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도 이 순간을 즐겼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초자연적 현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꼭 센터장님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발표 당일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예전 일화는 위에 에피소드 참고 ㅠ
이제는 멤버들과 웃어넘기며 이야기할만한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첫 번째 일화는 이미 2019년에 포스팅을 한번 했었고, 며칠 전 두 번째 사건이 발생되었다. 이번 보고는 서버를 세팅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던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보다 훨씬 심플했는데 문제는 내가 아직까지는 우리 회사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은 애플 키노트를 가지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불행히 프레젠테이션 1시간 전 징크스가 시작되었다.
물론, 맥킨토시 키노트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다른 오피스에서 다른 보고 대상에게 대형 텔레비전의 외부 입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친 상태라 당연히 우리 오피스, 그것도 우리 층에서 진행되는 보고에서는 당근 잘 연결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난번의 첫 번째 사건 이후 팀장님을 포함한 우리 모두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팀장님께서 미리 한번 세팅을 확인해보라고 하셨고, 나는 당연히 잘 연결될걸 알지만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맥북과 젠더를 들고 대회의실을 들어갔다.
'자, 이제 세팅된 빔프로젝트에 흐드미(hdmi)를 연결하면 화면이 뙇! 떠야지?'
이렇게 내가 생각했던 대로 현실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순간 얼어버린다.
'아 큰일 났다. 어떻게 하지?'
연결은 제대로 된 것 같은데, 흐드미와 맥북프로가 호환이 잘 안되는 게 확실했다. 맥북에 붙어있는 4개의 typeC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4번째 꽂은 구멍에서 뭔가 화면이 번쩍번쩍을 여섯 번 정도 반복하더니 초 멋진(?) 맥북 배경화면이 프로젝션에 떴다.
'ㅠㅠ그래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세팅 후, 멤버들과 팀장님께 모든 세팅이 완료되었으니 우리 멤버들이 열심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주십사 파이팅을 전달했다.
불길함이 엄습한, 보고 10분 전
보고 시간 10분 전, 멤버들과 팀장님, 다른 보고를 위한 옆 팀원 등 대회의실이 가득 찼다. 보고자인 센터장님만 입장하면 시작되는 상황, 팀장님께서 프레젠테이션 흐름을 한번 더 보고 싶어 하셔서 나는 흐드미를 내 맥북에 꽂았다. 100인치가 넘는 스크린에서 번쩍번쩍 만 10번을 넘게 하더니 파란 화면으로 바뀌고 내 머릿속도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아뿔싸, 아니 망(亡) 신이 나를 또???'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무심한 센터장님이 무려 정해진 보고 시간보다 5분을 일찍 들어오셔서, 어젠다대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었다.
애플 키노트로 준비된 우리 순서는 2번째(팀장님 발표), 4번째(내가 발표)였는데, 이 상태로라면 보고 시 가장 피해야 할 것 중하나인 전체 보고 흐름을 우리 순서에서 두 번이나 다 끊어먹을게 뻔하였다.
멤버들과의 단톡 방은 난리가 났는데,
'에이 설마! 이번엔 제대로 될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란 모든 것을 운에 맡기자!!라는 주술 같은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보고 시작 20분 후 - 정신을 차리면 대안이 있다.
다른 팀에서 파워포인트로 준비한 첫 번째 보고가 진행 중이다. 4번째 발표가 나인데, 나는 2번째 발표부터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흐드미를 내 맥북에 꽂았을 때 나이트클럽처럼 수없이 깜빡였던 100인치 프로젝터 화면을 생각하면 거의 80프로 이상 내 맥북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함이 가시질 않았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방법이 있을 거야'
순간 내 자리 서랍 속에 있던 아이패드 프로와, 멤버들과의 아이데이션을 위해서 아이패드 프로를 연결할 젠더가 떠올랐다. 잠시 나는 살금살금 회의실에서 나와 부랴부랴 아이템들을 챙겨 다시 회의실로 살금살금 들어왔다.
'그래, 맥북에 있던 키노트를 아이패드 프로에 옮기고, iOS 키노트에 프로젝트를 띄어서 발표하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첫 번째 보고가 생각보다 늘어져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도박이었다. 왜냐면 프로젝터에 아이패드 프로를 한 번도 연결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멤버들과의 단톡 방 마지막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래 이제 모 아니면 도, 운에 맡겨보자.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일단 원래대로 맥북을 프로젝션에 연결했다. 또 파란 화면이 나이트처럼 반짝이기 시작한다. 순간 팀장님께서 센터장님께 프로젝트에 대한 썰을 갑자기 엄청 푸신다. 2019년의 사건이 오버랩되며, 나는 '내가 시간을 끌테니어서 연결해 어서!!'라는 단어가 내 귀에 계속 꽂혔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맥북을 버리고, 2번째 대안인 아이패드를 꽂았다.
정말 다행으로 0.5초 만에 연결되었다. 키노트를 어서 띄우고 아이패드를 팀장님께 가져다 드리고, 팀장님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셨다.
사실 iOS키노트의 프레젠테이션 모드는 터치만 하면 넘어가지만, 써보지 않으면 당황하기 마련이다만 정말 이것도 운이었는지, 내가 계속 키노트로 프레젠테이 현을 해온지라 팀장님이 리허설을 몇 번 해보셔서 정말 익숙하게 잘 진행을 해주셨다.
그 상황을 지켜본 우리 멤버들은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고 하지만, 다행히 다른 멤버들은 그 상황이 긴급상황인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였다. 생각한 흐름대로 매끄럽게 끝나진 못했지만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이었다.
피할 수 없어 즐겼던 고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스킬
보고가 잘(?) 끝나고 팀별 레벨업에서 팀장님은 이쯤 되면 이 모든 것은 네가 가장 문제라고 농담으로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제 이쯤 되면 초자연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야지 싶었다. 아니면 센터장님과 내가 전생에 인연이 악연이었던지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한편으로는 매번 이렇게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뭔가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여유가 생겨서일까?
문득, 유튜브에서 애플이 아이폰을 첫 출시할 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던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그 발표는 아직도 전설적인 프레젠테이션 중 하나인데, 청중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그 내면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재생이 안되서 링크 공유드립니다
https://youtu.be/qgmNG5tyGqg
다들 완벽주의 잡스가 모든 걸 제대로 세팅해두고 시연했을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스티브 잡스도 프레제테이션을 운에 맡겼다.
'아니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어떻게 모 아니면 도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스티브 잡스는 그 상황을 즐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