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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Jul 18. 2022

교차로에 들어설 때 엑셀 밟는 거 아닙니다


벌써 몇 년 전이다. 서른 살의 여름에, 드디어 미루고 미뤄왔던 운전면허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동안 시간이 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고, 맨날 학교-자취방-역근처 이렇게 가까이만 돌아다니는데 차와 면허가 있을 필요가 없어서였다. 물론 직장인이 되면서부터 차는 필수품으로 바뀌었다.


운전면허 첫 이론수업에 강사님이 맨 먼저 다루었던 주제가 기억이 난다. 칠판에 교차로를 그려두고 이럴 때 가면 되고, 저럴 땐 안되고,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셨는데, 그 흔한 4방향 교차로 지나가는 법에 대해 장장 한 시간 수업을 꽉 채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때 수업을 받으면서 든 생각은 이거였다.


"그냥 초록이면 가고, 빨간이면 안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복잡해?"


사회에 나와서 운전을 직접 해보니, 아니었다. 강사님 말씀대로 여기는 전쟁터이자, 야생의 정글 그 자체다.




평소에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과 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씩 교차로를 지나게 된다. 이 사실이 놀랍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교차로' 라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사람의 경우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차가 안 오는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건너며, 신호가 있을 경우는 신호에 맞게 좌우를 확인하여 건너면 된다. 물론 두 경우 모두 빠르게 뛰면 안 된다. 신호위반이나 예측주행을 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는 좀 더 복잡한데, 가령 예를 들면, 큰 도로 직진 주행에 초록불이라도 가장자리 차로는 우회전 합류차를 염두해야 하고, 좌측 차로는 맞은편 비보호 좌회전 차들을 염두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초록불이라고 냅다 신나게 엑셀만 밟으면 안 된다는 것.


좌회전 신호를 받고 코너를 돌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호위반하는 보행자를 염두하는 것은 당연하고, 맞은편 우회전 차량들과 가는 방향이 겹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신호 우선권이 있지만 선진입이라는 변수도 있기 때문에 만능은 아니다. 


유턴이나 우회전은 교차로마다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하며, 꼬리물기 상황이나 정체된 차들로 시야가 가려지는 경우는 사고가 날 경우 필연적으로 분쟁의 소지가 생기게 된다.




물론 "아니, 내가 초록불에 간다는데 뭐가 문제야? 내가 왜 조심해야 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핏 맞는 말이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초록불에 가는데 사고가 나면 과실은 없다. 여기서 '특수한 경우' 라는 예외를 두는 경우는 과속이나 전방주시태만, 안전의무 불이행 같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신호를 지켰더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과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설령 과실이 없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 피해를 보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도 받아야 하고, 차 수리에, 여러 행정 처리 등등... 모든 걸 떠나서, 사고와 전쟁은 안나는 게 가장 좋다.


"몸 다치고 마음 다치는데, 과실비율 100 대 0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애초에 사고가 안 나야지." 



이것은 꼭 운전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만원 지하철을 타는데 지갑을 엉덩이 뒷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소매치기 한 사람이 나쁜 것은 맞고, 100 % 도둑의 책임이다. 그건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소매치기를 당함으로써 거기에 수반되는 불편함, 사고 처리과정, 시간 낭비 등은 본인이 다 떠안아야 한다.


유럽 여행을 가면 백팩은 소매치기 당할 수 있으니 앞으로 매는 가방을 하고 다니라는 말이 있다. 세상엔 선이 있기 때문에 악이 있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모두가 착한 이상사회는 오지 않아. 도로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떤 미친X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고는 조심을 하면 거의 다 예방할 수 있다. 비행기 사고처럼 정말 개인이 손 쓸 수 없는 것은 매우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교차로 들어설 때 엑셀 밟는 거 아닙니다. 시야 가리는 게 있으면 일단 엑셀에서 발 떼세요." 


여기서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게, 교차로에 들어설 때마다 브레이크 밟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밟지 말고 관성으로만 (정속으로) 진입하기. 혹시 가려진 틈에서 누군가 튀어나온다고 했을 때, '가속' 상황이랑 '정속' 상황은 제동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멈춰야 하는 상황에서 멈추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건 없다.


결론적으로, 초록불이라고 앞뒤 생각 안 하고 신나게 엑셀 밟고 다니면 큰일 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을 위해서 교차로에서는 가속을 자제하기. 정속 주행하기. 엑셀은 교차로에서 빠져나올 때 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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