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51)


'도대체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은 역사 이래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온 가장 잔혹한 말일 거다. 동굴에서 나와 여느 날처럼 사냥하던 인류는 느닷없는 불세례에 놀라 달아나면서 이렇게 외쳤을 거다. 혁명을 도모하다 형장으로 끌려 나온 사람은 하늘을 보고 이렇게 말한 뒤 절명시를 부르짖었다.

이런 상황은 엇나간 상황이다. 멍청한 인간은 즐거운 인생을 살다 떠나고 진지한 인간은 우울을 앓다 떠난다. 희망을 잃은 자만이 현실과 망상을 구분할 줄 안다. 현실주의자의 현실 인식은 기회와 차별, 불평등과 탐욕에 적응하는 것이고 진실과 먼 현실은 망상을 애인처럼 끼고 살지만 소나기가 지나기 전 망상은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본능과 신념은 끝없는 역설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교활하게 이용하면서 거짓을 신념화한다. 신까지 속이는 마술을 부리는 게 인간 종이다.


화실에서 나와 수영장으로 가는 길은 성숙한 봄볕이 질펀하게 널렸다. 섬의 풍경은 곳곳에 이방인과 원주민이 냉면의 고명처럼 떠다닌다. 육수 같은 바다 위에 관광객이 면발을 딛고 기웃거린다. 꽃이 진 바닷가의 숲은 빛의 이동에 따라 에메랄드 색깔이었다가 채도가 떨어진 초록으로 바뀌곤 했다. 방파제에는 매일같이 낚시꾼이 쓰레기와 생선을 낚는다. 해초를 대어로 착각한 낚시꾼의 흥분은 파도 앞에서 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인생을 착각한 어떤 놈은 마치 자신이 왕의 핏줄을 타고났다고 믿어버린다. 도대체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대중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가족에게 자루째 칼을 바쳤다. 칼은 대중의 손목을 자르고 잘린 자리에서 냄새나는 각성의 싹이 돋아난다.


접이식 침대를 사고 내내 고민한 것은 차 뒷좌석에 실을 수 있는가였다. 자로 잰 다음 샀는데 우습게도 고민은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자르고 늘이고 할 것 없이 차에 쏙 들어갔다. 놀라운 건 침대를 넣고도 운전석 공간이 넉넉했다. 긴 시간 다리를 구부리고 허리 세운 채 운전하지 않아도 된 거다. 문제는 크기와 무게가 만만치 않아 혼자서 삼층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차에 구겨 넣는 과정이 엄청날 거다. 택배 기사가 문 앞에 배달했을 때 고생했다는 말을 했는데 젊은 눈동자는 숨을 고르지 못하고 멍하게 볼 뿐이었다. 일이 너무 고되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예초기라면 자신 있었다. 인력공사로 일을 다닐 때 지방의 도라지밭으로 뽑혀 나갔다. 봉고차에 탄 아줌마들은 가는 동안 눈을 감고 자는 시간을 벌었다. 하나뿐인 남자인 나는 도착하자마자 도라지 묵싹을 베었고 트랙터가 밭 뒤집으면 아줌마들이 따라가며 도라지 뿌리의 흙을 털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뜨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옆에서 보던 아줌마가 딱해하며 고추장을 내밀었다. 찬물에 고추장을 풀어 밥에 말아 마시니 먹을만했다. 광막한 광야 같은 도라지밭을 뛰어다니며 칼날을 휘두르고 소금 같은 일당을 챙겼다. 낡은 차가 길에 눕지 않는다면 침대는 당분간 이사 목록의 첫 줄에 오른다.


예술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생명 행위다. 새가 목청을 가다듬어 노래하듯 인간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고 고단한 노동 후 춤을 췄다. 삶을 위로하는 예술은 그래서 감동과 함께 걷는다. 어릴 적에 '빨간 마후라'를 극장 간판에서 보고 비행사의 꿈을 키우기도 했고, 꾸벅꾸벅 졸던 이발소에서 초가집 마당을 쪼는 닭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한국 전쟁 때 피난지 부산의 시민 체육대회에서 장교 신분으로 복싱 동메달을 딴 아버지는 아들 셋에게 틈만 나면 권투를 시켰으나 결국 도장에 나가 복싱을 시작한 건 삼 형제 중 막내인 나였다. 복싱을 그만두고 철학에 빠져 방황하던 고등학생은 책을 안고 산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시간은 얼마나 빠르고 공허한가.

역사의 흐름을 관통하는 개인의 궤적은 모래알처럼 덧없이 쓸려 간다. 그중에서 밥을 버는 일은 개인의 삶을 정리한다. 뒤늦게 국문학을 전공하고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떠돌았다. 중선 배를 타고 우윳빛 동지나해에서 그물을 당겼다. 남도의 보리누름에 경운기를 몰고 고물을 사서 밥을 벌고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다 도시로 들어갔다.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광고회사로 옮겼다. 광고 카피를 쓰고 광고 시간 구매 업무를 십 년 동안 했다. 도시의 삶은 심신을 갉아먹기에 맞춤이었다. 사십 대 초반 어린 남매와 영문 모르는 아내를 이끌고 시골로 내려갔다. 밤하늘의 별은 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항상 배가 고팠다. 아연 광산, 숯가마,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 무렵 시는 내게 위로를 주었고 많은 글쟁이들을 만났다.


나무 자격증을 따서 산판 일을 하다 강원도로 떠났다. 먹고살기 위해 정착한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수목 관리를 하며 십오 년을 사는 동안 아이들의 발목은 굵어졌고 나이 들었다. 무엇으로부터의 강요를 받지 않을 나이가 되었어도 일상의 질긴 덩굴손은 허리부터 친친 감았다. 아내의 고향인 경북 내륙으로 돌아와 기간제 일을 번갈아 하며 가라앉는 나를 느꼈다. 바깥공기의 유혹이 가슴을 후벼 팠다. 이룬 것도 이뤄야 할 것도 없으니 짐은 가볍다. 여축없으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었다. 배만 고프지 않다면 지금도 일보다 쉼이 낫다고 생각한다. 반성과 사유는 고독한 공간에서 문을 여는 법이다.


시선의 틀에 박히지 않는 색감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선생의 말은 명언이다. 모사와 베끼기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에게는 자전거의 보조 바퀴 같은 역할을 한다. 보조 날개를 떼고 훨훨 공중으로 도약하는 새는 비로소 자신의 근육으로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자신만의 사유를 비행한다. 갈매기 조나단은 다른 새보다 높이 날아 자신의 하늘로 떠났다. 시집을 내고 시 쓰기 그만두면서 잡문을 쓰기 시작했다. 문자불립(文字不立)이다. 깨달음은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잡문은 쉴 줄을 모른다.


섬에서 사 개월을 보냈다.

적잖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하며 지낸다. 그들의 일상에서 난 갑자기 불거진 이방인이지만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행성의 이방인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벗어나긴 힘든 일일 터. 삶의 무늬는 제각각이어도 부지런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아간다. 부러운 대목이다. 친소(親疎)와 호불호는 강요할 습속이 아니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종종 그것이 관계의 진전이라 착각한다. 적당한 거리는 적당한 삶이니 관계는 자유롭다.


육지에서 섬은 다리가 없을 때는 배로 건넜을 터다. 전쟁과 가난은 선대의 짐이었고 지금 사람들은 돈 벌 궁리에 골몰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종교는 신의 복음을 근거로 인생의 답을 전파하지만 우연히 태어난 존재인 생명에 답이 있을까.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삶의 국면을 살아내는 과정을 즐기다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을 마치고 섬의 서쪽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주고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먹으려다 붓을 쥐고 종이 한 장을 망친다. 역시 그림은 어렵다. 타투이스트의 산문집을 뒤지면서 그의 아픔에 공감하기도 졸기도 하다 오후가 지났다. 내일은 어린이날. 수영장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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