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1)
시골 병원의 진료 대기 시간이 긴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군에서 하나뿐인 종합병원은 언제나 환자로 넘쳐났다. 진료 시작시간 한 시간 전에 가서 접수했는데 내 앞으로 열일곱 명이나 있다는 얘기다. 간호사가 가리키는 정형외과 복도 앞에는 노인들이 벌써 의자를 차지하고 빈자리는 없었다. 더러는 서 있기도 했는데 한 시간을 복도에서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앉은 채 조는 노인들은 병원이 쉬는 주말 내내 고통에 시달리다 새벽 첫차를 타고 나왔을 거다. 접수창구에는 접수는 일곱 시, 진료는 여덟 시 사십 분부터라고 써 붙였다. 난 한참 늦은 접수였다. 살면서 정형외과 진료를 여러 번 받았다. 아킬레스건 접합 수술을 했고, 어깨 회전근 접합 수술을 했다. 병증과 진단은 확실했고 수술 결과는 좋았다. 나머진 허리와 손목 통증 정도였고 약을 먹고 이내 나았다. 접수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면서 동료에게 전화했다.
오래전 진작 진료를 받아야 될 것을 오늘 받는다. 고통은 없다. 그러나 고통은 이미 화석화되어 단단한 껍질이 되어 느끼는 건지 고통을 모르는 건지 분별없는 상태가 되었다. 장애는 타인의 시선에 뜨이는 정도나 장애를 가진 자가 스스로 장애를 감출 수 있다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옷 등으로 가릴 수 있다면 몰라도 일상 동작에서 드러나는 장애는 노출이 불가피하다. 남들에게 불편하게 비치는 사람이라도 '난 떳떳해, 장애는 내 탓이 아냐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야'라고 다독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정신 승리하는 법을 택하는 건 그의 자유다. 분명한 건 사회의 차별적 시선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장애만으로 동정과 연민을 받는다거나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견딘다는 건 불합리하다. 정상의 신체가 도덕적으로도 완벽하다는 명제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여자애였다면 어땠을까.
신체의 장애를 지니고 시집인들 온전히 갈 수 있었을까. 설사 그녀가 성공한 사회인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만큼 젠더에 대한 차별 시선은 내게도 남아 있었다.
시골 병원에도 화타와 같은 명의가 있다.
스타 의사인 셈인데 노인들은 접수창구에서 그 의사만 찾는다. 그러면 간호사는 내과에 접수를 올린다. 하얀색 모자에 도열병약이라고 쓰인 모자를 쓴 사람이 보였다.
간호사는 바쁘게 오가며 물리치료와 주사 등을 대기환자에게 알려준다. 진료 시간을 줄이기 위한 거라 짐작됐다. 이웃집 여자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한참 뒷줄인데 들어가더니 치료받고 병원을 나갔다. 이게 뭔 조화인가 뜨악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대기 환자는 60대 이상이 구 할이었다. 손목에 붕대를 감은 남자에게 손목에 붕대를 감지 않은 남자가 빨간 고추 딸 시기를 말해준다. 손목에 붕대를 감은 남자는 농사 초보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손목에 붕대를 감지 않은 남자에게 더듬거리며 묻고 들었다. 시간은 더디게 가면서도 계속 흘렀다. 쪽지를 들고 나온 환자는 주사실로 수납으로 약국으로 엑스레이실로 흩어졌다. 팔에 깁스를 한 남자, 한 쪽다리에 붕대를 감고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아는 이를 만나 줄곧 수다를 떠는 여자 등 각색이다. 동료는 지금 초소 앞을 오가며 걷고 있을 거다. 시간이 갈수록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늦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쌓였다. 동료는 괜찮다며 볼일 보라고 했지만 빠지는 시간도 어느 정도다. 난 많이 늦을 거라 말해두었지만 정도는 주관적 차이다.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손을 먼저 보았다. 손가락 다섯 개가 정말 고사리 같았다. 아기는 구석구석 말짱했고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구라도 건강한 아이의 탄생을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천적인 부모의 형질 중에 장애를 이어받는 건 대물림의 고통이다. 괴물 같은 아기를 유기하거나 내 몸을 거쳐 태어난 소중한 생명을 키운다. 장애는 장애 자체의 불편함이나 고통에 있지 않다. 장애를 지니고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은 척박하고 엄혹하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중증과 경증으로 나뉘지만 등급에 관계없이 사회의 따가운 차별적 시선을 견뎌야 한다. 중증 자폐 장애인과 사는 부모가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기를 바라는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신과 지체의 장애는 그것이 비장애와의 차이만으로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비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불렀는데 그렇다면 장애인은 비정상인가라는 언어 차별로 비장애인으로 부르게 되었지만 여전히 차별 의식은 남아 있다.
살다 보니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이력서에는 하다 만 자잘한 이력은 생략하고 남 보기 그럴듯한 굵직한 흐름만 써넣는다. 대별하면 건설회사, 광고회사, 수목관리이고 나머지 중선배 선원, 아연광산, 고물장수, 벽돌공장, 리어카 보관소, 노가다 잡부 등의 내력은 숨긴다. 비정규직과 알바를 전전하는 요즘 사람들은 취준생을 포함해 거쳐간 직업의 종류가 스무 가지는 간단히 뛰어넘는다. 이력서를 심사하는 눈은 나를 판단하는 타인의 시선이고 나의 기능과 능력에 등급을 매기는 날카로운 시선이다. 생년월일과 성별은 이력과 함께 현재 그 사람의 노동 능력을 평가하는 데 절대적이다. 사람을 부리는 데 나이와 젠더를 따진다. 그런데 여기에 장애가 첨가된다면 정도에 따라 심각한 판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일의 종류에 따라 불합격 판정이 내려진다. 정신 장애와 지체 장애 중 신체의 외적인 부분인 절단 장애, 시청각 장애는 거의 모든 종류의 노동에서 위험을 이유로 배제된다. 산불감시원 면접에서 오십 대의 남자가 면접관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아 면접 도중 자리를 차고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보청기를 끼지 않았던 걸까. 상대의 목소리를 분별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를 지니고 살아온 그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직접 드러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는 무수히 많다. 선천적 장애가 아닌 살아가다 후천적 요인의 중도 장애는 장애 비율의 90%를 차지할 정도다.
돌이 되지 않은 아기는 기면서부터 주위의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가 빨고 씹는다. 기던 아기가 짚고 일어설 무렵이면 어미와 보호자는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된다. 아기의 손길이 닿는 곳의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종일 아기의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와 보호의 시선을 뗄 수 없다. 돌 전 손과 무릎에 힘이 붙어 번개처럼 기어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부대로 출근하고 어미는 집에 없었다. 집에서 일하는 식모 여자애가 아기를 씻기려고 물을 끓여 대야에 붓고 방에 들여놓았다. 아기는 건넌방에서 놀고 있었다. 식모애가 부엌에 잠깐 내려간 사이 아기는 힘차게 기어서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에 손을 넣는다.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화들짝 커진 식모애의 눈과 다급한 발소리. 변변한 의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아기는 아버지가 다니는 부대의 군의관에게 응급처치를 받았다. 작은 손을 붕대로 감싸고 상처 부위가 아물기만 바랐다. 시간이 흘러 붕대를 푼 순간 아기의 손은 조막손이 되었다. 손가락 하나하나 따로 붕대를 감아야 할 것을 한데 감아 화상에 덴 손바닥과 손가락의 근육이 붙어버린 것이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아기는 무쩍무쩍 자라 소년이 되었고 친구들과 시골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강원도의 산하는 푸르고 맑았으며 지독하게 추웠다.
一人暮らし(2)
장애를 숨기고 살았다.
일상이 불편한 것들에겐 깃발을 꽂아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을 땐 부딪치거나 체념했다.
실은 태어난 이상 불완전한 존재인데 모두 아무렇지 않게 살았다. 정상 비정상도 생성과 소멸을 타고난다. 비정상을 이상하게 보면 비정상은 점점 이상한 생명체가 되었다. 이상한 사람의 그룹은 소수자였고 다수는 소수를 업신여겼다. 차별은 몸에서 비롯했고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백인 남성 중산층의 로열패밀리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흑인 가수는 땀 흘려 번 돈으로 피부의 멜라닌층을 벗겨냈으나 보름달이 뜬 밤이면 도로 까매진 얼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차별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흐르는 계층의 초원으로 앞다퉈 달려갔다. 삶의 도처에 거미줄처럼 장애를 감고 사는 이가 늘어나자 어떤 곳에서는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권과 조폭 세계에서 감방 다녀오지 않은 전력은 수치와 부끄러움이었다. 창피해하지 않기보다 서열의 피라미드에 오르기 위해 앞다퉈 큰집으로 들어갔다. 히틀러는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신봉한 나머지 소수 세력에게 독가스를 뿜어대며 전쟁을 부추겼다. 히틀러는 유태인과 정치범, 정신병자, 장애인을 가스실로 보내 처형했다.
정상에게 꽂히는 적의는 젊은 날을 후벼 팠다.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삭이는 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그러나 정작 적의의 방향은 나의 불운이지 정상은 아니었다. 정상은 행불운의 기준에서 벗어난다. 그것에다 삶의 층위에 대한 변별을 강요할 순 없다. 가정과 사회는 다급한 밥벌이에 구성원의 장애엔 관심을 둘 수 없었고 누군가 하나는 불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다른 혐오 장애였다면 도태되거나 감금되었을 거다. 장애는 부모의 잘못도 죄의식을 가질 것도 아닌데, 그것을 부추기는 건 사회의 차별 시선 때문이었다. 아동기와 사춘기를 거치며 치달았던 신체의 열등감은 청년을 거치면서도 식어들지 않았다. 고통은 개별적 체험이고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리 습관적이고 익숙하다고 해서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정신 승리의 긍정적인 사고는 치유보다 아편의 중독을 가르치는 국면이 된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간단히 이해될 상황을 타인은 좀처럼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내 삶처럼 급한 건 없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일차 특성이다.
처음엔 오른손잡이였다.
글씨와 그림은 학교 다니며 오른손으로 했고 던지기나 야구는 왼손으로 했다. 섬세한 동작은 오른손, 힘쓰는 동작은 왼손이 담당한 셈이었다. 야구는 내게 불리한 운동이었다. 글러브 낀 왼손으로 공을 받아 던지려면 다시 글러브를 벗어 왼손으로 던져야 한다. 지명타자를 고집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모 몰래 복싱체육관에 다녔다. 신체의 불리함은 서클 활동에도 긴장을 가져다주었다. 남녀 학생의 교제가 엄격히 금지된 시절 흥사단 예배당 등 동아리는 절호의 기회였다. 여학생과의 악수를 꺼리고 피했다. 양손을 활짝 벌려하는 놀이를 피하다 동아리에서 나왔다. 부모를 졸라 전문의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어쩌다 이 지경으로 근육이 굳을 때까지 놔뒀냐고 했지만 수술은 가능하다고 했다. 육 남매가 학교 다니는 가난한 월급쟁이의 형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입영 신체검사에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고 노가다 가방을 메고 지방으로 떠났다. 건설회사 다닐 때 중동 취업을 마음먹었지만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의사는 소견서에 'fire scar'라고 썼다. 화상 흔적은 불이든 물이든 번번이 날 좌절시켰다. 그러나 날 절망에 빠뜨린 건 절망이 아니라 내가 깨닫지 못했던 가능성이었다. 지금은 그 가능성의 반만 써먹으며 산다. 동산바치가 되어 조경 가위를 들고 솔숲을 다녔다. 또각또각 왼손으로 힘주어 가지를 잘랐다. 오른손으로는 손톱을 잡았다. 힘이 덜 들어가고 수월했지만 종일 혹사당한 왼 어깨 인대가 결국 너덜하게 찢어지고 말았다. 왼 어깨 인대 접합 수술을 하려고 침대 위에 누웠다. 손가락 끝에 장치를 달던 여의사가 내 오른손을 보고 말했다. '저런... 이런 경우는 요즘 쉬운 수술이에요.' 난 눈 감은 채 고맙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수술할 생각은 없다. 불편한 채로 살아온 세월이 나의 자의식을 형성시켰다. 오른손에게 미안했다. 형편이 여전히 어려운 건 물론이다. 이제 와서 빚 내 수술한다고 군대 가서 총을 들 수도 중동 사막에서 돈을 벌 순 없는 노릇이다. 하얀 칼라의 세일러 복을 입은 여학생과 악수할 기회도 사라졌다. 양손을 세워 세수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사람을 만나 손잡을 기회는 줄어들었다. 글씨가 마음대로 안 써지고 예전처럼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낭패다. 평생 동안 펴지 못한 관절의 기능이 되살아날까. 세월을 보상한다는 생각도 억울할 것도 없다. 앞으로 수입이 끊어질 때를 대비해 장애인 복지카드라도 만들어 소소한 지출을 줄여보자는 심산이다. 손가락 끝 마디가 잘라졌다고 쪼르르 달려가 장애 등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난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오른손에게 훈장을 달아주고픈 심정이다. 손으로 인해 느낀 고통과 자의식은 세상을 한쪽으로만 보지 않게 해 주었고, 이분법의 차별 의식을 깨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의식은 정상에 대한 허황한 믿음에 있다. 이성애, 정상적 신체는 완벽하다는 상상은 결혼, 혈연 가족, 사회적 성공에 대한 습속의 구조가 우수하다는 환상을 심었다. 열성 인자는 배제되고 우수한 혈통이 살아남는다는 사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노골화하는 단초가 되었다. 불과 수십 명의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미 대륙을 초토화시키고 자신들의 혈통과 제도를 이식했다. 정복자의 무기는 문명의 우월성보다 그들의 몸에 따라온 균이었다. 인류 역사는 지배자들의 헤게모니를 피지배층에게 세뇌해 소수자를 억압했다. 신체와 혈통, 성과 남녀, 인종과 계층은 우연한 환경의 조건일 뿐 차별을 위한 구실이 될 수는 없다. 공정과 평등을 화두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난무하지만 공정과 평등은 한 사회 구조에서 또 다른 불공정과 불평등을 배태하고 다른 문명권과 충돌한다. 가장 무난한 용어와 사고는 차별의 철폐다. 차별 철폐는 공정과 평등에 도사린 불합리한 구조마저 분쇄한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는 P. A.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차별을 철폐하는 공생의 원칙이다. 그는 일체의 권력을 부정하는 자유공동체 연합을 주장하는데, 비유하자면 장애인의 반대어로 정상인이라 칭하면 장애인은 비정상으로 간주되어 편견을 가지게 된다. 정상인의 권력의 출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에서 비롯되니 용어에서부터 권력을 지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성애자가 정상이라면 동성애자는 비정상이고 나머지 양성애자, 무성애자조차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생태계의 성의 다양성을 무시한 결과다. 섹슈얼리티(성)는 다양성의 문제이지 다수냐 소수냐의 문제여서는 안된다. 어느 사회도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억압해서는 안된다.
접수부터 진료실에 들어가기까지 두 시간이 지났다. 진료실 문을 여닫으며 고개 내밀고 이름 부르던 간호사의 입에서 거짓말처럼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용수철 같이 의자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과장은 책상에서 환자와 얘기 중이었고 수련의 같은 키 큰 남자는 한쪽 책상에서 쉬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바빴다.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갈아주었다. 과장은 환자에게 처방전과 주사 또는 엑스레이와 시티를 찍으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벽 쪽의 컴퓨터를 만지며 드나드는 환자의 소통을 담당했다. 내 차례가 되어 의사 앞에 앉으며 모자를 벗었다. 의사 선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번쩍 민머리가 빛나는 순간이다. 의사는 나의 말을 듣고 진단서에 타이핑을 시작했다. 중간에 간호사가 참견하며 도와준다. 내가 읍사무소의 구비서류 내용을 내밀자 의사는 좀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장애 진단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바쁘니 시간이 한가할 때 다시 오시란다. 난 마스크 너머로 뜨악한 눈길을 보냈다. '아니, 다음에 오라면 언제입니까? 제가 의사 선생님이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가늠하고요?' 의사는 간호사와 시간대를 주억거리며 맞춰본다. '오전 열한 시나 오후 네 시면 좋겠는데 급한 수술이 잡히면 미뤄질 수도 있어요.' 간호사가 빠르게 말했다. 내가 그럼 예약이 된 거냐니까 그날 오란다. 의사는 '화내지 마시고 월요일 아침의 상황을 보십쇼.' '상황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도 근무 시간을 빼서 나온 겁니다. 그럼 수요일 네 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간호사가 써준 쪽지를 들고 진료실을 나왔다. 수납처에 쪽지를 주고 주차장으로 갔다. '그럼 그렇지. 육십 년 넘게 안고 살아온 게 간단히 해결될라고...' 허탈한 기분이었고 다시 그들에게 나의 장애를 설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짜증스러웠다.
一人暮らし(3)
라디오 캠페인에 팔십 노인이 얘기한다.
살아 보니 그는 인생은 긍정의 정신으로 자신의 욕망을 다독이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과 조건이 열악한데도 돈을 벌겠다고 애쓰기보다 현실 인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편하다고 말한다. 넉넉한 마음의 긍정적인 생각이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틀린 말이다. 사회는 현실을 부정하고 튀는 생각으로 불만 가득한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발전했다. 채현국 선생이 들었으면 한심한 늙은이라고 호통쳤을 거다. 생전에 선생은 선친이 물려 준 광산의 지분을 종업원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태극기 부대와 어버이연합이 거리에서 가스통을 던지며 생떼를 쓸 때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잘 봐 둬라, 생각 없이 살면 저런 늙은 꼴이 된다.'라고. 현실 안주의 사고와 행동은 사유의 확장은 물론 소극적인 행위를 지향한다. 변화는 더디거나 멈추고 구태를 습속 화하여 새로운 사유는 틈입하지 못한다. 그런 사회에 전망이 있을까. 대가리 터지고 깨지면서 인간의 권리는 조금씩 나아졌다. 기업가, 정치권력이 알아서 노동과 인권의 권리를 대변한 건 아니었다. 여성,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은 피 터지게 싸워서 이만큼의 권리라도 거머쥘 수 있었다. 원시 공동체는 과부나 고아, 장애인을 차별 없이 먹이고 보살폈으나, 국가주의 앞에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무리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강도와 깊이를 더했다. 성가시고 지저분한 존재, 병적인 비정상의 존재로 여겨져 사회로부터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유태인을 비롯하여 같은 아리안족임에도 반체제 인사, 정신병자, 장애인을 사회에서 격리시켰다. 국가의 차별 정책은 제국주의자와 식민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등 국민과 이등 국민, 제 삼의 지대로 나눠질수록 등급은 피지배와 학대의 서열이었다. 그러나 인류 생존의 열쇠는 공생과 연대이다.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지구의 생존 기간은 산업혁명 이후 단축되었다. 탄소중립과 재생 에너지 개발과 자원의 순환을 목적으로 각국은 정책을 쏟아내지만 너무 늦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지옥을 물려주게 되었다.
나이 드니 감성보다 이성이 앞선다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는 감성이 이성과 논리를 상쇄하곤 했다. 어쨌거나 감성과 이성은 개인의 차이지 일반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래 살기보다 풍성하게 산 삶은 나이와 상관없다. 노인의 얼굴이 표정 변화가 드문 건 얼굴의 감각 세포가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아온 내력과 성품이 표정을 말하기도 한다.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마치 화난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 표정은 타인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부러라도 웃는 연습을 하면 실성한 사람 취급받지 않을까. 산울림의 노래 중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헤어짐이 헤어짐이 서럽다'는 가사가 있다. 난 죽는 것도 헤어짐도 두렵거나 서럽지 않게 되었다. 살아 겪어도 미욱한 사고는 무감각을 키운 모양이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대로,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대로 한 번뿐인 삶이 서럽고 고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유럽과 남미, 선진국과 후진국의 역사, 문명의 차이를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순전히 환경의 산물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환경이 구성원(민족 등)에 대해 우연한 선택이라면 이는 역사의 작동 기제와도 맞아떨어진다. 역사학자 오항녕은 역사는 시대의 환경적 조건과 인간의 의지, 그리고 우연성에 의해 서술된다고 했다. 농업이 발달하여 문명이 생성된 이집트와 중국은 이후 역사의 단계에서 유럽에 밀렸다. 그것을 환경과 의지, 우연으로 설명한다면 생태 오염과 기후 변화로 죽어가는 지구의 조건도 어쩌면 빅뱅 이후 우주의 먼지로부터 탄생한 초록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물이 생기면서 뜨거웠던 지구가 식고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의 진화로 문명이 형성된 지구의 끝은 소멸이라는 종점을 향해 달린다는 것이다. 문명의 성공, 과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이 없었다면 비참한 지구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마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분명한 건 생물종의 일부분인 인간 종이 타종을 멸절시키고 끝내는 자신도 자멸에 이른다는 우주의 동화라는 것이다. 아무도 알거나 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 풀잎 이슬 한 방울에도 우주의 섭리를 깨닫는다. 오늘 새벽 길가에서 본 이름 모르는 들꽃 하나에, 공중을 나는 새의 날갯짓에서 생명과 죽음의 깊고 위대한 섭리를 본다. 초라하고 미미한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또 얼마나 거대하고 비천하냐. 행복은 연기(演技)해서도 연기(延期)해서도 안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기 뜻대로 사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혁명은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다.' 정해진 역할이란 습속이나 습속이 정해준 가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르소나를 벗어던지는 순간 신세계를 경험한다. 내가 택한 천 개의 페르소나가, 습속이 던져준 세상의 화두와 불화하고 그들이 날 받아주지 않는다면 내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一人暮らし(4)
검색하니 장애인 신청이 반려되는 사례가 나온다. 분명 척추의 통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함에도 장애의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등급 외장애 판정이 났다. 등급 외장애라니. 탈락 아닌가. 장애는 현재 상태가 일상에 얼마나 장애가 되는가의 판단이지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일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병증의 원인이 다양하듯이 장애의 원인도 부지기수다. 나는 뜨거운 물에 덴 삼도 화상으로 손바닥의 살과 근육이 근위 지관절(제1지관절)과 붙어버려 손바닥을 펴지 못하게 됐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활짝 펴지 못하는 장애다.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고 해외 취업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했다. 위로 도약하는 사회생활의 터닝 포인트에서 매번 의욕이 꺾이는 걸 숨겼다. 꼭 장애가 원인은 아니지만 신체의 결함은 삶의 갈림길에서 중심부를 벗어나 주변을 맴돌게 했다. 외향과 내향이 비벼진 성정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감정의 곡선이 거칠게 널 뛰었다. 감정의 기복은 섬세한 사유를 부추겼지만 결과가 늘 좋았던 건 아니다.
네 살 된 아들이 작은 손으로 사과를 집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오른손이 할 일을 왼손이 도맡았다. 왼손의 부하는 결국 인대 파열을 불렀고 수술하기에 이르렀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애썼으나 알만한 사람은 알아채고 눈감아주었다. 동정이 아닌 조건의 인정이었으나 난 떳떳하게 말하지 않고 넘어가 그들에게 미안한 심정이 되곤 했다. 부모형제는 애써 외면하는 눈치였고 나중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때는 그들은 나의 오른손을 모르고 살았다. 무얼 하다 무심코 오른손을 주문하기도 했는데 짜증이 났다. 잊거나 모르는 건 그들 마음이니 아무래도 좋다. 내 문제는 내가 안고 삭이는 것이다. 몇 가지 상황을 제외하면 큰 불편 없이 살았다.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쳤다. 피아노와 아코디언, 피리나 색소폰 등 손가락을 사용하는 악기는 피했다. 할아버지의 형질을 물려받았는지 형제들은 악기를 곧잘 만졌다. 사촌, 조카까지 음대를 나온 이가 꽤 된다. 성인이 되어 제일 낭패스러운 건 악수였다. 초면이거나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반드시 내밀고 잡는 악수는 내게 큰 짐이었다. 살짝 손끝을 잡는 정도라면 별문제겠으나 서로 꽉 잡아주는 악수는 신뢰와 우애를 다짐하는 행위다. 펴지 못한 내 오른손의 경직을 순간적으로 알아채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이고 굳이 눈이 커지며 곁눈으로 손을 살피는 사람도 있다. 내 조건을 아는 사이의 사람은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풀었다. 악수를 부러 청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악수는 내가 꺼리는 행위가 되었지만 반가울 땐 나도 상대의 손을 세게 잡아준다.
중학교 때 한쪽 다리에 보장구를 찬 친구가 있었다. 대퇴부에서 발까지 걸쳐 로봇처럼 찬 보장구는 걸을 때마다 절그럭대며 소리를 냈다. 소리는 쇠사슬을 끌고 나타난 「크리스마스 캐럴」 스크루지 영감의 유령을 닮았다. 친구는 우리가 축구할 때 끼어 함께 공을 찼고 놀리면 끝까지 따라와 등짝을 때리곤 했는데, 우리는 녀석의 끈질김에 혀를 두를 정도였다. 친구는 신체의 불편함을 넘어 우리와 같이 뛰어놀고 싶었던 거였고 우리는 그런 녀석을 친구로 인정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러면서도 왜 다리가 그런지 뛰거나 걸을 때 아프진 않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친구의 내밀한 상처를 드러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악수하거나 술잔을 잡고 술을 마실 때-술 마실 때 하면 될 것을 '술잔을 잡는다'로 쓴 건 오른손으로 술잔을 드는 건 불편할뿐더러 상대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미안해서다- 부러 오른손에 시선을 피했다.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무감해서인지 오른손의 장애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하려고 장갑을 낄 때 제일 곤란을 겪었다. 오른손은 장갑이 완전히 들어가지 않아 엉성하고 어긋난 모양새다. 그래도 일했는데 실장갑이면 몰라도 고무장갑이면 상태는 더 힘들었다. 광산에서 일할 때는 코팅된 고무장갑을 끼는데 손가락이 반밖에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나는 지금도 벙어리장갑을 선호한다. 가죽장갑이 멋있고 좋아 보여도 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할 일을 왼손이 도맡아 해 주어서 결국 왼 어깨 인대 수술까지 했다. 지금은 프로야구에도 왼손 타자가 흔하지만 골프를 처음 배워본다고 7번 아이언 사려고 종로 골프숖을 한참 헤매고 다녔다. 거의 오른손잡이 용이었다. 훈련과 연습은 구 할까지 신체 능력을 끌어올린다. 그러니 구태여 왼쪽 오른쪽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축구도 양발잡이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선수라면 이미 성공이지만. 매만지고 더듬는 건 언제나 왼손의 몫이다. 세밀하고 섬세한 쪽은 오른손이었다. 숟가락이나 붓을 잡는 건 오른손이었지만 힘쓰고 일하는 건 왼손이었다. 왼손의 노동 강도가 엄청났지만 여자를 만지는 건 왼손에 대한 보상 같은 거였다. 항상 여자의 왼쪽에 누웠다.
一人暮らし(5)
의사의 소견서는 우수는 엄지를 제외하고 폐용(廢用)에 가깝다고 했으며 신전(伸展)이 불가능하다고 판정했다. 씨발, 버려도 될 손을 지니고 입때껏 살았다니. 읍사무소에서 장애인 등록 신청서를 접수했다. 담당은 일찍 퇴근했고 대신 접수한 키 큰 공무원은 심사 등록 완료까지 한 달 이상은 걸린다고 했다. 어쨌거나 가을이면 장애인 복지카드를 손에 쥔다. 폐용에 가까운 놈이 사람의 마을에서 살아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폐용에 가까운 손으로 밥을 먹고 연장을 잡고 일했다. 기타를 치고 손잡이가 달린 술잔을 들었고 주먹 쥐고 샌드백을 쳤고 철봉을 했고 글을 썼다. 장애는 사람을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 중도 실명으로 청력과 후각이 발달되는 예는 흔하다. 나는 정상성을 향해 몸부림쳤지만 정상성의 '정상'은 관념으로 존재하는 가치일 뿐, 어디에도 비정상과 정상의 변별은 모호하다. 중심부를 벗어난 경계의 사유와 행위가 오히려 모두를 아우르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잘하고 못하고나 잘생기고 못 생기고의 차이, 미추와 호불호는 개인의 차이일 뿐 그것이 가치나 서열을 매기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난 나의 장애를 지니고 오랜 시간을 지냈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살았다. 그러나 정체성이란 실체 없는 허상에 가까웠다. 사람은 부모의 유전형질을 물려받지만 성격과 인품의 형성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한다. 그래서 고정 불변의 정체성보다 캐릭터로서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본다. 삶은 생성과 변화, 성장과 소멸이라는 사이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은 몸의 물질이 반걸음 앞선다. 존재 이후에 사유하니 그렇다. 미리 생각하고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데카르트는 그래서 좀 모자랐다. 몸과 정신은 생성과 변화, 성장, 소멸을 숙명으로 지닌다.
말복 지난 강변도로가에 개미취가 만발했다. 여름의 절정에서 한풀 꺾인 폭염이다. 짙은 초록의 명암을 품은 숲은 성장한 입성을 툭툭 털고 매만진다. 살랑이는 강바람에 숲의 치맛자락이 살짝 들린다. 중금속이 흐르는 물에선 잉어가 주둥이로 돌을 들추며 먹이를 잡는다. 인간 세상은 애처롭거나 시끄럽거나 말거나 강의 생명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도태되었다. 여름은 지겹도록 덥고 건조했고 습하고 메말랐다. 단비처럼 소나기가 내렸고 간신히 껍데기만 젖은 땅에선 깨꽃을 피우고 키 작은 참깨 송이가 달렸다. 가문 땅에서 난 작고 보잘것없는 수확이지만 생명을 어루만지고 노래한다. 복원과 지속 가능은 먼 훗날의 사전에선 사라진 낱말이 될지도 모른다. 무서운 상상이 현실이 되는 후대에게 지옥을 물려주느니 번식을 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꽃과 동물이 사는 지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우냐. 교잡이 다양성을 이루고 혼잡이 순일함을 제치고 건강한 생명이 났다가 사라지는 초록별의 모습은 또 얼마나 위대하냐. 슬기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지혜로 모든 것을 망칠지도 모른다. 재생 에너지의 개발과 확산은 더워지는 지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인 IPCC는 6차 보고서에서 지구 온난화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고 하며 늦기 전에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닥치는 건 재앙뿐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서 허가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신체의 장애가 없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는 중요한 상상이 아니다. 길의 과정이 어떠하더라도 환경과 조건은 불변하고, 더 나은 삶의 층위란 주관적인 행복의 척도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은 다른 길을 걸었겠지만 어쨌거나 너무 많이 돌아온 느낌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난 아직 살아서 또 다른 독신생활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말복 지나자 공기 색깔이 달라졌다. 남중국의 기후를 따른 절기인 입추는 진작에 지났지만 폭염은 계속되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24절기는 수도인 베이징이 있는 허베이 지방을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 베이징과 서울의 위도 차이는 닷새 정도의 기후 차이이지만, 대륙성 기후인 베이징과 반(半) 해양성 기후인 우리와의 차이까지 고려한다면 한 보름쯤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러니까 입춘 보름 후, 입추 보름 후부터 본격적인 봄과 가을 날씨로 접어든단 뜻이다. 팔뚝이 찐득하도록 땀이 솟던 게 사라졌다. 기온은 삼십 도를 넘어도 바람결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딱딱 장작 타들어가는 아궁이 열기 같던 바람에 시원함이 섞였다. 새벽에는 선풍기를 끄거나 홑이불을 덮어야 했다. 계절은 쉼 없이 오고 가는 거지만 유난히 더운 날씨가 이어져 몸과 마음이 녹아나도록 지친 탓인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외려 뜨악할 정도가 됐다. 네 시 넘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는 금세 젖어 빗물이 흐른다. 흙과 매연 가루가 섞인 검은 먼지가 빗물에 밀려 아래로 흐른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가라앉아 쾌적한 기분이 되었다. 내일은 강변 초소 근무다.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하려면 이차 병원 이상에서 전문의의 진단서와 소견서를 받아야 한다. 장애는 정신장애와 지체장애로 대별되고 정신장애는 다시 발달장애, 자폐장애, 정신장애로 세분된다. 지체장애는 신체의 외부와 내부로 나뉘어 다양한 장애로 세분한다. 외부의 장애 형태는 지체, 뇌병변, 시각, 청각, 언어, 안면장애 등이다. 지체장애도 세분하면 절단 장애, 관절 장애, 지체 기능장애, 변형장애로 나뉘는데 내 경우는 관절 장애다. 병원에서 진단서, 소견서, X-ray사진 등 구비서류를 갖추어 지자체 사무소에 신청서와 함께 제출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심사한다. 소요기간은 한 달 남짓이다. 장애 심사가 등급외 판정으로 반려되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재판정 없이 심사 결과 장애 등급이 판정되면 공단에서 지자체로 통보한다. 장애는 중증(1급, 2급, 3급)과 경증(4급, 5급, 6급)으로 구분하며 1~3급은 일정의 장애 연금이 나온다. 지자체는 심사 결과를 신청인에게 통보하고 신청인은 지자체에 장애인 등록과 복지카드(통합카드)를 신청한다. 소요기간은 이 주 정도. 장애인 복지카드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는 장애인의 경제 활동으로 인한 수입에 비해 제한적이다. 자동차 관련 세금 면제 및 할인, 이동통신료 할인, 공공시설이용료 면제 및 할인, 기차, 선박 요금 할인, 의료비 지원, 고속도로 통행요금 할인 등이다. 장애인이 자신의 자동차를 등록하려면 신분증, 운전면허증, 장애인 증명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등록되면 장애인 차량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동통신요금 할인을 받으려면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등록해야
하며 기타 장애인 혜택을 받으려면 사전에 복지과에 문의하는 게 낫다. 내 경우는 차량, 군내 수영장 이용료, 통행료, 이동통신료 할인 등이 전부인데, 무주택 장애인이 공공 임대주택을 신청할 경우 청약통장 없이 바로 신청이 가능하다. 비정상이라기보다 신체적 약자인 장애인은 경제적으로도 빈곤한 삶이다. 까다로운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다 포괄적인 부면에 대한 혜택이 아쉽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258만 명이고 전체 인구수의 5% 수준이다. 장애는 선천적 장애 비율은 10%이고,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비율은 90%다. 그러니까 100 명 중에 장애인은 5 명이고 그중에 네 명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누구나 장애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이다. 주거권, 이동권을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답답하다. 시혜적 생색내기로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차별 인식만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매일의 일정과 한 달, 연간 계획은 하는 일과 비례한다.
기간제 일의 시작과 끝나는 지점까지의 계획은 가시적인데 비해 그 후의 일정은 자유롭고 불투명하다. 인간이 시계와 달력,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신체도 시간을 몸에 새기게 되었다. 평생 직장인이 은퇴하고 나서도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고 주말이 되면 평일과 다른 느낌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자는 것처럼 인간의 몸과 하루, 사계절, 일생은 춘하추동의 리듬을 탄다. 그러니 늙어서 노익장이나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노인을 보면 안쓰럽다. 젊음과 패기는 낡은 몸 위에 입히는 금박이 아니고 탱탱하게 빛나는 살갗 위와 어울린다. 패기와 열정은 실패와 도전의 함의가 숨은 보석 같은 시절이기 때문이다. 살아온 인생을 몇 줄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삶의 고백에 대한 용기를 토해내지 못하면서 청춘을 갖겠다는 욕망은 애잔하고 유치하다. 열정과 치기는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라. 만약 코로나가 숙진다면 가을부터 실내 수영장에 다닐 생각이다. 퇴근 후 수영하고 나면 잠이 잘 올 것 같다. 연말에 기간제 일이 끝나면 남도로 내려가 독거생활을 시작하는 게 현재 계획이다. 생각대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살다 삶이 끝나면 좋을 것 같다. '모란 동백'의 가사처럼 어느 바닷가 모랫벌에 고요히 잠든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