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간의 육아휴직 회고
오늘은 5개월간의 육아휴직의 마지막 날이다. 많은 일이 있었고 새로운 만남들도 있었다.
오늘 하루 만에 모든 것을 회고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볍게 회고해 본다.
나를 살게 했던 것들
이번 육아휴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만 2살인 나의 딸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그동안 출산휴가를 마치고 일터로 바로 복귀한 터라 아기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아기에게 "엄마 어딨어?"라고 물으면 아기는 현관문을 가리켰었다. 그렇게 존재감 없는 엄마 대신 남편과 친정엄마가 아기를 세심하게 케어하고 듬뿍 사랑해 주었다. 이번 5개월은 내가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해보고자 많이 노력했다. 아침, 점심, 저녁을 챙기고 간식을 챙기고 같이 놀다 보면 내게 주어지는 휴식시간은 아기의 낮잠시간뿐이었다(물론 낮잠을 안 자는 날도 있다...). 체력적으로는 지치는 시간들이었지만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 했다. 아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그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삶의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왜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삶에 대한 회의가 들 때면 나는 나의 아기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시 붙잡곤 했다. 같이하는 시간이 늘면서 이제는 아기가 발음하는 게 잘 들린다.
아기가 말한다. "우아아"
사람들이 묻는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대답한다. "눈사람"
책 역시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시간이 날 때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채우곤 했는데, 대개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차를 마시며 산책을 했다. 대략 마흔 권의 책과 함께하였고 그 안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찾고 또 찾았고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 천천히 겨울방학 때 읽은 책들을 회고하는 글들도 올려보겠지만 특히나 '슬픔의 방문', '아버지의 해방일지', '카모메식당'을 좋았던 책으로 꼽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동네 독립책방에서 하는 독서모임에도 참여를 했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시간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되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이번 겨울방학 때 새로 한 시도는 바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는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볍게 해 보게 되었고, 장강명의 '일단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일단 한번 작품을 완성해 보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기에 소설 쓰기를 실행으로 옮겼다. 나는 호기롭게 3월 말 마감인 한겨레문학상에 내 작품을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12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을 타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책 하나를 완성해 보는 기쁨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작품을 제출하려면 대략적으로 16만 자의 분량으로 소설을 써야 했는데 6만 자에서 더 이상 쓰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포기를 했다. 그리하여 비록 지원은 못하였으나 아직도 쓰고는 있다. 7만 자 정도를 썼고 10만 자 정도의 분량으로 작품이 완성되면 출판을 해보려고 한다. 아마 올해에는 마칠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가족들과의 여행 역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휴직의 시작과 끝에는 여행이 있었다. 휴직을 한 바로 다음날 발리로 가족여행을 갔다. 회사생활이 너무 싫었어서 그다음 날 바로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친정엄마, 남편, 나 그리고 아기와 함께 한 2주간의 시간은 참으로 즐거웠다. 물론 때때로 나의 불안장애가 나를 괴롭히곤 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계절과 맛있는 음식, 여유가 참으로 좋았다. 얼마 전에는 육아휴직을 마무리하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2박 3일 속초도 다녀왔다. 나의 아기가 좋아하는 수영장도 가고 고기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기가 대게를 잘 먹어서 그게 참 뿌듯했던 여행이기도 했다. 잘 먹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고맙다니 정말 나는 이 존재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겨울방학을 마치며
이렇게 겨울방학을 마친다. 이제 내일이면 내가 참으로 힘들어했던 그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약 일주일 전부터 불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온다. 어제는 치통이 있어 치과를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냐고 하시며 치아가 괜찮으니 나중에 많이 아프면 다시 오라 하셨다. 몸이 내게 말한다.
"그만해."
내가 말한다.
"그만할 수는 없어. 열심히 잘 쌓아온 나의 커리어를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아... 하지만... 계속 찾을거야."
조금 더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겠다. 계속 걸어가 보겠다. 앞으로도 나의 가족이, 나의 책들이,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소설이, 여행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계속 걸어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