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단약 일주일, 나는 괴물이 되어간다
정신과 약을 단약한 지 5일째 되던 날 아침,
결국 나는 출근하는 차 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예고는 없었다. 차체가 덜컹거렸고, 어디선가 누군가의 악취같은 향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상의 모든 감각이 증폭되어 피부 아래로 파고들었다.
6년 동안 화학물질로 쌓아올린 제방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그냥 무너졌다.
눈물은 의지와 무관하게 흘렀다.
손등으로 닦아내도 소용없었다.
새로운 눈물이 그 자리를 채웠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누가 있건 없건 그건 인지되지 않았다.
세상은 흐릿했고, 또력한 것은 오직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뿐이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화면에 글자들이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의미를 잃은 기호였다.
눈은 보았지만 뇌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집중하려 애를 쓰면 쓸 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팀장이 다가와 무언가를 물었다. 어제 부탁한 자료에 관련한 것이었다.
대답을 해야했고 입이 열렸고 말이 나왔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팀장 얼굴에는 의아함이 스쳤고, 그는 곧 자리로 돌아갔다.
동료들이 카페를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볼일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혼자 뭐에 홀린듯 주차장에 가 내 차에 들어가 소리내어 울었다.
약을 먹던 시절의 나는 달랐다. 아침에 5알의 약을 삼키면 세상이 선명해졌다.
업무는 술술 풀렸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자연스러웠다.
저녁 8알의 약은 하루를 깔끔하게 종료시켰다.
전원 버튼을 누른 기계처럼 의식은 꺼졌고, 다음 날 같은 시각에 다시 켜졌다.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통제된 삶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형태를 잃은 진흙처럼,
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자신을 붙잡을 수 없었다.
저녁 7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남편이 돌아보았고,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신발을 벗다가 균형을 잃었다. 나는 보잘것없이 현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편이 다가와 팔을 잡아 일으켜 함께 소파까지 걸어갔다 아니, 걷기보다는 끌려갔다.
물 한잔이 손에 쥐어지고 담요가 무릎 위에 펼쳐졌다.
남편이 옆에 앉았다. 침묵이 흘렀지만 그 침묵은 위로가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남편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말이 터져 나왔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들이었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전혀 모른다는 것,
내가 지금 얼마나 더러운 기분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들이었다.
목소리는 높아졌고, 톤은 거칠어졌다.
남편 얼굴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번졌다.
그것을 본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바로 사과와 자책의 말이 미친듯 밀려나왔다.
남편의 품에 안겨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그것조차 낯설었다.
모든 감각이 왜곡되어 있었다.
단약 7일째 아침, 거울을 보았다.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부은 얼굴, 충혈된 눈, 거칠게 갈라진 입술, 생기없는 피부
그리고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거칠게 엉켜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약 없는 나였다.
인위적으로 조정되지 않은, 화학물질로 포장되지 않은 본래의 나였다.
거울을 외면했다. 침대로 돌아가 출근시간이 다가왔지만
몸은 침대에 붙어 있었다.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움직임 자체가 고통이었다. 존재 자체가 고역이었다.
남편에게 오늘 쉬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거짓 핑계로
회사에는 병가를 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흰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아무것도 없는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전에 생각했던 버린 약들이 생각났다.
일주일 전 버린 하얀 캡슐, 노란 알약, 분홍색 정제들
그것들이 입 안에서 녹는 감촉,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
그리고 30분 후 찾아오는 평온함까지
너무나 선명한 기억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손은 뻗어지지 않았다.
배는 여전히 평평했다. 생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피부 어래 어딘가에 세포 하나가 분열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지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존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오후가 되었다.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 조차 큰 결심이 필요했다.
거실로 나왔다.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참혹하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직 나만 멈춰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공포같은 밤이 되었다. 또 잠이 오지 않았다.
단약 일주일이 지났지만 몸은 여전히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고 또 어둠속에서 시간만 흘렀다.
새별 2시, 침대에서 일어나와 거실로 나갔다.
거실 창문 앞에서 유리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고 싶고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었다.
그 순간 너머의 어둠이 유혹처럼 손짓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침대로 돌아가기 위해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어둠속에서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였다.
약을 먹던 나, 약을 끊은 나, 앞으로의 나 모든것이 불확실했다.
단약 일주일, 나는 변하고 있었다.
감정은 통제를 벗어났고, 이성은 흐려졌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침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내가 아닌 것 같았지만, 동시에 가장 나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약으로 억눌렸던 모든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안, 우울, 분노, 절망 그것들은 6년동안 가라앉아 있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얕고 불안정한 잠이었다.
꿈속에서도 불안은 계속되었다. 추락하고 쫓기는 꿈, 길을 잃는 꿈까지.
출근 준비를 할 때도 옷입는 것, 머리를 빗는 것, 가방을 챙기는것도
모든 동작이 너무나도 느리고 굼떴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 처럼, 공기가 저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10월의 아침 공기가 살을 에었다.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었고, 목표가 있었고, 정상적인 삶이 있었다.
나만 표류하고 있었다.
단약 일주일,
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부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껍데기만 남아 있었고 그 껍데기마저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언젠가 완전히 무너지겠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난 그저 무력하게 그게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 soon
[Next ep.5 약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