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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Aug 29. 2018

시월드에서 균형 잡기

60만 명이 구독한 며느라기 웹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b급 며느리 영화 등, 결혼 후 겪게 되는 불평등에 반기를 드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아직도 며느리는 시집에서 하인이다. 이혼하지 않는 이상, 무보수 종신고용 정규직이다. 시집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TV 리모컨을 잡고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존재다.


이게 이상한 관습이라는 걸 인지하는 정도까지 왔다. 며느리들 스스로도 자신을 무조건 낮추며 지내기보단 부딪히더라도 할 말은 조금씩 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나부터 뭐든 해야겠단 마음을 꾸역꾸역 먹는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렇지만, 그 흐름에 맞게 흘러가기엔 '나만의 상황'이라는 게 누구나 있다.

가끔 만나는 친한 동생이 요즘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건 알지만 정작 내가 시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섞어 투덜댄다.                                  


 -글, 그림 수신지 <며느라기>  221p -

   

그렇게 지내려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만들어줘야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아니다. 10년 넘게 기다렸는데 안 바뀌는 거 보면 앞으로도 안 해줄 확률이 매우 크다.

내가 하면 된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 근육을 키우자. 

뭘 해서든 일단 나를 단단히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만 있으면 된다. 큰돈 안 든다. 나 같은 경우는 마음빼기 명상을 선택했다.


나를 돌아보는 힘이 커지면 시댁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아차려지고, 알아 차려지면 마음에 두기가 싫다. 마음에 둬봐야 언젠간 또 튀어나올 마음이니. 그럴 땐 잠깐이라도 시간을 찢어 혼자 있는 틈을 만든다. 시댁에선 딱히 혼자 있을 공간이 없어서 차에 5분이라도 앉아 명상했다.      


밥 빨리 달라고 소리치는 시아버지에 대한 내 미움과 시아버지라면 저러면 안 된다는 편견을 명상하며 후딱 버린다. 방금 전 그 미움은 편집되어 사라진 상태가 된다. 안 그러면 그 깨진 마음을 들고 내가 나를 찌르고 있게 되니까. 



밥 빨리 달라, 커피 달라, 김장해라, 뭘 자꾸만 '해달라'는 시댁 식구들 틈 사이에서 명상하는 순간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나에게 맞는 해결책을 4개 만들었다. 그것을 공유하려고 한다. 나같은 며느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우선,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욕 좀 먹다 보니 칭찬하는 사람이나 욕하는 인간이나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저녁, 30여 명의 시댁 식구들 다 앉은 걸 확인하고, 밥상 끝에 겨우 비집고 앉아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을 찰나였다. 시아버님이 물은 안 주고 '지 밥'만 처먹고 있다며 욕을 한다. 가끔 시어니를 통해 맏며느리가 최고라며 칭찬하셨다던 분이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자신의 틀과 맞지 않으면 바로 욕과 화를 던진다.


그 사실만 알아도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 욕하면 ‘아~ 저 분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아서 분노조절에 실패했구나!’라고 이해했다. 물론 욕을 듣고 싶진 않다. 지금은 시아버님이 욕하면 무조건 피한다. 굳이 들을 필요없으니까.



둘째, 남편 동생들에게 굳이 깍듯이 할 필요 없다. 깍듯이 보다는 편하게 대하자. 내 윗사람이 아니다. 며느리인 나부터 아랫사람으로 있지 말자. 며느리인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해 결혼해 준 집안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대 사람으로 적당히 거리 두며 지내면 된다. 굳이 친해지려 애쓰지 말고, 구태여 잘해주기 위해 무리할 필요 없다. 그래 봐야 중요한 순간에 팔은 안 쪽으로 굽는다. 그들에게 며느리는 그 팔의 바깥쪽이다. 인정하자 이 사실을.      



셋째, 남편에게 기대하지 말자.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내 편이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자. 어차피 안 된다. 까짓 것 ‘내가 당신 편 해줄게~’라는 마음으로 쿨하게 놔버리자. 그렇다고 모든 걸 남편 뜻대로 맞추라는 말은 아니다. 남편을 좀 다르게 보자는 거다.


현실을 직시해 보는 거다.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나갈 수 있다. 남편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시부모의 아들이다. 


며느리인 나를 통해 효도를 하고 싶어 하며, 아직도 부모에게서 정신적인 독립을 못한 미성숙한 사람에 불과하다. 아내인 우리가 바라는 건 자신의 부모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이뤄놓은 가정을 우선순위에 놓고 생각하며 책임감 있게 아내와 아이에게 방패막이 되는 행동을 하기 바란다.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큰 바람이라는 걸 결혼 10년 차쯤에 겨우 깨달았다. 남편이 그런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덜 바라게 됐다. 


 

끝으로, 남편이나 시가 사람들보다 내가 먼저다. 시댁에서의 받은 상처덕분에 나를 돌아보게 됐다. 얼마나 열등감이 많은지, 자존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나를. 

그래서 그들에게 좋은 며느리라는 칭찬과 인정을 얼마나 받고 싶어했는지를. 

그게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희망이었는지를.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됐고, 이젠 어디에서도 그 딴건 바랄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도 알게 됐다. 이젠 홀가분하다. 행복 채우는 일에 집중하면 되니까.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산소공급기가 내려올 때, 내가 먼저 쓰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씌워주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내 행복이 먼저 채워져야 나눌 수 있다.

어차피 한국에선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위치가 며느리다. 그러니 욕 안 먹으려고 용쓸 시간에, 시집식구들에게 상처받아서 속상해할 시간에 내 행복에 좀 더 시간을 쓰고, 마음을 내자. 그게 남는 장사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우리 며느리도 지구 상에 딱 한 명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다. 시집 사람들도 딱히 며느리가 싫어서라기 보단 구시대적인 발상에 물들어 습관적으로 내뱉은 말과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분들도 따지고 보면 잘못은 없다. 잘못하고 있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시댁 사람들 입장에서도
서투른 며느리, 어색한 조카며느리, 서먹한 새언니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고 마음이 쓰였을 거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점을 찾아보고 서로 탓하기보다 나부터 내 행복 챙기자. 우리 엄마, 할머니는 아픈 희생을 나눠줬다. 우린 행복을 나눠주는 멋진 여자가 되자. 훗날 우리 딸이 혹시나 결혼했을 때, 시댁 사람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서로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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