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의 작은 방 안에서 종종 하는 생각이 있다. ‘집에 가서 하자 이건. 집에서 생각하자 이건. 집에 가면 마음도 대충 정리되겠지.’
마음은 어떤 곳에 정착하지 않으리라는 걸 귀신같이 안다. 몸은 물갈이를 하고, 코를 훌쩍이고, 피부가 뒤집어지며 새로운 곳에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마음은 도통 그럴 생각을 않는다.
곧 떠날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은 어딘가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다닌다.
도시는 보통 대부분의 이들에게 고향이 아니다. 도시는 본래 한밤중의 가로등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고, 우리는 불나방처럼 도시로 향한다, 저 마다의 이유로.
그래서 도시에는 으레 이방인이 있다. 이방인이 없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다. 도시 곳곳에는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생기고, 그들이 어울리는 시간이 생기곤 한다.
이런 도시의 이방인들은 힘겹기 마련이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들을 힘겹게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결여된 소속감이다. 그들의 마음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한다. 두고 온 고향도 떠나왔다는 이유로 더 이상 그의 마음이 자리잡을 곳이 아니며 살고 있는 도시는 더욱 그렇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자신의 상태, 자신의 처지, 안착하지 못하는 마음, 그런 것들이 이방인을 슬프게 한다.
생각해보면 <이곳은 내가 머물 곳이 아냐, 이곳은 내가 속한 곳이 아냐>라고 느낀 건 비단 타이페이라서는 아니다.
기숙사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집에서 나와 산 그 순간부터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주중의 학교와 주말의 집 중 어디도 내 공간, 내 마음의 집, 진짜 내가 머물 곳은 없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며 그런 생활은 이어졌다. 일상의 도구들, 나의 옷가지와 온갖 가재도구, 생필품들은 이동 궤도를 따라 흩어져 있었고 그것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했다.
나는 시간에 따라, 할 일에 따라, 필요에 따라 이동했고 나라는 사람은 그 궤도의 중간 지점 같은 거였다. 그렇게 줄곧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타이페이에서 느끼는 감정은 내가 서울에서 느끼는 감정과 같았다. 다만 서울에서는 보다 자주 본가를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에 왜인지 강도가 약했지만.
어쩌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어딘가로 끝없이 소속되고자 하는 이방인의 여정일 수도 있겠다. 그게 삐까뻔쩍한 명함이던, 청춘을 나눈 집단이던, 나를 정의내릴 수 있게 해준 활동이던, 내가 머물 곳이라는 위안을 주는, 마음이 자연히 내려앉는 곳을 끝없이 찾아나서는 이방인.
이곳에 와서 꽤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겨울이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언젠가 생길 진짜 나의 공간에 대해, 내 마음의 집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시 어딘가의 자그마한 방에 대해, 영원히 머물 마음 한 켠을 내줄 나의 반려자에 대해, 이방인의 처지를 벗어나게 해줄 그런 것들에 대해.
그런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마음이 머물 곳을 찾은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