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48)


주꾸미 볶음이 먹고 싶으면 하면 된다.

마트에 가면 베트남산 냉동 주꾸미가 있다. 서해와 가까운 지역이라면 재래시장에서 주꾸미를 살 수 있고, 시간이 있다면 인터넷 쇼핑으로 국산 주꾸미를 주문하면 된다. 매콤하게 양념된 주꾸미도 판다. 주꾸미를 사는 방법은 다양하다. 야채는 마트 야채 코너에 늘 싱싱한 상태로 포장, 진열되어 있다. 예전의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전국 어느 동네나 편의점과 마트가 대세다. 지갑에 현금 없이 카드 몇 개만 넣고 다니면 산골, 섬이고 지불 오케이다.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다의 자원이 바닥나고 더운 날씨가 자리 잡아 농사가 되지 않는다. 마트의 진열대는 텅텅 비어 있고 쌀값은 다락같이 올라 웃돈을 주고 암거래하는 현실이 닥치면 어떨 것인가. 주꾸미 볶음은 전설 같은 음식이 되고 숲 속의 맑은 옹달샘은 사라진 지 오래고, 바다와 육지 하늘 강 가릴 것 없이 부연 먼지만 가득하고 썩은 물이 흐르고 홍수와 가뭄, 산불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은 방독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이웃 동네를 찾고 바이러스와 전염병이 창궐해 나라끼리 국경에 장벽을 치고 살게 된 세상이라면.


동지나 해의 사월은 하늘이 흐리면 눈발이 날렸다.

우윳빛 대륙붕 수심에 그늘을 내리고 부표를 던진다. 봄바다에 날리는 눈발은 아름다웠지만 젖은 장갑에 언 손은 고통스러웠다. 항구를 출발한 80톤급 여수 선적 제 65 대창호는 다도해의 섬을 스치며 남쪽으로 달린다. 공해인 54 해구까지 닿으려면 꼬박 이틀 밤낮을 파도를 뚫고 가야 한다. 두 시간마다 벨이 울리면 선창의 선원들은 조타실에 올라가 선장 대신 키를 잡는다. 선장이 위도와 경도에 맞춰놓은 지점을 향해 키를 조정하면서 졸린 눈을 비비며 칠흑의 밤바다를 노려본다.


이른 봄에 주로 잡히는 어종은 갈치 갑오징어 아구 수조기 등인데 투망과 양망을 거듭하며 열사흘을 흔들리는 바다에서 버틴다. 주 어종이라고 해도 그물에 그런 것만 드는 건 아니다. 넙치, 병어, 고등어, 쥐치, 꼴뚜기 등 바다에 사는 다양한 어종이 걸리는데 제철이 아니라 양이 적다는 뜻이다. 한 번은 닻을 끌어올리니 커다란 문어가 붙어 있었다. 선원들은 환호하며 일이 끝난 후 문어를 손질해 삶아 먹었다. 이런 건 선장의 묵인 하에 이뤄지는데 복어는 다르다. 내장과 알에 든 독이 치명적이라 선장은 먹는 걸 금한다. 하지만 바다에서 사는 선원들이 맛있는 복어를 지나칠 리 있는가. 선장 몰래 손질해 탕을 끓이거나 얇게 썰어 회로 즐기기도 한다. 어떤 날은 곰장어가 잡히기도 했다. 선원들이 으쌰 으쌰 그물을 당기는 중에 기관장이 달려들어 팔뚝만 한 수조기를 얼른 집어 기관실 바닥으로 던지며 내게 눈을 찡긋한다. 그날 선원들이 잠든 후 기관실에서 기관장과 나는 수조기 회를 맛나게 먹었다. 처음 먹어본 조기 회는 지금까지 기억날 정도로 별미였다. 나중에 제주도에 먹은 갈치 회, 고등어 회 등이 회 중에선 으뜸이라 생각한다.


크레인으로 그물을 갑판에 올려 로프를 당기면 그물에 든 고기가 갑판 위로 좌르륵 쏟아진다. 선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고기를 선별한다. 갑오징어, 갈치가 주종이면 그것들을 크기별로 상자에 담고 얼음 삽질로 얼음을 덮는다. 갑판 한쪽에 쌓인 고기 상자는 잡고기를 골라내고 치어 등과 함께 바다에 버리고 어창에 차곡차곡 내린다. 처음엔 돈이 되지 않는 잡어와 치어를 버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조기와 갈치는 새끼라도 사료나 어묵 가공용으로 나가기 때문에 담는다. 그러나 다른 어종은 바다에 버린다. 그것도 작업 때문에 바로 선별해 버리긴 어렵고 고기 선별이 다 끝난 뒤에 갑판을 물청소할 때 삽으로 버린다. 그동안에 치어들은 갑판 위에서 죽었다. 동해에서 대게를 잡을 때 빵게라 부르는 암컷 대게와 등딱지의 크기가 9cm 기준에 미달하는 어린 대게는 바로 바다에 던진다. 그러나 저인망 어업의 그물 작업은 죽은 다음의 치어를 쓰레기처럼 바다에 버린다. 그물에 걸려 산소를 마시지 못한 돌고래, 상어, 거북이, 바다새 등은 이미 그물 안에서 숨이 끊긴 후다. 물고기 치어나 대상이 아닌 어종이 잡히는 걸 부수어획이라고 한다. 부수어획 (附隨漁獲)은 어획 대상이 아닌 어종을 잡는 일이다. 참치 어업에 우발적으로 잡히는 상어류와 같은 어류나 바다새, 바다거북 등 보호 어종 및 멸종 위기 어종 등은 어업인의 어획 대상이 아니므로 어획되더라도 일반적으로 폐기하는 경우가 많아 자원의 낭비로 간주되기도 한다. 부수어획이 계속되면 바다의 자원과 생태계는 무너진다. 대양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수어획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림잡아도 전 세계에서 460만 척의 어선이 잡아 올리는 물고기의 수량은 엄청나다. 부수어획에서 버려지거나 죽는 바다 생물 또한 가늠이 어려울 정도다. 양식 어류의 먹이 또한 치어로 만든다. 바다 자원의 순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명제다. 지구의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바다가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인간종의 멸절도 먼 일이 아니게 되었다.


미래가 암울하다고 해서 우거지 상을 하고 살 수만은 없다.

에리히 프롬은 '삶에 대한 사랑은 모든 종류의 사랑의 핵심이다. 사랑은 인간, 동물, 식물 안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삶에 대한 사랑은 추상적인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모든 종류의 사랑에 포함되어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핵심이다.'라고 했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또한 내가 좌파인지 생태주의자인지 페미니스트인지 아니키스트인지 분명하게 말할 순 없지만 나는 이것들이 내포하는 사상과 활동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란 개체는 불안정하고 흔들리며 변화하는 체질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를 살 수록 의식이 자란다면 현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책을 통해 얻는 지적 확산의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는 도락이라면 골방의 마스터베이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성은 연대와 공생을 먹이로 자란다. 아직은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와 벌이 날아온다. 봄이면 시커먼 미세먼지 속에 핀 벚꽃 아래서 연인을 만나고 중금속이 흐르는 강물에 낚싯대를 던지고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항생제 뒤범벅인 갈비를 뜯는다. 생명이란 눈물겹게 아름답고 애잔한 존재다. 통계는 집단의 사회 현상을 수치화한 것이다. 과학자와 생태 전문가는 수량화한 지구의 운명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비웃는 사람들과 불안한 사람들은 소를 키우고 피로연에 참석해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비운다. 정의와 공정을 외칠수록 그것에서 멀어지는 세상, 평화와 연대를 말할수록 분열과 혐오가 판치는 사회.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배제할 권리도 포용할 의무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함께하지 않는 이에게 일일이 손을 내밀 친절을 베풀 능력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무너져가는 환경에서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고심 중이다. 실천적인 삶을 화두로 삼았음에도 미적거리는 태도는 불안한 존재의 표상이다.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가던 바다 수영을 접고 도서관에서 가벼운 책을 골라 휴무 이틀 동안 읽었다.

아나키스트인 서양인과 만나 산속에서 아이 낳고 사는 사람과 글쓰기의 길을 꾸준히 갈고 다듬는 작가의 책이다. 작가는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키기 위해 글쓰기를 주업으로 삼았다. 산속의 여자는 자급자족의 산속 생활을 하면서 생태와 동화되는 삶을 꿈꾸며 자신의 인생을 꾸며 간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무겁지 않게 써 내려간 두 사람의 글에서 풋풋하지만 속 깊은 울림을 느낀다. 저들이 꿈꾸는 세상이 내 곁에 다가와 살며시 허리를 껴안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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