔야 오늘 똑같은 실패를 겪지 않아요"                                 

-폴인에 있는 김상욱 교수 강의 내용 중-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끔찍히 싫어한다. 차라리 내가 먹은 마음을 두 눈 똑바고 뜨고 직시하는 편이 낫다. 괴롭지만, 절망스럽지만. 오늘만 살 마음이라면 못할 것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쓴 글은 나의 표지판이 되어준다

글을 쓰면서 거짓말이나 '척'은 할 수 없다. 글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니까. 나는 어떤 시선으로 사람을 보고 있는지, 세상을 향한 내 마음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내가 내 속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건 불행이다. '작가의 서랍' 속 글은 불행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로 가라는 표지판이다. '니 현실은 여기야. 그러니까 저쪽으로 가' 라는 나만의 안내문.



재난 현장같은 마음을 마주 대할 수 있으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냉장고에서 곰팡이가 핀 호박을 꺼내 들여다봐야 버릴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듯이, 화라는 감정에 탔거나, 너무 오래된 감정때문에 썩은 부분을 봐야 마음을 뜯어 고치든지 말든지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써야 한다. 뭐라도. 그러다보면 성숙이란 걸 하겠지. 어른이 좀 돼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몸만 어른인 채로 늙어갈 수는 없다. '어쩌다 어른', '어른이'라는 단어를 보며 '남들도 그렇다잖아. 나도 뭐 어때~' 라며 머물러 있기엔 시간이 별로 없다. 내가 지금 2,30대도 아니고.

0.001mm 만큼씩이라도 괜찮으니까 어제보단 나은, 그제보단 다르게 1년 전보단 큰마음으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태어난 생이고, 생은 한 번뿐인데. 이 기회를 그냥 놓쳐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 죽으면 글 쓰고 싶어도 못 쓴다. 죽고 나면 없어지는 건데! 무조건 쓰고 보자. 살아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