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자전거 여행
(1)
작취미성의 핏발 선 눈으로 새벽길을 더듬어 동쪽으로 달렸다.
네비를 켜니 후포항은 영양 수비를 거쳐 가라고 일러준다. 봉화에서 영양 가는 길은 뾰족한 산으로 묻혀 있다. 첫새벽에 호미 들고 가는 여인, 비알 밭에 약 치는 늙은 농부 내외, 신록이 풍기는 냄새가 새뜻하게 느껴진다. 일월산 장군봉 아래 아연광산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은 폐광되었지만 일제 때부터 아연광석을 캐냈다. 땅 밑은 숭숭 뚫린 갱도로 스펀지 같았다. 벌건 녹물이 흐르는 케이지를 타고 십일 편 지하 육백 미터 막장에 내려가 잠수펌프를 박고 굴하 작업을 했다. 쥐눈이콩 만한 아연 원석이 떨어져도 헬멧에서 우지끈!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아침 방울이(점호) 시간에는 봉지커피로 긴장을 달랬다. 도시에서도 마시지 않던 커피였는데 광산 시절의 커피가 지금은 달고 살 정도로 습관이 되었다. 교대시간 굴 밖으로 나오면 폐석 더미 위에 핀 쑥부쟁이가 가을바람에 가느단 목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백암온천, 울진을 따라 내려가며 동해안 산등을 넘으며 산림작업을 했다. 간벌과 수간주사 작업을 했다. 기계톱을 메고 산등을 넘던 거칠고 가슴 뛰던 푸른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먹고 사느라 고단한 숲이었다. 광고회사를 작파하고 아내와 어린 남매를 데리고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첩첩 산골에서 밥을 벌기란 척박한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힘들게 벌면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울릉(鬱陵)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신라 지증왕 13(513)년에 신라 하슬라 주(州)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대의 어부 안용복(1658~?)은 1차(1693년. 숙종 19)와 2차(1696년) 일본에 건너가 막부 정권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해 그들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시 조선 정권은 그에게 상은 고사하고 월경죄와 관리 참칭죄를 물어 곤장을 치고 유배를 보냈다. 안용복보다 조금 늦은 시기를 살았던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군졸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강적과 겨뤄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영특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포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는 형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릉도는 척박하다. 그러나 대마도는 한 조각의 농토도 없고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우환이 되어왔는데, 울릉도를 한번 빼앗기면 이것은 대마도가 하나 더 생겨나는 것이니 앞으로의 앙화를 이루 말하겠는가. 그러니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만이 아니었다. …… 그런 사람을 나라의 위기 때 병졸에서 발탁해 장수로 등용해 그 뜻을 펴게 했다면, 그 성취가 어찌 여기서 그쳤겠는가' [성호사설] 제3권 <천지문(天地門)>
울릉도 구주령을 넘어 뱀처럼 구불텅한 길을 한참 내려가니 비로소 평야가 나타났다. 온천물로 내장을 씻은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달린다. 길가에 도열하듯 늘어선 배롱나무의 두툼한 이파리가 반짝이며 물결을 이룬다. 주변의 지명이 온통 지난 기억들로 범벅이 된 느낌이다. 후포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대합실이 휑뎅하다. 주차장은 버스와 승용차로 빼곡하다. 매표소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심심해 보이는 매점 남자에게 다가가 물으니 수시로 바뀌는 운항 일정에 오늘 배는 여덟 시에 떠났단다. 머릿속이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배배 꼬였다. 사내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어 매표소 벨을 눌렀다. 여직원이 나온다. 친절하게도 30% 할인되는 인터넷 예매를 직접 해주었다. 요즘 울릉도 관광이 성수기라 주말엔 배편을 기대하기 어렵단다. 내일 아침 금요일에 출발해서 일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배편을 예약했다. 처음으로 가보는 울릉도 여행. 오세영 시인은 독도를 '내 사랑하는 막내 아우'라고 했다. 형뻘 되는 울릉도로 간다. 배가 고팠다. 죄다 대게집과 횟집 투성이인 골목을 더듬으니 순댓국 간판이 보인다. 반가웠다. 내일 아침까지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울릉도 일주도로 45km를 돌 때 배낭의 무게가 걸린다. 60L의 대형 배낭을 메고 고갯길과 터널을 넘을 생각 하니 아찔하다. 배낭엔 텐트, 침낭, 취사도구로 묵직하다. 내륙이라면 차를 베이스캠프 삼아 움직일 텐데 섬까지 차를 실어가는 건 무리다. 한적한 길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꺼냈다. 땡볕이 쏟아지는 농로를 십여 분 달렸다. 짧은 주행이라 가뿐한 느낌이지만 어쩌랴. 이왕에 나선 여행을 강행하기로 한다. 이박 삼일의 기간 동안 매식하기로 한다. 부식까지 넣는다면 라이딩이 고달프리라. 현장에서 조달되면 라면 정도는 끓여 먹기로 한다. 성인봉은 다음으로 미룬다. 다시 못 올지 모르지만.
울진으로 해안선을 타고 올라가 저녁 먹고 찜질방에 들었다. 텅 빈 로비에 혼자 뒹구니 땀이 연신 흐른다. 한여름 더위를 나만 겪나 했더니 어제 마신 술 탓이다. 종일 땀을 흘렸다. 한증막에 들어가니 어제 마신 술이 땀구멍으로 송글하게 솟았다. 차차 달궈지는 날씨에 술도 요량껏 마셔야겠다. 자전거 여행에 일체 무익한 행위다. 아홉 시가 넘자 네댓의 남녀가 찜질 옷을 입고 나타났다. 포동포동한 수용소 죄수들 같다. 주민인 듯 서로 얘기를 나누더니 구석으로 흩어져 벌렁 드러눕는다.
섬을 들고나는 일정을 택한 건 배편과 섬 여행이란 점을 감안해서다. 별다른 목적은 없다. 신라 때 이사부가 정복한, 숙종 때 안용복이란 배포 큰 어부가 일인들에게 우리 땅이라고 일갈한 섬을 한 번 딛고 싶었다. 자전거 여행은 길의 경사도가 난이도를 가름한다. 더구나 배낭의 무게를 감안하면 후방의 지원 없이 전진하는 척후병을 닮았다. 무게를 줄이느라 일체의 부식은 넣지 않았다. 그러나 더운 날씨에 오르막이 자주 나타나면 땀은 육수처럼 쏟아질 거고 체력은 바닥날 거다. 여행은 이방인으로서 정주인의 모욕을 견디는 일이고 낯선 세계와 부딪치는 사건이다. 집을 떠나 별을 보며 파도소리에 귀담는 건 낭만이라기보다 풍경의 속살을 만나는 행위다. 바람에 풍겨오는 바다의 냄새. 날카로운 이빨이 박힌 듯 쉬지 않고 바위를 물어뜯는 파도. 어처구니없는 낭패를 만나도 견뎌야 하는 상황. 삶이 그렇듯 결정은 혼자의 몫이다. 터널과 오르막을 견딘다면 푸른 바다에 우뚝 솟은 화산섬 울릉도의 풍광도 한결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설 거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 외딴섬 울릉도에서 삶을 길어내는 그들의 그물엔 거칠고 짭조름한, 애잔한 얘기가 물속처럼 물풍하게 펼쳐질 거다. 푸른 뱃길 열어 만나는 섬 울릉도 오며 가며 무사하길 빈다.
처음엔 고기 잡으러 연안 바다에 나간 고깃배가 돛이 부러진 채 정처 없이 떠가다 닿았을 거다. 노련한 뱃사람들은 바람의 불어오는 방향과 별 자릴 보며 자신들의 위치를 가늠했을 거다. 대나무가 무성한 화산섬 울릉도는 그렇게 발견되었을 거다. 섬에서 샘을 찾고 나물을 캐고 고기를 낚아 기운 차린 이들은 돛을 수선하고 배를 고쳐 오던 방향으로 되갔을 거다. 수려한 풍경과 물 반 고기 반인 천혜의 어장 울릉도를 소문냈고 뭍의 어부들은 앞다퉈 돛을 펼쳤다. 급기야 하나둘 섬에 정착했고 육지와는 다른 섬 문화가 탄생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했고 바다는 모자람 없이 그들을 먹였다. 신라 때 이사부는 울릉도를 복속시켰고 숙종 때 병조판서 약천(藥泉) 남구만(1629~1711)은 영토의 중요성을 깨달아 대마도 사신의 사술을 간파하고 울릉도를 지켜냈고, 안용복의 죄를 묻는 대신들에게 안용복의 행위는 쾌사(快事)라 하며 공으로 치켜세우며 감형을 주장했다. 결국 안용복은 사형에서 유배형으로 바뀐다.
오징어는 울릉도의 특산물이다. 남도와 동지나해에선 갑오징어가 잡히고 동해와 울릉도에선 우리가 흔히 아는 오징어가 잡힌다. 울릉도 인근의 대화퇴 어장은 울릉도 인근의 다른 깊은 바다와는 달리 수심이 얕은 바다에 퇴적물이 쌓여 영양염류가 풍부하여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주문진의 어부들도 오징어 철이면 물고기를 유혹하는 집어등을 초파일 연등처럼 꿰달고 대화퇴로 달렸다. 근래에는 북한 수역에서 중국 어선의 남획으로 오징어값이 치솟고 있다.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쪽빛을 풀어 논 듯 파란 하늘에 걸려 꼬들하게 마르는 오징어를 보면 쫄깃하고 고소한 맛에 침부터 고인다. 배에서 바로 말린 배 오징어는 두툼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2)
찜질방 안으로 희붐한 동살이 튼다. 새로 한 시가 넘어 잠들었다. 잠 깨니 후텁한 공기에 목덜미에 땀이 번진다. 씻고 나섰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 활활 스친다. 산들은 이미 초록의 입성으로 성장한 여인처럼 부풀어올랐다.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매표소를 기웃거린다. 줄지은 여행객이 물고기처럼 배에 올랐다. 배는 정시에 출발했다. 모래시계처럼 사람들이 주르르 배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해운회사 직원이 선착장에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배는 꿀렁대며 후진하여 방향을 잡더니 뒤도 안 보고 내뺀다. 배는 수면을 잘게 부수며 나아간다. 갈매기 한 마리가 배를 따라온다. 수면에서 날개를 편 채 우아한 몸짓으로 속도를 맞추더니 이내 배 앞으로 사라졌다. 물결은 1~2미터로 고른 주름을 깔고 출렁였다. 수평선에 고깃배가 드문드문 떠 있다. 잠깐 졸다 깼다. 얼마 후 갈매기 2가 나타난다. 고개 빼고 가만히 내다보니 수면 위로 갈매기 3,4,5가 아니 점점이 하얀 파도와 섞여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갈매기들이 마치 군무를 벌이듯 낮게 날고 있다. 산림작업단 시절 성류굴 앞 숙소에서 밤마다 어둠을 끌고 나타나 컹컹 짖으며 맴돌던 개가 떠올랐다. 갈매기에게 바다는 마당이었던 거다. 고깃배가 던져놓은 부표가 기우뚱대며 파도에 몸을 맡긴다. 고기가 들고나는 건 물때의 조건이거나 노련한 어부의 직관이어도 때론 운수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거다. 난바다로 나아가자 뱃전에 부딪는 물살이 크게 퍼진다. 파도가 눈에 드러나게 높낮이를 이룬다. 나이 든 여자가 휘청대며 화장실로 가더니 비닐봉지를 들고 간다. 멀미가 시작되나 보았다. 머리가 조금 묵지근했다. 배는 늘 그랬다는 듯 조금도 망설임 없이 동쪽으로 달린다. 삶도 때로는 관성의 움직임에 따를 때가 있다. 박완서 선생은 '고통이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뎌내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존재의 허무는 천 길 물속의 아득한 침묵으로 가라앉고 개인은 묵은 낙엽처럼 쌓였다가 흩어진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쓸쓸하고 외로워도 물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관광객들은 길들인 짐승처럼 순하게 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내다본다. 갈매기는 여전히 수면에서 튀어 오르고 파도는 하얀 이빨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백여 명의 관광객을 선착장에 풀어놓으니 때아닌 단풍놀이다. 울긋불긋 차려입은 입도객이 가이드 따라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체인에 오일을 칠하고 천천히 선착장을 빠져나갔다. 울릉도 라이딩을 더러 한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놀이꾼 중 자전거 끌고 온 이는 나 하나뿐이다. 소금기 진한 바람을 마시며 도동으로 달렸다. 시계 반대방향이다. 점심 전이지만 후포항 편의점에서 너무 가볍게 때운 터라 배가 훌빈하다. 좁은 비탈의 지형이라 울릉도는 번번한 가로수보다 길가의 절로 자란 풀이나 나무가 그대로다. 가풀막 허위단심 오르다 산딸기를 만났다. 한창땐 지난 듯 시들어 보여도 맛보니 새초롬한 게 구쁜 맛이다. 그녀가 보았으면 퍼질러 앉아 배 채우자고 성화였을 거다. 이정표와 머릿속에 그려놓은 지도를 가늠하며 길 가다 독도박물관과 섬 체험관을 놓쳤다. 나중엔 안용복 기념관도 지나쳤다. 알고 보니 지도상의 그것들은 새로 난 도로와 한참 떨어졌다. 바닷가 거나 중산간의 오르막이다. 처음 온 울릉도를 가쟁이만이라도 일별 하고 싶었다. 개관하고 난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순서 아닌가. 도동을 지나 저동에 닿으니 소란스러운 번화가 느낌이 났다. 정작 마주치니 배에서 흩어진 관광객이 여기 다 모인 것 같았다. 점심때이니 배 채우고 돌아볼 모양이다. 그들은 관광을 왔고 나는 여행을 한다. 낯선 곳의 라이딩 팁 하나. 밥때가 되면 메뉴 가리지 말고 먹고 본다. 어물쩍대며 고르다 밥때를 놓치면 라이딩은 고난의 행군이 된다.
가파른 언덕 다음엔 급한 내리막이다. 인생도 그렇다. 양손에 힘을 잔뜩 주고 내려가니 디스크에서 고무 타는 내가 났다. 이러다 브레이크 파열로 처박히는 건 아닌가. 그럴 때마다 그늘에서 쉬었다. 쪽빛 바다 위에는 하얀 거품을 내며 고깃배가 오갔다. 한나절만에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관광안내소 아가씨가 일러준 대로 텐트 칠 곳을 찾았더니 '비둘기 서식지'란 곳은 후박나무 가지에 엉성한 나무통이 덩그랗게 달려 있었다. 동네의 쉼터인 듯 수백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후박나무 세 그루와 겸연쩍은 표정으로 한쪽에 선 곰솔이 적당히 구색을 갖춘 훌륭한 장소였다. 아래엔 끈길진 파도가 시비하 듯 툭툭 해안도로 옆구리를 건드렸다. 맞춤하지만 초저녁의 동네란 오가는 눈이 많은 법.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었다.
말이 일주도로지 그냥 45km가 아니었다. 불뚝 솟은 화산섬은 사람의 길을 순순히 내주지 않았다. 바람과 파도에 시달린 섬의 도로는 곳곳에 상처를 안고 버틴다. 원래 길은 생긴 대로 산을 넘고 물을 돌아 열린 거였는데 요즘은 바위를 뚫거나 산을 깎아 길을 낸다. 사람의 쓸모에 맞게 바꾸는 거다. 탄탄대로. 빠르게 효율을 강조하는 가치가 외려 사람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꼴이다. 빨리 가서 뭐 하자는 건가. 섬을 일주하며 본 것은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았다. 제주도처럼 땅값의 광풍에 들뜨거나 하지는 않아 보인다. 동해 한가운데 우뚝 솟은 울릉도의 모습은 쌍봉낙타의 부드러운 혹을 닮았다. 가도 가도 가게가 드물고 섬을 닮은 사람들이 바다와 함께 자고 움직인다. 길을 묻거나 인사를 나눠도 예전 질박한 심성의 조선 시대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다. 나물을 키우고 고기를 잡고 뭍으로 나간 자식의 안부를 걱정하는 소의 잔등처럼 넉넉한 인심을 닮았다. 사람의 바탕은 어울림의 가락인데 세상이 망쳐버렸다. 더러운 정치가 역하고 토악질 나는 비교와 상처의 트라우마. 감추고 가린 역사의 진실을 묻어버린 가납사니들의 농간에 망둥이처럼 만족을 모르는 탐욕의 질탕에서 허우적대는 삶이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장님이 되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의 상록교목이다.
중부지방 사람들이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수종은 목련과의 낙엽교목이다. 후박나무는 우리나라의 남부가 원산지고 일본목련은 일본이 원산지다. 둘 다 지름이 일 미터나 자랄 정도로 거대한 나무다. 높이도 이십 미터까지 자라 녹음 수종으론 으뜸이다. 후박나무의 '후박(厚朴)'은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다는 뜻인데 울릉도서 후박나무의 후박한 인심 덕을 보는 중이다. 피로한 기운에 잠들었는데 텐트가 쏠리는 느낌이 들어 잠 깼다. 밤이 되니 파도는 한결 세졌다. 심술궂은 시누이가 새벽동자 지으라고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하늘과 바다가 어둠으로 한 몸이 된 칠흑 속에 단단한 믿음처럼 고깃배의 불빛이 보였다. 망망한 어둠 속에 흔들리는 배엔 고단한 어부의 꿈이 타고 있을까. 그물처럼 그의 삶도 부푼다면 검푸른 바다와 씨름하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어도 쿠바의 산티아고 노인처럼 인생은 그것으로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소년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삶은 외롭지 않을 거다. 텐트 밖에 머리만 내놓고 있으니 바람에 떨어진 후박나무 이파리가 얼굴을 때린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에 익숙한 섬사람들은 곤한 잠 속이다. 어설픈 이방인은 낯선 동네 한가운데 들어와 잠 설치는 중이다.
나리분지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배낭과 자전거를 펜션에 맡기고 나오니 홋홋하다. 바람은 시원했다. 사동리 후박나무 아래 파도소리 들으며 잠 설치다 다섯 시에 일어났다. 식당에 핸드폰 충전을 맡기고 짐을 꾸렸다. 섬 일주를 어제 마쳤으니 하루가 남아 오늘은 내륙을 가볼 생각인데 짐이 걸렸다. 부근 펜션은 주말이라 예약 만실이란다. 펜션 주인과 얘기 도중 옥상을 쓰면 어떻겠냔 제안. 물 전기 나오니 됐다. 싸게 얻었다. 우선 손님이 안 든 방에서 씻어도 좋단다. 빨래하고 샤워하니 사람 꼴 난다. 어제 기신기신 비지땀 흘리며 왔던 길을 차 타고 보는 느낌은 새로웠다. 나리분지는 텔레비전서 보던 대로 세숫대야 같이 생겼다. 산마늘 밭에는 산마늘 꽃이 끝없이 피어 있었다.
울릉도는 버스노선이 잘 짜여 있다. 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도 되고, 정한 목적지마다 연결되는 버스 시간표로 일정을 세워도 된다. 버스를 기다리며 고즈넉한 섬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관광회사의 가이드나 렌터카도 한 방법이나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건 대중교통을 따라오지 못한다. 자전거로 속속들이 찾는 건 체력의 소모가 만만치 않다. 자전거로는 해안선을 따라 섬을 일주하는 걸로 충분하다. 내륙은 바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리하다. 천 원만 내고도 아찔한 가풀막을 오르내리는 쾌감은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어제 배에서 내리기 전 중년 사내가 중얼댔다. '뺏기기 전에 함 봐야지' 독도를 두고 한 말이었다. 묵지근하게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생각이 없기로 같잖은 말을 뱉다니. 국가나 민족을 앞세워 영토 주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오래전에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살았던 사람들이 삶을 버텨내기 위해 사나운 물살을 헤쳤던 장소다. 공간과 시간의 실존이 엄연한 사실을 우겨대는 일본이야말로 영토 야망의 탐욕을 씻어내지 못한 것이다.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후대에게 불의한 충성을 강요하는 행위는 반평화적이다.
(3)
안용복 기념관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린다. 호로로록 꾀꼬리 소리 쭈뼛대는 산새 소리 요란하다. 적막감을 못 견디겠다는 듯 눈부신 유월의 햇볕이 텅 빈 기념관 광장을 쏘아댄다. 섬조릿대 너머 죽도가 보인다. 섬은 정오의 무료에 익숙한 듯 잔잔한 수면에 누워 나른하다. 관광은 말 그대로 스치가며 대상을 즐기는 행위다. 섬의 맛집을 돌며 색다른 미각을 즐기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도락이다. 그러나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의 과거를 일별이라도 톺아보거나 사고하지 않는다면 삶의 유의미는 멀어진다. 삶은 욕망이 덧칠해져 그저 그렇게 굴러온 게 아니다. 대만의 관광코스에서 대북(臺北) 박물관 견학이 사라졌단다. 대륙의 공산당에게 쫓겨난 장제스가 엄청난 양의 국보와 보물을 섬으로 날랐다. 순차적으로 몇 년에 걸쳐 전시해도 다 못 볼만큼의 규모다. 대륙은 땅을 치며 눈물을 삼켰고 대만은 떡하니 박물관을 지어 선대의 문화유산을 뽐낸다. 대만은 아직도 대륙을 본토 수복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본토의 문화를 보려고 대륙 사람이 떼지어 대만을 방문한다.
정시에 아까 내려주고 되돌아갔던 버스가 돌아왔다. 기사가 알은체한다. 버스 옆구리가 결릴 정도의 급경사를 내려와 관음도가 보이는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는 천부 쪽으로 사라지고 도동 가는 차를 기다려야 한다. 어제 자전거 타고 왔을 때 정류장에서 낮잠 자던 백구(白狗)는 보이지 않고 해안 절벽을 나는 괭이갈매기 소리가 요란하다.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여행하면 차를 타고 순식간에 스치던 사물과 풍경이 들여다보인다. 찬찬히 관찰하면 대상의 속살이 나타난다. 관찰이 사유를 통해 관념의 껍질을 한 겹 벗겨내면 통찰에 가까워진다. 통찰은 수직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수평적 인식의 확장이다. 많이 안다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인식의 틀을 자꾸 깨어야 일반적 인식을 넘어설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풍경은 눈을 통해 보는 대상에서 벗어나 호흡을 함께하는 대자의 관계로 진입한다. 존재의 겸허가 들어서는 순간이다. 안다는 것에서 멈추면 삶은 진부하고 구태의연해진다. 과거의 지식과 정보는 더 이상 삶을 삶이 되게 부추기지 못한다.
배차시간표는 한 시간 넘게 기다리란다. 슬슬 배고프고 해서 호박만 한 몽돌이 깔린 바닷가를 어슬렁댔다. 방파제 마당에 봉고차 한 대가 있다. 낚시를 하는 듯해 구경하러 계단을 내려갔다. 여자는 라면을 끓이는 중이고 남자는 테트라포트 사이에 낚시를 넣고 입질을 기다린다. 물 바닥이 투명하게 찰랑거렸다. 그들만의 풍경 속으로 끼어든다. 낚시라면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충분했다.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낚시를 좋아했던 아버지 덕에 중학교 이학년 때는 내 인터뷰 기사가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고 가족이 낚시 전문잡지의 달력에 나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날 호명해서 놀랐는데 조간신문을 보는 어른들의 빠른 정보 전달력에 눈뜬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지식과 정보의 분별에 민감하지만. 암튼 광고회사 시절엔 신문협회에 찾아가 그때 기사를 찾으려고 했지만 찾진 못했다. 남자에게 조과(釣果)를 물었다. 신통찮다고 한다. 그저 유람 삼아 나왔단다. 경북 칠곡에 사는데 자식들의 팔순 잔치를 마다하고 봉고차를 캠핑카로 꾸며 팔도 유람이란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건 건강 탓도 있지만 나도 나이 들어간단 얘기다. 즐거운 여행 하시라고 덕담을 떡밥처럼 던지고 돌아서는데 소주 한잔? 하고 발길을 잡는다. 허기 중에 듣던 하늘의 음성이었다. 사양하는 척 겸손을 보였지만 재차 권하자 바로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시푸른 바다와 관음도를 바라보며 술병을 땄다. 염치 불고하고 빵과 소주를 몇 순배 얻어마셨다. 빈속이 금세 불콰해지고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내외는 말을 아꼈지만 따스함이 몸에 밴 분들이었다. 하나라도 내어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통에 눈물이 날 뻔한 한낮의 대작이었다. 화산암의 숭숭 뚫린 절벽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쳐갔다. 흙내를 맡은 해국이며 섬 지호, 섬조릿대가 하하 웃으며 잘게 흔들렸다. 어른과 조력(釣歷)을 나누고 과하거나 무례하지 않게 일신의 내력을 얼비치고 손 흔들고 헤어졌다.
울릉도의 강남이란 도동항에서 물회에 소주를 마셨다. 기분 좋게 오른 낮술로 내릴 곳을 지나쳐 걷는 바닷길은 흡족했다. 다시 못 올 섬, 울릉도 풍경이 넉넉하게 품어줘 황감하다. 펜션 옥상에 텐트를 쳤다. 여긴 모기도 파리도 만나기 힘든 여자처럼 드물었다. 육지와 떨어지고 바람이 드센 탓인가 보았다. 손빨래하고 밥 끓여 이른 저녁을 먹었다. 난간에 기대 짭조름한 바람맞는데 저녁 밥때인지 괭이갈매기가 요란스레 식판을 두드린다. 어둠이 바다와 한 몸 되면 고깃배도 집어등 달고 꿈을 밝힐 거다. 유혹의 빛이언정!
새벽이 열린다.
희붐한 빛이 동녘에 나타난다. 뾰족한 화산암 기둥이 거인처럼 우뚝 선다. 해를 진 거인은 밤새 지구를 돌아왔다. 졸음을 거둔 고깃배가 집어등을 끌고 움직인다. 부지깽이나물 밭 위 곰솔 숲에선 산새 깃 터는 소리, 산꿩, 갈매기 뒤채는 소리가 날카롭게 섞인다. 바다는 순한 물살로 섬의 발목을 적시며 애무한다. 늦도록 왁자하게 놀던 관광객들의 꿈길은 고요할까. 만선이 되어 돌아오는 배는 깃발을 단다. 고기잡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쿠바의 산티아고 노인처럼 몇 날 며칠을 파도와 싸우다 빈 그물로 돌아와도 사내의 무사귀환은 가족에겐 풍어의 소식과 맞먹는 거였다. 모두들 풍어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어떠랴. 텅 빈 어창이어도 그리운 사람 함께 숨 쉬는 오늘이 더욱 소중하지 아니한가. 얼굴 씻는데 울릉도의 자국이 버석하게 묻어난다. 섬에서의 이틀 밤 잘 지냈다. 바다와 파도와 바람이 몸에 스몄다. 우렁한 눈망울 가진 소의 잔등 같은 섬이여, 내내 안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