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사랑 Dec 07. 2023

선진국의 조건

선진국, 그 사회와 교육

14년 전 이맘때쯤, 저희 가족은 10년여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사를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고 같은 언어권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라를 옮긴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달이었던 11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오랜 미국생활을 한 터라 이삿짐도 많고 그 짐의 통관 등 신경 쓸 것도 많았고, 새로 지낼 곳에 정착하고, 아이 학교를 알아보고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한 달여를 정신없이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여를 보내고 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처음으로 문화 충격(culture shock)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미국과 다른 나라에 왔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11, 12월을 정신없이 보내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서야 대학교도 쉬고, 아이 학교도 쉬는 덕분에 조금은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너무 바쁘게 지내느라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나도 못해서 시즌이 다 되어서야 아이들 선물도 사고 아이들과 함께 몰에 놀러 가서 휴식을 가질까 하였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북미에서 상당히 유명한 몰이 있는지라,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겸 해서 놀기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살 때는 크리스마스는 시즌동안은 늘 거리도 북적북적하고 가게도 대목 장사로 하루종일 바쁘게 지내는지라 당연히 여기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죠. 말씀드린 대로 나라를 옮겼다고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쇼핑을 나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식료품점을 비롯한 모든 곳들이 다 문을 닫았던 것입니다. 일말의 실망과 불편감이 치밀었습니다. 아마도 당연히 (?) 문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저의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은 크리스마스에도 가게를 여니, 캐나다도 당연히 열어야 한다는 그런 이상한 당위성을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라를 옮길 때마다 나라마다의 다름에 늘 불편함을 느끼고 불평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 맨 처음 와서 집에 전화를 개설할 때, 3시간을 전화 상담원과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해서 전화 상담을 한번 하려고 하면 한두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죠. 의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예약을 하고 가서도 1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예약을 하지 않고 가는 진료소(walk-in clinic)에 가면 몇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보다 몇 배나 비싼 의료보험료를 내고 또 의사를 만날 때마다 수십 배의 비싼 돈을 내면서도 더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는 캐나다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료가 무료(?)이긴 했지만, 아파도 의사를 만나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그 외의 많은 것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라는 비교 대상이 있었으니, 제가 느끼는 불편감은 남보다 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보다 그 장단점을 더 쉽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느린 시스템과 다양한 불편감 속에서 마음속에 드는 궁금증은, 왜 미국과 캐나다는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중진국에 머물렀던 내가 오래전에 경험하고 기억하는 한국보다 더 불편하고 선진화되지 않은 것 같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학 교수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4년의 대학과정을 마친 후,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 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보이고 대학이 필요로 하는 전공을 한 사람만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대학 졸업자 중 한 줌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직업이죠. 그러다 보니 40이 넘어서야 교수가 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교수를 해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때부터 버스 운전을 해서 많은 경력을 쌓은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도 제 교수 봉급이 그리 차이 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온 당시에는 산업이 호황이어서 용접이나 트럭운전을 하는 사람은 저보다 3배 이상의 봉급을 받는 사람도 흔했습니다. 무언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음은 분명하지만, 분명히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갖게 된 직업인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정년 전까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은데, 저보다 더 적은 투자를 한 사람보다 왜 더 적은 돈을 버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하면서 학비 등으로 많은 지출을 하는 동안, 그 사람들은 오히려 돈을 벌면서 살아왔는데, 훨씬 더 많은 투자와 기회비용을 지불한 후에도 같거나 적은 돈을 번다는 것이 뭔가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한 나라의 의료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UHC Index 자료(2011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자료에 의하면 가장 의료 수준이 높은 나라는 캐나다(91점)이고 한국은 89점 미국은 86점으로 그 뒤를 잇고 있었습니다.  이 자료는 저에게 또 하나의 궁금증을 주었습니다. 분명히 한국의 의료가 캐나다보다 더 좋고 편하다고 느꼈는데 왜 지표상에서는 한국보다 캐나다의 의료의 수준이 더 높다고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게나 낙후되었다고 느꼈던 미국의 의료는 왜 이렇게 좋은 지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요?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선진국은 "국민의 발달 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국가"를 말한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꽤나 오랜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점차 나이도 들면서 "국민의 발달 수준"이나 "삶의 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감을 느낍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예전에는 크리스마스에도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은 삶의 질이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크리스마스에 가게나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그들도 편안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슈퍼마켓이나 의류점들과 같은 일반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소임금만을 받는 힘없는 경우가 많고, 업주가 문을 열겠다고 하면 힘없이 크리스마스조차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다 보니, 업주의 의견에 반대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에 모든 가게를 닫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그렇게 사회적으로 약속되어 있다면 쇼핑이나 식료품은 미리 구입하면 되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불편할 일이 없을 테고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사는 캐나다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잘 돌아다니지 않고 가족과 조용히 보내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가게가 닫아서 갈 데가 없어서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캐나다의 의료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모든 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문제 한 가지쯤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 문제를 언제 어떻게 느끼느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장점과 단점의 무게를 어떻게 비교하느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사는 곳은 전술한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의료혜택을 무료로 받다 보니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느린 시스템의 문제로 치료를 못 받는 문제는 존재하지만요). 암이 걸린다고 해도 치료비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의사들도 정부의 관리하에 있고 일정 수준 이상 봉급을 받거나 환자당 치료수가를 보전받기 (이 경우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의 최대 숫자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모든 전공에 일정수의 의사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산에 상관없이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때문에 캐나다는 예방치료와 사회적 예방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 한 명의 교사가 추가로 배정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가 공교육을 받을 수 있고 또한 다른 아이도 자신과는 다른 아이가 있다는 것을 큰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또한 부모가 추가적인 치료를 받고자 할 때는 (예: 놀이치료나 언어치료) 그 아이의 치료를 위한 추가 자금도 부모에게 주어지고요. 그러한 도움을 통해서 그 아이가 나중에 자랐을 때, 더 많이 들 수 있는 사회적응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직업과 봉급에 대한 생각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부모의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아이가 비교적 수월한 직장에서 비교적 풍족한 봉급을 벌면서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크게 직업의 귀천이 없이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열심히만 살면 부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캐나다에 장점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이혼을 하시고 편의점에서 일을 하시면서 혼자 아이를 다 키우셨고, 집도 사셔서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듣기로 편의점에서 8시간을 일하면 한 달에 4백만 원을 받기 때문에 두 군대서 일하셨다고 하더군요. 하루의 16시간의 고된 일이지만 8백만 원이라는 돈을 벌 수 있었기에 아들을 키우면서 집도 사시고, 풍족하지는 않을지언정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사실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아이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사는 데는 크게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꼭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작습니다. 물론 아시아에서 이민온 가정은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예를 들어 수학을 전교에서 1등을 했다고 해도 한국에 비해서 아이들이 부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학교 입시에 대한 부담도 훨씬 적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는 친구들도 많고, 전문대를 졸업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들었던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학교를 들어가고, 좋은 학교를 졸업해야 돈을 많이 번다"는 말을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느끼는 부담이 적어진다는 것이 점점 마음 깊이 느껴집니다.


30년 전쯤에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한국 고등학생과 대화가 아직도 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잔잔한 파동을 만듭니다. 그 친구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대학의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을 갖게 되면 고졸로 취급을 받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공부에 대한 꿈이 있어야 대학을 간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박사를 하고 교수를 하면서 공부 외에 한국의 입시교육에서 물든 나쁜 버릇들을 빼기 위해 드리는 시간과 노력이  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예를 들어 7년의 정규 영어수업을 받았고 천 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했지만, 영어 한마디 못하고, 그렇다고 영어를 잘 읽거나 쓰는 것도 아닌 제 애매한 영어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면서, 제가 헛공부에 낭비한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언어란 소통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교육의 목적이 전도된 그 경험과 그로 인한 버릇들이 참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에서 교육에 낭비하는 그 많은 돈과 시간이 참 아깝다고 여겨집니다. 제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단지 수능에서 1점을 더 받기 위해서, 나쁜 습관과 나쁜 교육을 몸에 익히는 것이 국가적으로 너무나 큰 낭비라는 생각만 듭니다. 이러한 잘못된 교육의 습관이 "국민의 발달 수준"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 듭니다. 또한 그러한 교육의 사다리 꼭대기에서 올바른 교육으로 사회를 정화시켜야 하는 교수집단이 진정으로 나라를 맑게 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폐 (사회적 정화작용)"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배우고 그러한 배움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들은 남보다는 달라야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신문을 가득 채우는 폴리페서들과 제가 한국 대학원에서 보고 겪었던 임금 착복과 폭력, 폭언 그리고 권력남용은 저에게 많은 두려움을 줍니다. 제자가 교수의 술시중을 들고 연구비 카드로 술값을 지불하는 문화는 제가 경험한 나라 중 한국에서만 겪을 수 있는 문화였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은 선진국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그리고 인류는 정말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제가 바라보는 선진국은 국민들의 수준이 높고 삶의 질을 영위하면서도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정말 바른 방향인지를  모두가 고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 권리들과 이익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세대에게도 올바르게 포기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