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하루만 Apr 23. 2024

감정표현이 서툰 건 잘못일까?

감정표현이 서툴다. 서툴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욱하지 않고 감정적이지 않은 것이 좋았다. T유형으로 보이는 게 편했다. 오히려 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사니까. 육아할 때처럼 아기들한테 말하듯이 감탄하고 놀라워하며 웃어줄 필요가 있을까? 다 큰 어른들끼리? 굳이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목소리 톤을 높이며 잘했다 말해주고 꼭 그래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감정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는데 지장 없었다. 내가 T유형이고, 그게 편하다고 느끼는 데는 2가지 편견과 1가지 오해가 한몫했다. 



첫 번째 편견_감정은 나쁜 것 

감정은 표현하지 않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감정은 일에 방해되는데, 감정 따위가 뭐라고. 다들 감정적이 되지 말라는 등,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고 감정 다스리는 법을 찾잖아. 그러니까 감정 같은 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내가 intj인 게 딱히 창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f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감정이란 다락방 한구석에 있는 책 같았다. 겉표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돼버린 책. 건드리면 먼지 날려서 싫고 책을 펼치면 뭐가 보일지 몰라 두려웠다. 딱히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그런 것. 



두 번째 편견_감정적인 사람은 처신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

"뭘 잘했다고 울어"

"왜 울어. 뚝 그쳐. 뚝!" 

"호들갑 좀 떨지 마"

"그렇게까지 기뻐할 일 아니다. 또 안 좋은 일이 오니까"

"가만히 있어!"

"여자가 조신하게 있어야지"


기뻐서 폴짝 뛰면 가만히 있어라. 속상해서 울면 울지 마라. 계집애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라는 말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을 보며 같이 웃거나 함께 슬퍼하는 게 아니라 '뭐 저렇게까지 하냐'는 식의 엄마의 말. 그 말을 듣고 나는 '감정 따위는 필요 없는, 그래서 안 느끼고 표현하지 않는 게 좋은 거구나'라는 나만의 생각을 만들었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돼서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고,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썼던 아이의 습(관)이었다. 내가 감정을 모른 채로 살려고 했던 건, 그저 습(관)이었다. 더 이상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버림받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남아있던 거다.



한가지 오해_빼기명상하면서 생긴 착각.

T 유형은 편하다.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생긴다. 그 일에 감정을 섞으면 일이 더뎌진다. 사건과 감정을 분리해서 보면 당연히 감정에 빠지지 않고,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할 수 있다. 일하는 데 있어 감정은 걸리적거리는 거스러미 같았다. 더구나 빼기명상을 하면서 그런 감정적인 것들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상강사한테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혼자서. 또. 착각했다. 

사람마음은 감정적이니까 인간마음을 버리면 당연히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 그래서 성숙해보이는 사람, 모든 감정을 초월해서 그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게 단단한 거란 이상한 편견까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래서 내가 바랬던 인간상

감정 표현할 게 없어서 편한, 그런 사람이었으면 했다.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잘하려면 감정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아지면 일이 진행이 안 됐으니까. 기분이 나쁘면 설거지조차 하기 싫어지니까. 그럴 때마다 이 놈의 감정, 기분 전부 사라지고 차라리 완벽한 기계인 로봇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나를 깊게 돌아볼 생각은 안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불편한 것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냈어야 하는 화조차 못 내는 바보.

그러다 어떤 '일'이 생겼고, 그 일은 내가 화를 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누가 봐도 당연히 화를 냈어야 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했던 패턴대로 그 사건과 내 당황스러움을(왜 당황스러운지 몰랐다) 분리했고 사실 여부만 따져 물었다. 그 후배의 대답이 석연찮았지만 그마저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감정이 뭔지 몰랐으니까. 모르는데 입을 열면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석연찮음'마저 삼켜버렸다.


머릿속에선 내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말이 들렸다. '일단 지나간 일이고, 지금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있다 돌아보자. 지금은 다들 느끼고 있는 그 '기쁜 분위기'를 망치지 말자. 나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 나만'




사무실을 나와서 집에 가는 내내 미뤄두었던 당황스러움을 조심스레 펼쳤다. 화, 슬픔, 속상함. 이것들이 한데 뭉쳐 '쿵' 하고 마음에 떨어졌던 거다. 길 가다 갑자기 하늘에서 큰 바위가 쿵 하고 떨어지듯이. 그래서 멈칫하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잠시 긴장성 부동상태를 겪고 있는 사람처럼. 그러고 있었건 거다. 아깐. 


이렇게 당황스러울 때마다 '아고 많이 놀랬지~ 괜찮아. 다행이다 안 다쳐서. 이건  잘못이 아니야'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면 이렇게 당혹스러울 때마다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아, 내가 놀랐구나, 화가 났구나. 나, 속상한데 괜찮은 거구나. 내 잘못이 아니구나!'라고 인지하며 살았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나에게 그렇게 못해줬다고 해서 아쉽긴 해도 원망스럽진 않다.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내가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내 감정이 무엇인지 바로바로 알아차리는 것조차 어려워한다는 것도 이젠 안다. 그리고 감정을 알고 표현하는게 힘든 게 아니라 어려운 거라서 다행이다. 힘들다는 건, 알지만 하기 싫다는 것이고 어렵다는 건 안해봤다는거니까. 이제부터 배우면 되겠지. 


이번 일은, 이런 나를 바꿔볼 기회인 거고 그걸 인지했다. 그리고 감정표현하는데 방해하는 그 마음을 빼기 하는 방법도 배웠으니까. 더구나 감정표현이 서툰 사람들을 위한 책도 서점에 깔렸다. 아, 유튜브도 있다. 






*상단이미지 출처: 인사이드 아웃2 공식 예고편 캡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