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est Green
May 08. 2020
많은 날들이 지났다.
그리움으로 서럽게 흐느꼈던 그녀의 슬픔들이
간혹 허공을 스쳤지만
오늘은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다.
벌써 칠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미국이라며, 이 곳에 살러 왔다며
그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온 후배.
그녀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은
그녀의 직장상사였고 나이는 열두 살이나 많았고
가족은 홀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
그리고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이쯤 되면 누구나 그렇듯
그리 반가운 신랑감은 아니다.
그 남자도
막내로 부러움 없이 곱게 자란
내 후배를 위해 헤어지자는 제안을 수 없이 했었지만 첫사랑이자 또 마지막이라며,
절대 헤어질 수 없다며
연민과 사랑을 오가며
가슴앓이를 하다가 마침내
그를 부모에게 소개하였다.
‘부모님은?’
‘나이는?’
‘가족관계는?’
‘직업은?’
결과는 당연했다. 뭐 하나
내 세울 게 없는 그.
그런 그가 그저 측은했고
속물적인 질문만 하는
그녀의 부모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가셨고
어머니는 그가 보는 앞에서
후배의 등을 몇 차례 때렸다고 했다.
그 날 이후 후배는 거의 집에서 나갈 수 없었다.
직장엔 이미 사직 통보가 되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때는 정말 죽음, 그 하나 만을 생각했다고,
그를 만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고
후배는 말했다.
학생비자로 사촌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후배는 억지로 보내졌고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아 몇 년 동안 한국에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홀짝홀짝 술잔을 비우며
나에게 외로움을 토해 내던 그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세월이 약이야.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란 말이. 전부였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모여 칠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그녀는 전문직을 가질 수 있었고
또 전문직에 종사하는,
오늘 식장에 서있는 훤칠한 신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의 상처가 지워졌는지 아닌지,
정말로 그 옛날의 사랑을 잊었는지 아닌지,
그리고 신랑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난 알 수 없다.
그러나
산다는 건, 그리고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상처를 밑바탕으로 한 성숙된 자아가 만든
인내라고 생각한다.
칠 년이란 세월만큼
변화된 그녀의 인생에 다가선 또 다른 사랑은
칠 년 전 그것보다
더 많은 아픔을 품을 줄 아는 성숙한 사랑이 만난
또 다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건실해 보이는 새신랑 옆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해맑게 웃는
후배의 얼굴이 십 대처럼 앳되다.
분홍색 고름으로 연신 눈가를 훔치는
신부 어머니의 얼굴은
잔잔한 기쁨과 투명한 염려로 물들어 있다.
눈부신 신부의 행복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기도하고 있다.
신부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사랑?... 사랑!
사랑은 세월 따라 변한다지만,
믿을 수 없고 영원하지도 않고
그리고 곧 꺼져버릴 불꽃같은 것이라지만
서른 하고도 오 년이 지난 이 때야 비로소
난 알았어.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걸.
거역해서는 안 될 사랑이 있다는 걸.
그 사랑으로 대가로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그리고
엄마의 사랑.
무지막지한 엄마의 사랑이 그거란 걸
그 쉬운 것을 난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2005-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