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페인트나 그림물감의 원료로 쓰이는 황토를 오커(ochre)라고 한다. 이 오커로 만든 가장 오래된 그림이 발견됐다.
8일(2018년) ‘사이언스’, ‘가디언’, ‘BBC’ 등 주요 언론들은 5만 18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오렌지 색 오커로 그린 그림들이 보르네오 섬 동쪽 칼리만탄 지역에 있는 루방 제리지 살레이 동굴(Lubang Jeriji Saléh cave)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벽화 안에는 동남아시아 들소 반텡(banteng) 등 야생 가축들이 그려져 있었다. 발굴 팀은 이 그림이 이전에 가장 오래된 벽화였던 인도네시아 동부 술라웨시(Sulawesi) 섬의 벽화보다 4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스 레터 이강봉 객원기자]
고대 인류는 자신들의 바람, 일상을 동굴의 벽에 새겼다. 인간은 표현하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한다. 예술의 장르 중 회화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그림은 질료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어릴 적 땅바닥에 막대기로 그린 기억은 누구나 있다. 유치한 그림이었지만 꿈을 그리기도 했고 어린 일상을 표현했다. 막대기로 금을 그으면 너른 땅이 생기기도 했다. 가난했지만 꿈은 풍성했다.
화실에서 화우의 그림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낀다. 그림은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지만 화가는 그릴 대상을 정하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타인의 그림이나 자연의 풍경을 그리더라도 해석은 자신의 몫이다. 범박하게 말해서 못 그린 그림, 망친 그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다 만 그림에도 작가의 사유가 묻어난다. 작가는 자신의 희구와 이상을 그림에 담아낸다. 때론 눈물과 고통, 쾌락의 흔적이 묻어 있다. 화판에 붙인 마스킹 테이프를 뜯어내는 순간, 작품을 액자에 넣는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모두의 관점이 된다. 작품을 해석하는 이에 따라 그림은 천 갈래의 새로운 세계로 부유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화우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의 사유를 곰곰 떠올린다. 숲 속에 앉힌 집, 투명한 물에 잠긴 돌, 담장에 드리운 능소화, 하나둘 피어나는 물가의 수달래,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 흙을 뒤집는 소의 커다란 눈망울, 양치식물에 둘러싸인 폭포 시원한 물의 낙하! 여리디 여린 푸른 장미의 입술에서 평온한 낙원을 잇는 사유를 엿살핀다. 종이에 물을 바르고 물감의 성질을 알아채 붓의 스트로크를 익히는 과정은 기능적인 부면이라도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다. 기본기에서 변칙이 나오듯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는 언젠가 불거져 나올 터다. 삶을 살아내는 건 누구도 아닌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절대로 못 그린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는 사람의 성향과 단계를 파악해 회화의 방향을 이끌어준다. 상투적인 시선, 진부한 색감의 조합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상상을 부추긴다. 그것은 일상의 지리멸렬한 클리셰(cliche')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유의 방법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전위 예술은 후대에 가서 인정을 받았지만 때론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처럼 터무니없는 시기와 질투에 희생당하는 경우도 있다. 화실의 화우들은 그림을 즐기고 삶을 즐긴다. 그림을 통한 공통의 행위로 만난 사이지만 때로는 함께, 때로는 따로 혼자만의 행위를 즐긴다.
말이나 글, 회화나 음악과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는 얼마나 엄숙하며 아름다운가. 욕심을 낸다면 섬을 떠날 때까지 섬의 풍광을 죄다 담아가고 싶다. 언젠가 숲 속의 오두막에서 바다를 상상하며 그리는 행위 또한 나의 도락이니.
창조성은 도전과 위험의 부재와 공존할 수 없다. 창조는 모험을 동반하고, 모험은 위험을 감수한다. 도전과 위험의 기피, 안락함, 자기도취는 창조성의 소멸을 반증할 뿐이다.
국문학자 이정선은
'예술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제작자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의 안목과 상상력에 있다. 예술 작품의 의미는 한 가지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나는 사람의 인식에 의해서 다양하게 창출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인류의 문명과 문화, 역사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상상을 통해 꿈을 키우고 절망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사랑하고 이별하는 법을 배웠다. 예술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의 막바지다. 생명과 평화, 절망과 사랑까지 잇는 국면을 빼놓고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실을 오가며 나는 언제나 얼마 남지 않은 꿈에 대한 상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