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

by 소인

떠나라!

걷든 자전거를 타든 차를 타고 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떠나라, 어디든지.

나의 여행 경험은 경력 단절이 크다. 이십 대 무렵엔 주로 걸어 다녔다. 회사원일 때는 쉬는 날이면 차를 타고 물가에 나가 낚싯대를 던졌다. 수십 년이 지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아 울릉도까지 갔다. 다리 아픈 이후 캠핑 장비를 차에 싣고 다닌다. 여행은 목적 없이 하는 게 제일이다. 목적지나 여행지에서의 목표가 있으면 지역이나 대상에 인식이 머문다. 물론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그렇게 내버려 두진 않는다. 대충 정해놓고 가는 과정이 스릴 있다. 가다 스치는 풍경과 만나는 사람, 번득 떠오르는 낯선 인식이 여행의 맛이다. 유원지나 관광지는 비껴가는 게 원칙이 되었다. 전국을 다녀 봐도 옛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고 유적지도 말끔하게 단장된 모습이다. 흑백 사진이나 상상으로 그려볼 뿐이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 있는 곳을 주로 찾는다. 박물관은 좋은 볼거리다. 짧은 여행 경험 상 필요한 부분을 간추려 본다.


여행 중 빠뜨릴 수 없는 항목은 먹는 것과 잠잘 곳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준비 물품 중 캠핑 장비는 공통으로 들어간다. 인터넷 쇼핑으로 내게 필요한 캠핑 도구를 장만할 수 있다. 캠핑 도구도 취사도구와 취침 도구로 나뉜다. 버너와 코펠, 텐트와 침낭이면 된다. 말은 간단해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준비할 물품은 천차만별이고 종류도 많다.

취사는 끓여 먹기와 데워 먹기가 있다. 생식이 있지만 난 생식을 하지 않는다. 일인 여행을 기준으로 세부적으로 들어간다.


먼저 취사하기.

삼시 세끼. 여행 중 피로를 덜 수 있는 건 식사와 휴식이다. 여행 중 하루 세 끼를 스스로 해 먹는 일은 큰 일이다. 맛집을 찾아 지역의 풍미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밥은 냉동밥을 데워 먹고 국은 냉동 건조한 즉석국으로 해결한다. 반찬은 챙겨가는 대로 하고 모자란 열량은 초코바나 간식으로 보충한다. 자전거 여행이나 도보여행은 짐을 더는 게 제일이니 그때그때 마트에서 부식을 사는 게 낫다. 버너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발열팩을 이용하는 바로쿡 용기에 넣어 데울 수 있다. 한겨울 개울가에서 냉동 순댓국을 데워 술 마시며 겨울밤의 정취를 느끼는 것도 여행의 맛이다. 버너 연료, 코펠 설거지 등을 감안하여 최대한 간편하게 생각한다.


잠잘 곳 찾기.

텐트와 찜질방이다. 겨울에는 동계 텐트와 동계 침낭, 핫팩이 필수다. 여벌의 방한복도 챙기고 텐트 안에서 불을 이용한 난방은 금물이다. 해마다 사고가 발생해도 방심은 여전하다. 자다 죽느니 떨고 자는 게 낫다. 동계 침낭에 들어가 핫팩을 비벼 주머니에 넣으면 입김 탓에 텐트 천정에 얼음이 달려도 영하 15도는 너끈히 버틴다. 하계 캠핑 시 방수가 잘 되는 텐트를 쓴다. 필요하면 타프를 설치한다. 텐트에도 부속품이 다양하다. 타프, 폴대, 스트링, 스토퍼, 팩, 망치, 깔개 등 관심을 갖고 검색하면 꼭 필요한 게 보인다. 스트링(줄)을 묶는 매듭법은 평소 익혀 대여섯 가지면 충분하다. 응용해서 쓰는 게 지혜다. 끈, 여분의 대형 비닐 등을 챙겨가면 비 올 때, 추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그만큼 텐트는 보온과 방수가 중요하다.


급하면 민박, 모텔 등 숙소를 찾아야 한다. 영천 양파밭에서 야영 준비하다 폭우를 만났다. 날은 어두워지고 술 한 병 비웠는데 빗살이 심상치 않았다. 까딱하면 낭패 보게 생겼다. 철수를 결정했다. 빗길을 달려 모텔을 찾았다. 뜨거운 물에 몸 담그고 밀린 빨래를 하고 편하게 잤다. 영양 고개를 넘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민박집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땅거미 깔리기 시작한 길을 더 가니 맞춤한 계곡이 나타났다. 투명한 개울물에 몸 씻고 밥을 끓였다. 소나무 사이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나중에 다시 가 보았을 정도다.


여름철이면 물가 아무 곳이나 안전한 곳을 정해 야영하면 된다. 겨울엔 마땅한 장소를 찾기 쉽잖다. 요즘엔 들판이나 마을 입구에 정자를 많이 세웠다. 주민 또는 마을 이장에게 허락을 구해 일박해도 좋다. 캠핑장을 검색해 묵어도 된다. 겨울엔 문 닫은 캠핑장이 많아 의외로 호젓한 곳에서 혼자만의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관광객을 위한 시설을 갖추었다. 울릉도 일주할 때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있어 씻기 편했다. 물이 귀한 곳이면 아껴 써야겠지만 하다 보면 물 한 컵의 양으로 양치와 세안을 해결하기도 한다. 도인의 경지다.


자전거 여행은 안전이 필수다. 헬멧과 펑크나 고장을 대비한 연장도 챙겨야 한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브레이크가 생명이다. 점검과 수리는 미루지 말고 즉시 한다. 통영에서 아카시나무의 가시가 박혀 펑크가 났다. 준비해 간 연장으로 수리하기엔 날이 어두웠다. 다행히 문 닫기 직전의 수리점을 찾아 해결했다. 술자리 가려던 수리점 주인은 친절하게 고쳐주었다. 영남 여행 마지막 날 찜찜한 브레이크를 성가시단 이유로 고갯길을 올랐다. 문제는 내리막길에서 터졌다. 무게로 가속이 붙어 제어장치가 말 듣지 않았다. 칠팔백 여미터 15도 급경사 굽잇길을 쒹쒹 소리 나게 내달렸다. 불과 삼십 여초의 시간이 삼십 년 같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살면서 만났던 얼굴들이 영화 스크린처럼 나타났다. 오른쪽의 암벽과 왼편의 가드레일밖에 선택지는 없었다. 부딪히면 팔다리는 부러진다. 팔다리뿐 아니라 몸이 깨질 거였다. 각오를 다질 찰나 곧은길이 나타났다. 여전히 가파른 길이었다. 몽골의 마상 무예처럼 양발을 한쪽으로 몰아 신발 바닥을 브레이크 삼아 문댔다. 츠츠츠! 자전거가 멈췄다. 살아났다. 신발 밑창이 반들반들 해졌다. 바보 같은 행위가 때론 생과 사를 가른 예는 허다하다. 아래 마을에서 맘 좋은 아줌마에게 연장을 빌려 브레이크를 손보고 집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며칠 지나 시내의 자전거 가게서 제대로 고친 건 물론이고. 기어와 프레임이 가볍고 튼튼한 것이면 중저가도 상관없다. 만일의 야간 라이딩을 대비해 헤드라이트는 필수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많이 생겨 자칫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으니 자전거 앱 등으로 길을 파악해 둔다.


걷거나 버스, 기차를 타면 느릿하게 풍경을 즐기는 장점이 있다. 시간표를 확인하고 환승 지점을 외워 두면 편리한 여행 방법이다. 요즘은 폰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합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천천히 사라졌다 나타나는 풍경과 사색을 섞어 새로운 인식을 만나는 행운을 맛볼 수 있다. 남도에는 섬과 섬이 연결된 연육교가 많이 생겨서 한 행보에 여러 곳을 들를 수 있다. 고흥의 소록도, 안면도 남쪽 지역, 군산의 고군산열도 등의 섬은 이제 차로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배편은 날씨가 운항을 좌우하니 미리 일기예보를 보고 정해야 한다. 큰 배일수록 멀미가 덜하고 작고 빠른 배는 롤링이 심해 멀미가 올 수 있다. 멀미약도 챙기면 도움이 된다.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빠르고 정확하다는 면에선 편한 여행 수단인데, 지나치는 지역이 넘쳐날 수 있다. 이럴 때는 차를 중심 지역에 두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도보로 천천히 지역을 톺아보면 좋을 거다. 여행 기간은 형편에 따라 정한다. 기간이 길면 소요되는 품목이 늘어나고 식료품 등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혼자서 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인데 인원이 늘면 역할을 나눠 준비할 물품을 정해도 된다.


해외여행, 크루즈 유람선, 유명 휴양지도 좋지만 돌아보면 국내엔 역사 유적지가 많다. 평소 관심 분야의 책을 읽고 떠나면 풍부한 인식을 만날 수 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선대의 꿈과 눈물이 밴 고장을 몸으로 더듬는 것도 살아 겪는 도락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각지의 박물관과 도서관, 맛집, 남아 있는 자연을 발로 걷고 몸으로 겪으면 과거 현재 미래가 절로 오는 것 아니며 지금 마시는 공기에 고통과 한숨이 스민 걸 느낄지 모를 일이다.

여행, 어렵지 않다. 짐 챙겨 떠나면 된다. 여행은 낯선 풍경을 만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식을 얻는 것이다. '책을 웬만큼 읽었다'는 말은 한참 무지한 말이다. 책은 산소와 같아서 끊임없이 읽지 않으면 오염된 인식에 질식하고 만다. 사유가 지리멸렬 해지고 중언부언이 된다. 집은 편하지만 진부하다. 편한 집 떠나서 하는 개고생은 인식의 결핍을 느끼고 새로운 인식을 채워나가는 힘이 된다. 하나뿐인 그대여, 떠나라!

울릉도 일주도로

주남저수지(창원)

윤이상 기념관(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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