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4 '삶과 철학' 교양과제
핸드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20대 초 첫 대학을 다닐 때 썼던 교양과제를 발견했다.
교양 제목이 아마 '삶과 철학'이었던 것 같은데 묘비명을 주제로 글을 써야 했었다.
교양 과제를 각 잡고 쓰긴 싫어 통학 시간 지하철 안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썼던 기억이 있다.
7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삶을 대하는 태도가 7년 후의 나보다 성숙한 지 의문이다.
보통 메모장 속 끄적였던 과거의 글들은 읽고 나서 '그때의 무드 있는 나'에 취한 후 그냥 과거 속에 묻어두는데 이 글은 20대 초반의 나를 엿볼 수 있는 글이라 묻어두기 아쉬워 꺼내본다.
사실 전자기기와 절교한 '마이너스의 손'이라 어느 날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포맷되어 0과 1의 세상 속에서 길을 일을까 봐 올리는 거다.(저것도 초안이고 사실은 2장 더 적었는데 컴퓨터가 고장 나서 0과 1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 버렸다)
2016XXXXX
XX학과 윤복이
레포트를 작성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15살 때 영어 방과후수업을 같이 듣지만 데면데면했던 중학교 동창 생각이 났고,
'고3은 먹어도 살 안 찐다'면서 자신의 짜장면을 넘겨주던 새침했지만 웃는 모습이 예뻤던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도 생각이났다.
어렸을때부터
120살까지 나의 생을 충실히 살다가 흙으로 돌갔을 땐, 매장이 아닌 수목장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화장을 하고 나의 남은 뼛가루를 나무와 함께 자라게 하는 것, 또 다른 생명과 꽤 긴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뼛가루를 섞은 흙에서 자란 나무가 누군가의 휴식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묘가 아니니 묘비명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만일 나의 가치관을 담은 비석을 세울 수 있다면 그 글귀를 '잘 빌려 쓰다 갑니다. 여행 끝 휴식 중'이라 짓고 싶다.
애초에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못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아이와 발바닥이 신발이 되는 아이, 사람들의 관심과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이가 나눠진다. 심지어 개인에게 주어진 수명까지도 공평하지 못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안타깝게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집중해 불평과 후회, 자책, 자기혐오 등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상처 주고 또 이를 반복한다. 또한 사는 동안 이러한 불평등과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데 열심히 일을 해 절대적 빈곤이 해결된 사람일지라도 상대적 빈곤이라는 틀 안에 갇혀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며 더 많이 가지고자 완벽해지고자 노력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모든 걸 가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건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인간의 것이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쓰는 연필 한 자루 휴지 한 장 심지어 육체까지 모두 자연에게 빌려온 것이다.
이것은 여행과도 같다.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 예를 들자면 잠을 해결하는 숙소 교통수단 내가 보는 여행지의 풍경까지 다 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내가 죽은 후 나를 보러 찾아오는 가족들이 힘든 일이 있다면 '혹시 이건 내가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려 생긴 일들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해주고 싶었다.
ps. 과제점수는 만점이었는데 셤 공부를 안해서(당시 미술사가 넘 재밌어서 다수의 미대학우들을 제치고 A+ 받느라 다른 공부를 안했다.) B+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