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다고 할 것인가

ep.10 안녕하세요, 재혼하는 노산 임산부 입니다

by bella

토요일 새벽 5시, 남편이 조심스럽게 나를 깨웠다.

전남 나주까지 6시간 반이 넘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댁 어머님을 처음 뵈는 날이었다.

세면대 앞에 서서 얼굴을 씻으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떨리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첫 결혼 때 시댁을 처음 방문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떨렸다.

손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밤새 연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음이 고요했다. 준비된 사람의 평온함이 아니라,

이미 한 번 경험한 사람의 담담함이었다.


그 괴리감이 묘했다. 마땅히 떨려야 할 것 같은데 떨리지 않았고,

긴장해야 할 것 같은데 긴장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재혼의 특권일지도 몰랐다.

한 번 겪어봤기에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슬프게도 느껴졌다.

설렘이 없다는 것은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차에 타서 남편을 봤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괜찮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그의 눈빛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임산부인 나를 6시간 넘게 차에 태우고 가도 괜찮을지,

혹시 배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면 어쩌지, 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맞아줄지,

온갖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것이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창밖으로 풍경이 흘러갔다.

도시가 사라지고 산이 나타났고, 터널을 지나면 다시 평야가 펼쳐졌다.

남편이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가겠냐고, 다리가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정말 괜찮았다.

배는 불러와 있었지만 아직 움직임에 큰 불편은 없었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남편의 피곤함이 눈에 보였다. 운전의 피로도 있었지만,

정신적 긴장감이 그를 더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조심해서 가자고.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가 스쳤다.


점심 시간을 조금 넘겨 나주에 도착했다. 작은 읍내를 지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남편이 차를 세우고 긴 숨을 내쉬었다.

대문 앞에 환한 얼굴의 여자분이 나타났다. 시어머님이었다.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어서 와요, 라는 말과 함께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오는 길 힘들었죠, 임산부가 이렇게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어요,

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환대가 담겨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갈하고 깨끗한 거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차려진 집이었다.

시어머님이 소파에 앉으라고 하며 방석을 가져다주었다.

임산부는 허리가 불편하니까 이거 받치고 앉으라고, 다리도 올려놓으라고. 배려가 세심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재혼이라는 내 이력이, 노산이라는 내 조건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시어머님은 나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며느리를 맞이하는 것처럼.

아들이 데려온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가슴이 뭉클했다. 첫 결혼 때 시댁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부담감이 떠올랐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 실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급함.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옭아매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시어머님의 환대는 조건 없이 따뜻했고,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남편을 보았다. 그는 어머니 앞에서 편안해 보였다.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긴장이 풀리고,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효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아끼고,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 애쓰는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아들이 선택한 사람을 믿고 받아들이는 분이었다.


시어머님이 내게 물었다. 입덧은 괜찮은지, 몸은 어떤지, 병원은 잘 다니고 있는지.

임신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는 대답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재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시어머님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이력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분이었다.


1박 2일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무엇을 하게 될까.

시어머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기대되었다. 두렵지 않았다.

첫 결혼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경험이 주는 담담함,

그리고 진심으로 맞아주는 사람 앞에서의 편안함.


재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시어머님은 그 전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생각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재혼하는 노산 임산부, 그것이 나였다.

완벽하지 않고, 상처가 있고, 두려움도 많지만,

그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시어머님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눈을 감았다. 긴 여정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내일 아침이 기다려졌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 soon


[Next ep.11 1박 2일, 그리고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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