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 여행, 정말 괜찮을까?

소비하고, 반성하고, 또 떠나는 나. 그리고 여행에 대한 고찰.

by 채채



SE-96139DC4-A1E3-4B3C-8CDB-14F5154FB825.jpg?type=w1

치앙마이와 발리 여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엔 출국이 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계획도 안 했다는 것이 포인트.


곧 떠날 여행을 앞두고 설레야 마땅한데, 마음 한켠이 복잡하다. 요즘은 그동안 나의 취미라고 자부할 수 있었던 '여행'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 그 안에는 어쩌면 내가 느끼는 시대의 공기, 소비의 피로, 기후위기 앞에서의 회의가 엉켜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며 오늘의 글을 써 본다.



여행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지만,


SE-84AF82CA-21E1-4871-84C2-FE9298A32FA3.jpg?type=w1
SE-30EB4351-2965-410A-8F55-6A53D009DDE4.jpg?type=w1
연봉의 5% 미만을 여행비로 사용하라는 돈쭐남의 조언..

나는 대학생 때부터 매년 해외여행을 줄기차게 다녔었는데, 이게 과연 '경험소비'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경험이라는 것은 그걸 통해 무언가 나에게 남아야 하는데, 나에게 남는 것은 예쁘게 찍은 사진과 좋았던 감정 뿐이 아닐지, 그리고 사실 나에게 여행은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소비가 아닌지.


나는 코로나가 끝나고 근 3년간 겨울마다 2~3주씩 유럽, 튀르키예,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분명 1년 동안 그 기억으로 참 행복하지만, 그 '행복감'만을 위한 소비가 과연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일 안하고 돈만 쓰면 누가 안 행복하겠어...?) 이게 정말 가치 있는 소비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해외여행을 가는 게 약간 습관같기도 한데, 주변에서 여름, 겨울마다 해외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까 이제 여행을 안가는 게 이상한 느낌이 든달까?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여행 소식을 들으면 나도 떠나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시 인스타 등 SNS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백해무익하다고 느껴진다.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나에게 떠나야한다는 강박을 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외에도 20대 초중반에 다녔던 해외여행과 현재의 감흥이 아주 많이 다른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거의 다 해본 것들이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정도가 더 낮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1년을 정말 치열하게 살다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라서 더 이런 고민이 든다. 크게 경쟁이랄 것 없이 평온하게 살다가 여행을 다녀오니 과연 이것을 나의 삶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나에게 여행은 그냥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고민이 드는 것 자체가 나의 삶의 우선순위에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경제적으로 그저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서,




환경이 걱정된다면서 탄소 배출이 어마어마한 비행기를 자주 타는 나... 평소에는 물건을 잘 구매하지 않지만 여행에는 돈을 아낌없이 쓰는 나... 참 모순적인 인간이야..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032679

“주말만 되면 해외여행 가더니” 이건 몰랐다…중국인보다 더 심하다? [지구, 뭐래?]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8-03_%EC%98%A4%ED%9B%84_5.26.32.png?type=w1

해외여행을 다니며 마음 한 켠에서 나의 이 행동이 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환경 문제이기도 하다. 삼 면이 바다로 둘러쌓인지라 해외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우리나라. 다른 교통수단보다 탄소 배출량이 매우 높은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기에,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환경 보호를 외치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순적인 사람이기에 이 불편한 양심을 가지고 여행에 임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소 구독해두었던 '쓰레기왕국' 유튜브를 보면서 제로웨이스트 여행 준비물을 알아보았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제로웨이스트 여행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래서 발리에서 입을 수영복도 당근으로 구매하고 여행을 위한 새로운 옷들은 구매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거 입자구. (사실 이건 3년 전 유럽여행 갈 때부터 해왔던 일이긴 한데, 여행을 위해 새 옷 사는 건 하지 않는다. 아, 사실 그냥 옷을 잘 안 사기도 함.)

https://www.youtube.com/@trash_kingdom

SE-D8DC80DA-B91D-466C-A35A-2248DCD6EADB.jpg?type=w1

쓰레기왕국의 제로웨이스트 체크리스트!


이번 여행에서 나도 장바구니, 손수건, 바디 비누 등등을 챙겨가려고 한다. 그리고 치앙마이는 비건 음식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비건 식당도 자주 갈 예정. 함께 하는 친구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서 우리의 여행이 기대된다.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 이렇게 완벽하진 않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이렇게 조금 더 책임 있는 방식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작은 실천이어도 내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은 여전히 무겁다. 내가 아무리 신경 쓰고 덜 소비하려 해도, 전 세계의 수많은 비행기와 과잉 소비,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의 활동이 멈추지 않는 이상 이 변화는 너무 느리게만 느껴진다. 나 하나가 뭘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라는 무력감도 스치고, 그보다 더 크게는 이 세상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이 몰려온다.









여행에서 시작된 고민, 그리고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여름 조아 인간'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계절을 '여름'이라고 볼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이건 그냥 기후위기다.


냄비에 들은 개구리처럼 우린 지금 천천히 삶아지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면 인터넷 어디서 본 댓글처럼 지구가 지금 열탕소독 중인데 인간이 눈치 없이 살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기후위기 속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 걱정된다.


SE-64D61F0B-92C5-4BA8-B000-2E4DE7DF7B9A.jpg?type=w1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나의 미래는 물론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를 아이의 삶까지 걱정하게 된다. 미래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지만, 이 상태의 지구에 또 다른 생명을 데려온다는 게 과연 이기적인 선택은 아닐까?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앞으로의 세대는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갈 지 걱정이 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51418&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기후불안으로 결혼·출산 기피... 이미 실존하는 문제"


최근 읽은 기사에 따르면, 지구의 기온 상승이 사람의 공격성과 범죄율 증가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기후 변화가 단순히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안전과 정신 건강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1840

지구가 더워지면 사람도 열받아 폭력 난무한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81316533679890

더위가 강력범죄 부른다?…"날씨 더워지면 총 쏘는 횟수 증가" - 아시아경제



이런 기사들을 검색해볼 것도 없이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만 봐도 그렇다. 무차별 흉기 사건, 폭우로 인한 참사, 곳곳에서 터지는 열사병 환자들. 이 모든 게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변화의 전조처럼 느껴진다.

SE-B9DA93D3-514A-4535-B86A-843AC07A931E.jpg?type=w1
SE-A1DCB8B4-8A66-46AC-A801-3A77B69A3661.jpg?type=w1

사건 사고들은 이미 일상 속에 난무하고 있는 일들이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지금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건지 의문이 든다. 아니면 우리 모두 흐린 눈을 하고 운좋게 살아가고(혹은 살아남고) 있는건지.

IMG%EF%BC%BF9006.jpg?type=w1

입을 벌리고 체온을 조절하는 새를 보았다. 요즘은 비도 안와서 진짜 너무너무 덥다. 바깥에 사는 동물들이 너무 걱정되는 날씨다. 밖에 나가면 바람도 없이 숨막히게 더운 공기. 나는 땀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나간지 1분만에 온 몸에서 땀이 흐른다.


호수공원에는 평소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보인다. 너무 더워서일까?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 공원 바닥에 마른 낙엽처럼 말라붙은 지렁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할 때다.


공원을 걷다가 무심코 땅을 보았는데 죽은 지렁이들이 눈에 밟혔다. 소름돋는 건 정말 말 그대로 한 걸음에 한 마리씩 지렁이가 죽어있는 것이다. 내가 과하게 해석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한 걸음마다 한 마리씩 말라죽은 지렁이를 본 순간, 이상하게도 '이게 미래 생명체들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너무 오싹하고, 너무 안타까웠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54906

폭염 속 지렁이의 떼죽음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이번 여름..

비 와서 숨쉬려고 땅 위로 올라온 지렁이들은 폭염으로 인해 땅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말라 죽는다.


기후 우울, 기후 불안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나는 점점 그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게 느껴진다. 세상은 기후위기가 거짓말이라며 잘만 돌아가기에 내가 유별난 건가 싶다가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자연 재난 속에서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 나만의 감정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여행은 여전히 내게 자유와 쉼을 주는 일이지만 그 자유가 늘 가볍지만은 않다.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해 더 신중해지고 싶은 지금, 여행이라는 소비가 과연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동시에 환경을 걱정하고 불안해 하면서도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이중적인 태도는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나 하나가 덜 쓰고 덜 버린다고 세상이 바뀔까 하는 회의감이 들다가도, 그렇기에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 또 마음을 다잡는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여행은 이제 나에게 더 이상 단순한 탈출이나 기분 전환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아주 작은 실천이더라도 ‘나의 여행,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물음에 잠시 멈춰 서는 방식으로 다녀오고 싶다. 소비도, 이동도, 그 어떤 선택도 더는 가벼이 넘길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