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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복이 Jan 16. 2023

4월 1일, 거짓말처럼 엄마가 치매초기 진단을 받았다.

2021.4.1. 만 51세, 어머니가 치매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2021.4.3. 토요일의 일기



4월 1일


거짓말처럼 엄마가 치매초기 진단을 받았다.

정확히는 치매 전 단계(경도인지장애)지만, 치매로 갈 가능성이 아주 많다 했다.

왜 착하게 산 우리 엄마한테 이런일이 생기신건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완전 극 초기에 진단을 받아 현 상태를 잘 유지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더도 안 바라니 이상태 고대로 쭉 유지하셨으면 좋겠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내가 고생시켜서 엄마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원망스럽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우리엄마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내가 지켜줄거다.

00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그리고 슬픔에 잠식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렴! 화이팅해!!



윗글은 약 1년 8개월 전,

만 51세의 엄마가 처음 치매진단을 받은 후 썼던 일기다.


당시 엄마는 계약직 기간제 간호사로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계셨다.

전년도와는 사뭇 다른 엄마의 모습에 의료지식이 풍부한 간호사 동료와 선배는 엄마께 조심스레 치매검사를 권유하셨다.(지금 생각해 보면 초로기치매를 초기에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신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온 엄마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 가족은 엄마 제외 두 명씩 의견이 갈렸다.


"혹시 모르니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해야 한다"와 "별일 아닐 거다"라는 주장이 초반이지만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의견은 달랐지만 모두의 마음 한편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big5라 불리는 병원 중 한 곳인 집 근처 대학병원에 치매검사를 예약하였고

젊은 나이라 mri, pet검사 후 '알츠하이머 초로기 치매'로 판정을 받았다.


이는

당시 갓 20대 초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사람이

감당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슬픔 중에

당연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슬픔이었다.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서야 내 슬픔을 토해낼 수 있었고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넘어가서야 울지 않고 일기장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엄마는 초반보다 조금은 더 악화됐지만,

그럭저럭 삶을 잘 꾸려나가시고 있다.


주중에는 매일매일 에어로빅을 하러 주민센터에 가고

일주일에 두 번은 느티나무쉼터에 가 2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아침마다 쓰레기를 버리시며 매일 빨래를 돌리며,

하루에 시간이 남으면 아파트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시고

산책길을 걸으신다.



요즘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는

매일매일 시간을 물어보고, 달력을 보면서 날짜를 물어보고, 방금 말해준 오늘의 스케줄을 5번 넘게 물어보는 엄마에게

참다 참다 내 성질을 못 이기곤 '그만 쫌 물어봐!!'라며 짜증을 뽝 냈다가

이내 후회하곤

미안한 마음에 엄마옆에 누워 애교 섞인 목소리와 머쓱한 표정으로 '저녁에 뭐 먹고 싶어?'라 물어보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젊은 치매환자와 가족 구성원의 시간이 흘러간다.



별 탈 없이

잘 살아가는 듯해 보여도

슬프게도 치매는 진행이 되고 있으며

진행과정을 알아챈 보호자는 슬프고

치매를 앓고 있는 본인은 과거와 다르게 총명하지 못한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좌절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김혜자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이어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으며,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주눅이 들고 움츠러들고 짜증 나도 어쩌겠는가

신약이 나올 때까지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할 거고 나는 그런 엄마를 옆에서 응원할 거다.

혹여 엄마의 삶에서 신약이 안 나온다 해도(상상도 하기 싫지만)

우리는 살아갈 거다


그냥,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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