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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an 22. 2024

(육아회고 14) 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

이민 1대대의 언어교육 딜레마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언어교육이 가장 큰 걱정 중 하나입니다. 언어 전문가가 아닌 대부분의 부모에게는 언제 어떻게 어떤 언어를 가르쳐야 하는지가 큰 딜레마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모국어를 습득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을 위한 공부로서 제2 외국어를 배웠던 저로서는 아동의 언어습득 과정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어떻게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지는 매우 큰 걱정이었습니다.   


처음 유학을 와서 영어를 못하는 부모와 한국말을 못 하는 한국가정이 상당히 많다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행히도 지금도 매우 많습니다). 한 번은 한국어를 전혀 말하지 못하는, 한인 2세에게 왜 한국말을 배우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에게 한국어는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엄마 아빠 둘만의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언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충격적이었지만, 그 학생의 말이 이해는 되었습니다. 요 근래에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한국 문화가 널리 퍼져서 이런 일은 없겠지만, 제가 유학을 온 이십몇 년 전에는 실제로 "넌 커서 엄마집 지하실에 살면서 한국자동차나 몰고 다닐 거야!"라는 욕이 존재할 때였습니다. 한국이 어느 대륙에 있는지 모르는 미국 대학생이 50%가 넘고 미국 대학원생에게 아직도 서울에는 사람들이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냐는 질문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만난 90% 이상의 미국사람들은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자기가 MASH라는 시트콤(1972년부터 방영)을 봤기 때문에 한국을 안다고 했었습니다 (이 시트콤이 한국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캘리포니아에서 촬영되었고, 한국과는 별로 상관없는 코미디 프로라는 게 함정입니다). 그런 기억에 비추어, 겨우 20년 만에 놀랍도록 올라간 한국의 위상을 보면 이민자로서 어깨가 으쓱하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이민을 오신 분들이나, 저보다 먼저 이민을 오신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영어 때문에 받은 많은 서러움을 안고 살아가시고 계셨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가게를 빼앗기신 분도 뵌 적이 있고, 영어를 못해서 많은 무시를 경험하신 이민 1세대는 아픔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이민 초기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부쩍 늘어가는 것이 대견스러워 보였을 것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아이들이 더 빨리 영어를 배울 수 있게 집에서도 영어를 말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셨을 것이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언어를 빨리 습득하기도 하지만 언어를 빨리 잊기도 하더군요. 저는 한국에서 온 지 1년도 안된 아이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아주 유창하게 하지만, 한국말을 잊어서 떠듬떠듬 하게 되는 경우도 보았으니, 아이들의 언어 능력은 신기할 따름입니다.


외국어는 참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험생들에게는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받아지는 것 같고, 더 공부를 하다 보면 책과 논문을 읽기 위한 도구(지식 습득의 도구)의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유희일수도 있겠고, 때로는 여행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편의용품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일정 수준의 외국어 실력을 갖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어떤 목적이나 거기서 얻는 이점이 없다면 끈기를 가지고 공부하고 연습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미국에 유학을 오겠다는 꿈이 없었다면 진즉 영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민 2세의 언어교육에서 2세가 한국어를 배워서 얻는 이점이 별로 없고, 왜 배워야 하는지 목적의식도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는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니 북미의 경우는 영어만 하면 세계 에디에서나 통용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인지,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부모의 모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거나 또는 배우는 것의 이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 보입니다. 그 결과로 아이는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배움의 의지가 없는 아이는 한국어를 점점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점점 어색해지는 한국어에 대해 부모의 꾸중은 점점 더 커져가고, 특히나 높임말을 배울 기회가 적은 2세들은 높임말과 관련된 경우 더 꾸중을 많이 듣게 되니 부모와 더욱더 대화를 안 하려 하고 부모와의 거리가 더 멀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에 벽을 쌓고 있는 가정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언어라는 것이 단지 소리를 만들고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꾸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 단지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로 바꾸고 그 언어의 어순에 맞게 순서만 바꾸는 것이라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매우 쉽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문화를 배우고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언어 교육은 단순히 다른 언어를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 문화권에 사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란 세대가 상대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이가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부모의 새대를 이해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게 되고, 부모 역시도 영어를 배움으로써 아이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관점으로 옮겨 오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 아이와 부모가 서로에게 한발 나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 올바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아이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으로부터 이점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부모에게 칭찬을 받는 일로 기억되거나, 최소한 혼나는 일로 각인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우선 아이의 학교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희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어서 아직 영어를 안 가르쳤습니다. 아이의 영어가 부족함을 양해해 주시고,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칭찬해 주세요"라고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학교 선생님은 흔쾌히 동의해 주셨고, 제가 집에서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숙제마저도 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어 주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한국어와 영어 읽기를 가르치지 않아서 그때까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매주 토요일 1시간은 아이와 한글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시키는 동안은 단 한 번도 혼내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칭찬거리를 찾아서 칭찬을 해 주었고, 최대한 느리게 진행했습니다 (워낙 천천히 가르쳐서 한글을 떼는 대만 반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아빠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도록 가르쳤고, 저녁식사는 꼭 4 가족이 같이 하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한글학교 한번 안 갔지만, 기본적인 한글 읽기와 쓰기는 있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하는 아이들이라 한국어 표현에 어색함은 있지만,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대화가 가능한 아이들로 자라나서 부모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을 보면 고맙습니다. 또한 어려서는 한국어를 배우기 싫어하더니, 아이들도 이제는 두 가지 언어를 가르쳐 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커버 사진은 아이게게서 받은 발렌타인 카드입니다).




어쩌면 저처럼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시면서 어떻게 한국어와 현지어를 가르칠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실까 하여 제 경험을 조금 적어 보았습니다. 제 경험이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달아 주시면 저희의 생각이 커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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