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54)


노인이 구석에 앉아 몸을 닦는다.

수영장 풀에서 그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탈의실에서 막 들어와 수영을 하기 전에 샤워하는 걸까. 그러기엔 꼼꼼하게 비누칠을 하고 때수건으로 정성 들여 박박 문지른다. 마치 겨우내 목욕 한 번 하지 않은 것처럼 검버섯이 군데군데 찍힌 늘어진 피부를 사정없이 문댄다. 수영 모자를 벗고 가방에서 때수건을 꺼내 샤워기 앞으로 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웃는 얼굴인지 무표정인지 모르게 노인은 벌린 입으로 나를 보다 혼잣말 같은 신음소리를 웅얼거린다. 그건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 시원하다를 연발하는 노인 특유의 추임새 같은 거였다. 나는 픽 웃으며 돌아서 샤워기 꼭지를 틀었다. 한가운데 맞춘 샤워기에서 마침맞은 온도의 물이 콸콸 쏟아졌다.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물로 씻어낸 다음 때수건에 비누를 문지르느라 돌아서다 다시 그를 보았다. 이번엔 비누 거품이 잔뜩 묻은 때수건으로 사타구니를 문댄다. 한 손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정성껏 문지르는 게 꽃잠을 준비하는 사내를 닮았다. 정확히 샅 아래 회음부를 세게 문지르는 노인을 보자 다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소리가 나는지 노인이 내쪽을 보았는데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남자끼리라도 돌아서서 해도 될 걸 굳이 남 다 보도록 광고할 건 아니 잖은가. 나이 들면 체면도 예의도 희미해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 반. 얼른 집에 돌아가 수영복을 널고 모임에 나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물을 털고 수건을 꺼내 닦았다. 탈의실에 박 씨는 보이지 않았다. 출근 전인가 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생존 수영을 배우러 나오면서 붐비지 않는 아침 시간에 수영하러 오니 관리인 박 씨와 마주치는 일이 없어졌다. 며칠 안 보이자 그가 전화를 했다. 어찌 된 일이냐고 통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아침 일찍 나간다고 하자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섬에 내려와 보이지 않는다고 전화 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반갑고 고마웠다. 생존 수영이 없는 토요일에 보자고 했다.


가까운 거리라도 차로 다니던 길을 터덜터덜 걸으니 시간이 걸리고 다리가 무겁다. 바다가 보이는 수변공원까지 걸어서 십여 분 걸리지 싶었다. 시외버스 터미널 지나 우체국을 지나고 오르막에 있는 주민센터를 지나자 머리에서 열이 난다. 모자를 손가락에 걸고 느릿느릿 내리막을 걸었다. 평소에도 오가는 사람이 뜸한 길은 흐린 하늘에서 내려오는 약한 광선이 드문드문 깔렸다. 후박나무 가로수는 초록색 꽃을 달고 기세 좋게 새 순을 밀어낸다. 버스 종점 앞의 종려나무에 조 이삭처럼 생긴 꽃이 달렸다. 손으로 잡으니 부서져 흩어진다. 섬에 내려와 자주 눈에 띄는 나무 이름을 알게 됐다. 더 이상 진도는 나가지 않고 매일 주변에서 자주 보는 나무만 복습하듯 눈길이 간다. 수변공원에는 생울타리로 심은 홍가시나무와 돈나무, 먼나무가 밀생하고 비닷가 산기슭에는 팔손이나무, 돈나무, 후박나무가 씨가 떨어지는 대로 싹을 틔우며 자란다. 양지암 등대 가는 솔숲에는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데 굵게 뻗은 몸통이 보기에 시원하다.


일본 남부에 갔을 때 어느 마을의 이름이 스기타키(杉滝)일 정도로 삼나무가 폭포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방송사 초청의 여행이었는데 일행은 온천을 즐기고 섬 여행도 했다. 시골 처녀처럼 생긴 가이드는 우리가 떠나던 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손을 흔들었는데, 까닭을 물으니 여행사에 취직해서 우리가 처음 맞은 여행객이었단다. 사박 오일 함께 다녔으니 정도 들었으리라. 순박한 심성의 아가씨라고 기억한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노인은 수영을 하러 온 게 아니고 목욕을 하러 왔다. 샤워장에는 냉탕과 온탕이 있다. 때를 불리고 맘껏 씻을 수 있는 터에 수영장에 온 거다. 목욕탕에는 노인 할인이 되는지 몰라도 여긴 50% 할인이다. 몸을 씻고 원한다면 풀에 들어가 팔다리를 흔들어도 좋다. 물속 걷기로도 운동이 되니. 관리인 박 씨에게는 성가실지 몰라도 노인은 한참 머리를 굴린 끝에 수영장을 찾은 것임에 틀림없다.


요즘은 주민센터나 노인 복지관, 문화원 등의 교양 강좌가 많다. 하지만 사람은 각인각색이라 마땅치 않은 사람도 있다. 남과 어울리기 싫은 노인은 외롭다. 배우자가 없다면 더 고독하다. 찾는 이 없는 독거노인이라면 고립된 섬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늙은이에게 선뜻 말 건네거나 관심의 눈길은 드물다. 모두 제 할 일에 몰두하기 마련이다. 도시의 도서관에는 노인들로 붐비지만 독서를 취미로 하는 노인은 드물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에게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자식도 그들의 삶을 산다.


강릉 살 때 소용되는 물건을 사러 차를 타고 도시를 돈 적이 있다. 조금 전에 거리를 어슬렁대던 노인을 반대편 길에서, 한참 뒤 다른 거리에서 걷는 걸 본 적이 있다. 갈 데 없이 친구도 없이 종일 거리를 쏘다니다 집에 돌아가는 노인이란 느낌이 들었다. 노인은 빈곤과 질병, 외로움의 세 가지 짐을 안고 산다. 여기에 더해 '무위(無爲)'를 추가하기도 한다. 가난하고 아픈 데다 친구마저 없는 삶, 게다가 이룰 것도 할 것도 없는 삶은 얼마나 지독한 입장이랴. 매일 보는 반찬을 밥상에 올리고 텔레비전과 동무하고 시간을 죽이는 일상은 인간을 지치게 만든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미래가 없다고 믿는 청년들도 삶을 마감한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을까.


보상 심리와 연령주의에 빠진 노인의 꼰대질은 어제오늘의 얘긴 아니지만 노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노인도 각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삶을 꾸리는 존재는 죽기까지 배우고 깨달아도 모자란 판국에 과거의 습속으로 현실 세계를 해석하기엔 벅찬 게 사실이다. 노인의 특징 중 하나는 고집이다. 살아온 가치관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해오던 것이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믿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기질이 몸에 뱄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늙고 추레한 걸음걸이, 구부정한 등, 처진 어깨 어눌한 말씨, 한 번 말하면 반드시 되묻는 어두워진 귀, 시력을 잃은 눈, 얼굴 전체에 퍼지는 검버섯은 죽음의 그림자다. 활기차게 사는 노인을 주책없다고 하는 것도 노인의 심리 중 하니다. 하루만 지난 정보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시대에 과거의 가치만을 고집하는 노인에겐 설 자리가 좁다. 인정하고 배운다는 자세는 용기와 동의어다. 나이 들었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지만 나이가 훈장은 아니다.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삶을 관조할 순 없어도 현실을 진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건 세대의 문제가 아닌 존재 공통의 과제다.


인생은 짧고 삶은 공허하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고 진리는 더욱 아니다. 겸손하며 예의를 지키는 건 인간의 고상한 기질 중 하나다. 다양성과 변화를 인정한다면 나이 들어도 삶은 지루하거나 지옥 같지 않다. 물론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부류는 따로 있지만, 노인이기에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란 말은 아니다. 성장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매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공기에서 짠 내가 풍겼다. 고개를 들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빨간 등대가 보인다.

오늘 모임 장소다. 서양화반 봄철 야유회다. 데크 주변 흐린 바다에 해녀가 물을 차고 자맥질을 한다. 수변공원에 흔한 까마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산책객 없이 썰렁하다. 오늘 하루는 어떨까. 쿵쿵 포구를 떠나는 고깃배의 엔진처럼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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