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과 질서
가족 대화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할매와 관련해서 ‘규칙과 질서’하면 생각나는 게 뭐죠?“
현우오빠와 승호오빠는 담배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들을 보면 할매가 담배를 달라고 했다며. 지혜언니는 가족이 모이면 할매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을 회상했다. 윤정언니는 술자리에 있는데 할매 이야기에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명휘는 누구 하나 토 달지 않고 할머님이 계실 때 5층에 모인 거라고 답했다. 우리의 기억 속 할매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 기억에는 하나의 규칙과 질서가 되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5층에 모인다. 우리 가족은 할매가 있는 5층에 모인다. 할머니가 안식에 든 지 2년이 더 지났지만 우리에게 5층은 ‘할매집’이다. 오래오래 할매집으로 불릴 거다. 그리울 거고. 할매와 우리 사이에 규칙과 질서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생에서 2년을 제한 모든 순간을 함께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규칙도, 질서도 없다.
그럼에도 현우오빠와 승호오빠가 입을 모은 담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윤정언니와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할매의 흡연. 윤정언니는 담배를 피우고 뒷정리가 되지 않는 할매의 모습이 싫었을 거다. 나는 치매기가 있는 할매에게 도움 되지 않는 행위여서 싫었다. 물론 우리는 비흡연자였으니 그랬겠지. 그래서 흡연자인 오빠들을 보면 “현우야 담배 도(줘)”, ”담배 하나만“ 했을 거다. 승호오빠는 할매를 위해 담배 반 갑을 한편에 두고 갔다. 아쉬운 건 윤정언니가 먼저 발견하고 할매가 못 보게 숨겼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할매는 승호오빠에게 윤정언니 욕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대화방에 “ㅋㅋㅋㅋㅋ”를 남발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할매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그날도 자연스럽게 현우오빠를 보고 담배를 찾았다. 늘 그랬듯 나는 현우오빠를 보며 손사래 쳤지만 그날따라 더 주고 싶어 하는 내색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게 할매의 마지막 담배 한 개비가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현우오빠는 “그때 안 줬으면 평생 후회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할매와 오빠들의 규칙과도 같았던 담배 한 개비가 참 다행히도 후회로 남지 않는다. 그날따라 더 주고 싶어 했던 현우오빠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던 과거의 나에게.
광훈오빠의 말처럼 우리를 보면 “밥 먹었나?” 물어보던 반복적인 물음도 할매에게는 또 하나의 규칙이었겠구나. 누군가가 그랬었다. 할매의 치매가 당신의 안녕보다 우리의 안녕을 묻는 것이 아니냐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반복되는 물음이 그림자에 가려졌다가 결국 그리움이란 피사체로 남게 될 것을. 일상과 삶에 스며든 할매의 챙김 한 마디, 주름진 손길 하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규칙으로 남았다. 우리만이 기억하는 영순할매의 규칙. 당신의 부재를 통해 비로소 깨닫는다. 당신이 만든 규칙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향유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