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53)


3km를 헤엄쳤다.

65분 내리 수영하는 건 지루하다. 트림이 나오고 하품도 나온다. 내가 지금 물속에서 팔다리 저으며 나아가고 있나 의심이 든다. 온실 속에서 수영하는 것 같다. 짠물이 튀는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다. 목구멍으로 소금물이 들어오고 파도가 몸을 굴리는 바다는 수시로 표정을 바꾼다. 동해 모랫바닥을 뒤져 조개 잡을 때 파도가 몸을 빙글빙글 굴린다. 마치 거인이 소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굴리듯이. 조개를 양손에 쥐고 솟구치면 물살이 몸을 굴린다. 양수에서 구부린 태아처럼 몸은 부드럽게 떠다닌다. 물속에선 고깃배의 엔진 소리가 헬리콥터처럼 따다다 다 들렸다. 인간은 대양의 구석구석을 다 아는 것 같아도 현실은 수면을 미끄러지는 소금쟁이에 불과하다.


3km 기록을 세웠으니 이제 수영장에서 오랜 수영은 삼가기로 한다. 이십 분 일 키로 수영이 적당하다. 수영하는 동안 옆 레인에서 물 차던 사람들이 하나둘 샤워실로 달려가고 초등학교 수영부 아이들의 강습이 한 시간 지났다. 인사할 때 사내아이에게 발로 차는 시늉을 했던 선생은 물속에서 아이들에게 동작을 가르친다. 허리에 부이를 찬 아이들이 줄지어 물장구를 친다. 퐁당퐁당 물소리가 명랑하게 수영장 지붕을 울린다. 물 위에서 한 시간은 길고 지루하다. 레인을 오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주말 동안 집에서 솔숲을 그려 보기로 한다. 거북이 등짝 같은 소나무 껍질을 묘사해 볼까. 바늘잎처럼 돋아난 솔잎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리한다. 솔밭에 들비치는 광선은 어떻게 처리할까.


사과나무 적과(摘果)하느라 어깨가 아프다는 사람에게 난 적과 할 사과나무도 없다고 했다. 대신 조심하라고 덧붙였다. 적화(摘花)와 적과는 발음을 조심해야 한다. 저콰와 저꽈의 차이는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일꾼으로 불려 간 사람의 차이만큼 크진 않을 거다. 고단해도 먹을 수단을 가진 사람은 굶어 죽을 형편은 아니다. 몸으로 벌어먹는 사람의 몸이 닳거나 부서지면 무덤으로 들어간다. 인간은 죽기까지 일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치매는 일을 모르니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먹이고 보살피는 건 거룩한 행위인 동시에 양자에게 고통스러운 행위다. 삶의 속내는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궁금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증폭된다.


섬에서 하는 일은 수영과 그림 그리기, 책 보기와 밥을 끓이는 게 전부다. 한량의 독거 생활이다. 여자는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다. 여자는 이성 친구로 남아도 족한데 사람은 자꾸 몸을 훔쳐보는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몸과 정신은 등이 붙은 쌍둥이와 같을진 몰라도 생각과 목적은 다를 수 있다고 믿는 게 나이 들어 얻은 깨달음이다. 여자의 붉은 입술은 보기만 해도 가슴 뛰고 향기가 옮는다. 꽃을 따는 건 농부의 밥벌이지만 보면서 즐기는 건 신선의 경지라고 위로한다. 섬에 내려와 동백꽃처럼 붉은 입술의 여자를 가까이서 보았다. 나도 그림을 감상할 수준이 되었다.


샌드라 거스가 쓴 「묘사의 힘」은 인물의 배경을 소설의 첫 장에 쓰는 걸 경계하라고 한다. 인물의 배경을 친절하게도 구구절절 늘어놓으면 독자는 책을 읽어 나갈 흥미를 잃는다.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건 주인공의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꿈틀대는 행위에 있다. 여자는 생명 지향적이고 평화 지향이다. 여성성에 그것이 새겨졌다. 남자는 다분히 파괴적이고 폭력 지향인데, 권력 추종의 심리가 그것을 대변한다. 역사의 수많은 전쟁에서 여자가 언급되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양가의 심리는 내포된 바 어느 쪽의 성향이 강한지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다양한 렌즈에 투과되어 나타난다. 여성은 위대한 게 아니라 여성성은 위대하다. 시몬느 드 보봐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라고 한 건 가부장적 사회에서 배제와 차별의 비가시적 존재인 여성을 말한 거다. 나이 들어 여성성을 깨달은 건 나의 둔함 때문이다.


잡문을 끼적이는 동안 한승헌 선생의 부음 기사를 보았다. 영화배우 강수연도 죽고 악인도 죽었다. 세상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건 생성과 사멸의 자연법칙이다. 악인의 죽음은 유족의 몫이지만 의인의 죽음은 세상의 슬픔이다. 아, 어쩌자고 죽음의 사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냐. 정작 사라져야 마땅한 것들 끈질기게 살아남아 반생명, 반인간의 저지레를 토악질하듯 쏟아내고 있는데.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오래전 먼발치서 맹수처럼 외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외침은 평화의 땅으로 건너가는 꿈틀대는 붉덩물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잡것들의 세상은 여전히 독 오른 뱀처럼 혀를 날름대며 활개 친다. 그들은 갈 데까지 간 고해를 죽어도 하지 않는 신념을 갖고 산다.


배는 고파 오는데 밥 생각이 없다. 못 말리는 습속의 하나가 입맛의 진부함이다. 부모로부터 이어져 온 입맛을 아내가 전수한 탓이 크다. 군내 나는 소리지만 어제는 남은 김치찌개에 라면 수프를 넣고 물을 더 부어 두부를 썰었더니 훌륭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먹고 남아 아침 밥상에 다시 올려 깨끗하게 비웠다. 김치찌개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없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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