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55)


집에서 나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방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뒤지다 졸리면 그대로 엎어져 자기도 하고 생각나는 대로 잡문을 끼적이다 커피 물을 올린다. B군에서처럼 일하는 중이었다면 시간을 죽이느라 애 좀 썼겠지만 놀아도 시간은 터보 엔진을 단 자동차처럼 날개를 달고 지나간다. 일주일 지나도 전화 한 통 오지 않고 걸 데도 없다. 대신 집에서 개의 근황을 알리는 톡을 받거나 sns를 열어 보는 게 바깥 소식의 전부다. 그건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선 철저히 고독을 안주삼아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상황을 즐긴다. 고독은 씹을수록 맛이 나지만 고립은 독약처럼 쓰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하늘의 표정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흐린 날과 햇볕이 투명한 날의 차이는 뚜렷해서 일단 바닷가에 나와 서성이는 사람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흐린 날은 여간해서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지 못한다. 비 오는 날은 최악이다. 바람까지 합세하면 수변 데크에는 고양이 그림자조차 얼씬 하지 않는다. 파도가 쓸고 온 쓰레기와 해초가 한데 뒤섞여 포구로 밀려든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솔숲의 어딘가에서 숱한 눈동자들이 털을 세우고 음습한 추위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수영과 그림은 독거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음먹은 거였다. 3km 장거리 수영을 완주했고 그림은 문화원 화실에서 연필 소묘와 채색을 배우는 중이다. 삼백을 넘겨다 보던 당 수치는 반으로 떨어졌고 불룩했던 뱃살은 편평해졌다. B군으로 돌아가 시를 쓰는 의사를 만나 놀랄 표정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섬에 내려와 두 가지는 거지반 애초의 생각을 실천한 셈이다. 수영과 그림을 계속할 수 있는 동기를 얻은 것에 만족한다.


집으로 돌아가 일을 구하든 아내 눈치 보며 공밥을 얻든 진부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예전의 일상과는 결이 다를 거라 느낀다. 반년 넘게 홀로 지낸 섬 생활의 경험과 기억이 나의 몸에 새겨진 탓이고 섬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의 기억이 무시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페펭(Charles Pe'pin)은 '우리는 타인들에게 의존한 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만남이란 우리 인생에 덧붙여진 장식품 같은 것이 아니며 부차적인 소품 같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만남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며 우리의 인격을 빚어내기까지 한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평생 경험하게 되는 모험의 중심에 '만남'이 자리 잡고 있다.


만남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고 세상으로 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만남이 지니는 힘과 신비로움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나는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고 타인과의 만남을 필요로 한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연한 탄생과 우연한 만남, 우연한 사건으로 직조된 외투를 걸치고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일월 초 차에 살림을 구겨 넣고 이방인으로서 틈입한 섬은 낯선 풍경과 함께 낯선 사람을 안내해 주었다. 다른 세계와의 충돌은 상대도 마찬가지로 충격이다. 환대와 외면, 받아들임과 추방은 만남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행위의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대의 만남이란 충분히 조건과 계약 위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위의 '추방'이란 극단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일면 평온하거나 냉정한 듯 보이지만 사람은 자기중심에서 일 미터만 벗어나면 타인의 생각과 모습은 시계(視界)에서 사라지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염려할 건 없다. 다만 우연한 만남을 추슬러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태도라면 삶에 대한 진지함과 맞닿는다고 본다. 아, 돌이켜 보면 나는 얼마나 많이 맞닥뜨린 만남을 어이없게 허물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나이 들수록 변화한 성정으로 보아 그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모호한 부사어나 형용사를 피하고 역동적인 동사나 구체적인 명사를 활용하여 문장에서 '말하기'보다 '보여주기'를 도모하라는 편집자이자 작가인 샌드라 거스의 말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각인각색이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살아가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섬사람들은 평온하고 따스하다.

날씨에 따라 표정을 바꾸는 바다처럼 너울이 일고 방파제의 거대한 테트라포드를 날려버리는 태풍이 일상을 덮칠 때도 있지만 정주민(定住民)이나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나 대체로 바다의 표정에 기대고 산다. 여러 곳을 다니며 경험한 바로는 환경이 사유에 미치는 영향은 크고 깊다. 단순 대입해서 산지로 둘러싸인 내륙과 탁 트인 평원이나 광활한 바다를 대하며 사는 사람의 생각의 결은 차이가 있다. 문화 인류학적으로 보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문명 문화의 발달로 그런 틈새는 여러모로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내륙이나 섬이나 공통된 것은 생존의 사냥터에서 살아남으려는 욕망과 욕망의 충돌이 거센 물살을 탄다는 거다.


나는 말보다 보여주는 것으로 삶을 살았다.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걸 경계하지만 대화의 상대가 없는 지경인 여기선 벽에 대고 하는 말이 주절주절 늘어난다. 문자 불립(文字不立)의 글을 끼적이다 보면 원고지 이십 매는 가볍게 넘어선다. 쓸 말보다 버릴 부스러기가 한가득이다. 섬에서 겨울과 봄을 맞았고 여름으로 달려간다. 먹고사느라 욕망하느라 끌탕하며 애면글면 살아서 남을 건 무엇일까 곰곰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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