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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든 Jan 04. 2021

올 겨울, 노푸에 도전했다

화학물질 축소하기




긴 머리를 잘랐다. 짧은 머리가 더 익숙한 나는 매번 머리를 확 잘라버리고 싶은 유혹을 참아야 했다. 기부하기 위해 귀밑 25센티까지 기르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더디게 자라서 그 시간이 더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꾸역꾸역 길어냈고 미련 없이 잘랐다.


긴 머리를 참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머리 감을 때도 말릴 때도 시간이 더 든다. 샴푸도 더 써야 하고 샴푸바를 쓸 때는 샴푸바가 더 빨리 닳았다. 잘 엉키니까 늘 린스까지 사용해야 했고 잘 때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휘감아 짜증이 났다. 출근할 때는 거의 질끈 묶었기 때문에 두피가 더 옥죄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반해 긴 머리의 장점은 거의 없다. 조금 더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요즘은 화학물질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 파마도 염색도 안 한다. 그 머리에 가능한 스타일링이라면 레이어드 컷 정도인데, 이마저도 더 많은 수의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어 참았다. (그리고 진짜 회사에 매일 긴 머리 고데하고 다니는 사람 있나요? 대단쓰) 아무튼 자르고 나니 날아갈 것만 같다.


머리를 감는데 세상에, 손에 잡히는 머리카락이 없으니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마치 족쇄에서 풀려난 느낌이었다. 아무렇게나 둬도 머리가 잘 마르고 잘 때도 편했다. 한 가지 문제는 어쩔 땐 소년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아줌마 같기도 하다는 거다. 하지만 소년이 아니란 건 금방 알아챌 수 있고 아줌마는... 맞으니 괜찮다. 아무튼 기부도 좋지만 앞으로 다시는 머리를 기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린스를 매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용기에 남은 린스를 다 사용하고 나면 린스바를 사면 샀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린스는 다시 들이지 않을 것이다.


노푸는 이번에 발견한 짧은 머리의 또 다른 장점이다. 노푸에 대한 로망은 전혀 품었던 적이 없지만, 겨울만 되면 유독 더 간지러워지는 두피에 노푸를 한번 시도해 본 것이다. 매일 샤워를 하는데도 생긴 두피 간지러움증은 건조해서일 거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한 2년 전부터 겨울만 되면 머리가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이 증상은 특히 샤워 후에 가장 심하다!) 간지러움증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듬 같은 각질도 생겼기에 더 열심히 머리를 감았다. 뜨겁고 건조한 드라이 바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드라이도 하지 않았는데 간지러움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요즘처럼 집에만 있을 때는 매일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거의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 타입이다. 손도 몸도 물이 자꾸 닿고 자주 씻을수록 더 건조해진다. 건조하면 가렵다. 가려우면 긁게 되고 각질이 벗겨진다. 손이나 몸은 로션으로 보습할 수 있지만, 두피는 꼼꼼히 오일을 발라주기 어렵다. 귀찮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떡질 것도 같고, 무엇보다 뇌와 가장 가까운 그 부위에 스며드는 용도로는 아무리 천연 물질이라고 해도 바르고 싶지 않았다. 두피에 가장 좋은 오일은 두피에서 나오는 천연 오일이 아니던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틀의 한 번 노푸가 시작됐다. 매일 샤워는 포기 못 해도 비누는 포기할 수 있었다. 이틀에 한 번은 그냥 물로만 감는다. 같은 이유로 웬만해서는 샤워할 때 몇몇 부위를 제외하고 비누칠을 잘 하지 않는다. 노푸 방법은 간단하다. 따뜻한 물에 두피를 충분히 마사지한다. 평소보다 더 꼼꼼히 한다. 더 정성스러운 마사지에 의외로 기분이 참 좋아진다. 그런데 여기서 머리가 길면 너무 어려울 것 같다. 머리카락이 뻣뻣해지고 엉켜서 시도에서 끝났을 것이다. 이제는 천천히 두피 마사지하는 이 시간이 좋아져 버렸기 때문에 짧은 머리를 계속 유지해야 할 듯싶다. 또 아무리 친환경 샴푸바를 사용한다 해도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변함없기에, 이렇게 이틀에 한 번 두피's 화학물질 free day를 갖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이전에 느꼈던 그 미칠듯한 간지러움이 사라졌다. 역시 건조해서 그런 거였어! 특유의 윤기(?)가 더 빨리 형성되지만, 오늘도 계속 집에 있을 거고 내일 또 감을 거니까 괜찮다. 향기 대신 인간적인 에센셜 프레그런스가 올라오지만, 진정한 나와 친해지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요즘은 인위적인 향이 점점 더 불편해진다.


유튜브 채널 미니멀 유목민의 박 작가님처럼 몇 년씩 노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노푸가 주는 안락함(의외로 포근하고 안락한 기분)과 샴푸가 주는 상쾌함까지 다 좋으니 당분간 이틀의 한 번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적어도 이 겨울 동안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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