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정신과 약을 강제로 단약하다 - 2
잠이 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6년동안 약으로 잠을 청해온 내 몸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겠는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다가, 옆으로 뒤척이다가,
에라 모르겠단 심정으로 핸드폰을 봤다가, 베개를 뒤집어 쓰다가,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눕기를 반복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평소같으면 약 기운으로 혼수상태처럼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몸이 근질근질하고 다리가 저려왔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거실을 서성거렸다.
남편은 옆에서 잠들어 있었고, 나는 홀로 이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쓰레기통에 버린 약이 자꾸 생각나고 그 약이 버려지고 있는 유통경로까지 생각났다.
그때 한 알 정도는 버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당장 잠들 수 있었을텐데.
아니야 참아봐야 해,
배 속에 아이가 있잖아.
그렇게 스스로 되니이며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선 잠이 들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5시반에 눈이 번쩍 떠지고 말았다.
아니, 사실은 떠진 건지 의식이 돌아온 건지 모를 몽롱한 상태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평소 같으면 아침약을 먹고 눈빛이 반짝거리며 살아나야 할 시간인데
지금의 나는 그저 죽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바로 지금 출근을 해야 했다.
남편이 괜찮냐고 물었지만, 나는 괜찮은척 웃으며 집을 나섰다.
출근하는 자가용 안에서 나는 미친사람이나 다름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불안이 밀려왔다.
'내가 이상태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챌까'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겨우 주차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견뎠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집중이 잘 되는게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약 덕분에 머리가 명쾌하게 돌아가 일처리가 빨랐는데,
지금은 간단한 업무도 몇 번씩 다시 확인해야 했다.
동료가 말을 걸면 그 내용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구역질이 나고 눈 초점이 안맞기 시작했다.
입덧인지, 단약 증상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며칠이나 계속될까'
'한 달? 두 달?'
'나 정말 버틸 수 있는거 맞을까'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온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남편이 저녁을 차려줬지만 도무지 한 입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내 옆에 앉아 등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힘들지, 병원에 다시 전화해서 약 좀 먹어도 되는지 물어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김없이 그날 밤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리가 저리고, 몸이 근질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엇보다 불안증상이 심각했다.
이유 없는 불안
그저 불안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안한 그런 느낌.
6년동안 약으로 억눌러왔던 모든 불안과 우울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창백하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있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있었다.
왜인지 얼굴은 잔뜩 부어 있었고, 윗입술이 부어 마치 트롤 같았다.
'이게 나인가? 진짜 여태 약에 가려진 내 본 모습인가?'
약 없는 나.
인위적인 각성 없는 나.
강제로 꺼지지 않는 나.
낯설고 무서웠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싶었다. 보통 사람들이 살고있는 약 없이 사는 삶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
배를 쓰다듬어 봤다.
아직 티도 나지 않는 작은 생명체, 이 아이때문에 시작한 단약이지만
어쩌면 이 아이는 내게 약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약 3일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고통이 계속될 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일단 하루하루를 버텨보기로 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soon
[Next ep.4 단약 일주일, 나는 괴물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