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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Jul 26. 2020

이상적인 배움을 향하여


오랜만에 지도 교수님과 화상 미팅으로 만났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기 전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만났었다. 교수님의 통찰력을 오로지 내가 독차지할 수 있는 금쪽같은 한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기 위해서 미리 질문 목록을 만들어 가곤 했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여름 학기 동안에는 정기적 미팅을 쉬기로 하고 필요한 연락은 이메일로 대신해왔는데, 며칠 전에 보내드린 코로나로 인한 연구 계획서 수정본에 대하여, "만나서 얘기하자"는 반갑지만 내심 불안한 답신을 받은 참이었다.


어느덧 5개월째에 접어드는 재택근무 및 화상 미팅과 온라인 강의는 이제 지겨울 만큼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2D 스크린 건너편의 상대방과 꼬박 한 시간 동안 의견을 주고받는 일은 코로나 이전의 3D 미팅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그럼에도 그 한 시간을 꽉 채워서, 마지막 1분까지 나는 질문을 했다. 교수님의 다음 미팅에 참석하는 학생이 로그인을 하고서야 인사를 드리고 미팅을 종료했다.


매번, 교수님들과의 개별적인 미팅을 하고 나면, 휴우- 하고 큰 숨을 몰아 쉬고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신입생 시절에는 자괴감과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으로 꽤나 복잡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서 대낮부터 맥주 캔도 따고 그랬다. 그렇다고 신입생 딱지를 떼고 후배가 생겼다고 해서, 몹쓸 자괴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평생 동안 한국에서 경험한 "교육"과 그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것 같은, 그러니까 내가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의 교육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지금도 낯설고 부담스럽고 어렵다. 이런 부적응이 나이가 많아서인지, 영어가 짧은 유학생이라서인지,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서 늘 결론은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닌가 봐"였다.






대학원생의 모든 수업은 3시간짜리 토론 형식이었고, 그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강의를 맡으신 교수님이 미리 엄선해 주신 참고 논문 서너 편 정도를, 그러니까 최소 100여 페이지 정도의 영문을 읽어야 한다. 하나같이 학계에서는 유명한 연구 논문들인 데다, 구구 절절 옳은 말만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아, 그렇구나"하고 내용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렇게 수업에 들어가면, 읽은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 시간의 대부분은 글을 읽는 동안 떠오른 질문들을 공유하고 같이 생각하는 토론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 눈치를 살펴보아도, 그런 대단한 글을 읽는 동안 동의할 수 없는 부분,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없을 수도 있다는 옵션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글을 읽으면 질문할 거리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공개 질문으로 테이블 위에 던져 놓고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동안 집단적으로 합의된 어떤 생각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과정이 "수업"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강의를 맡은 교수님들은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이 아직 접하지 못한 어떤 지식을 설명해 주는 역할보다는, 학생들이 공유하는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을 명확하게 재진술 해주거나, 이론이나 다른 연구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맡아하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학생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경청하신다. "방금 그 말,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 줄래?"하고 질문도 하시면서. 그렇게 3시간 내내 떠든 것은 학생들인데,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학생들 머릿속에는 각자 나름의 지식과 관점이 슬그머니 자라나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유학생이라서인지, 소심한 성격이라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질문을 하는 것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런데다, 내가 던진 질문들을 나중에 반추해 보면 깊이가 없었다. 점점 '이런 질문을 해도 괜찮은 건가' 싶은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고, 가능하다면 질문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수업 참여자가 되는 길을 택하곤 했다.


그랬다. 나는, 평생 동안 공부를 해왔어도,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지도 교수님은 나의 대학원 생활 첫 일 년 동안 연구에 대해서도 수업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대치를 정하지 않으셨다. 공부를 하겠다고 한국을 떠나 온 것이지만, 생활이 통째 바뀌어 버린 급격한 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 이곳에 잘 적응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지금부터 나의 한 시간은 모두 니 꺼야"하시면서, 소심하게 움츠러 있던 나의 기를 살려주는 데에 그 시간을 쓰셨다. 조금씩 나는 '이런 질문을 해도 괜찮은 건가'라는 자체 검열을 하지 않고도, 지도 교수님께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의견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질문들에 깊이가 생겼냐 하면 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교수님이 나의 연구 계획서 수정본에 대해 만나서 얘기하고 싶으셨던 것은, 일방적인 "이만하면 되었다", "여기 여기 설명 좀 더 보충해라", "이건 아니지"와 같은 평가와 피드백을 제시하기 전에, 나의 연구 계획을 본인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교수님이 나의 연구 계획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계획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잠깐 가벼운 수다를 떨고 난 뒤, 본격적으로 교수님의 질문이 쏟아졌다. 교수님이 하신 질문들은 네, 아니오로 대답한 뒤 의견을 덧붙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나의 생각과 근거와 논리를 모두 끌어와야 하는 논술형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은 아니었다. 대부분, 나의 계획서를 읽으시는 동안 질문이 떠올랐던 지점을 같이 펼쳐 놓고, 나의 의견을 물어보셨다. 나의 대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미팅 50분째에 접어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아.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나의 연구 계획서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깨달았다.


그제야, 연구의 이론적 배경이라는 관점을 의식적으로 장착하고 연구 방법과 인터뷰 항목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면서 총체적 일관성을 점검해보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교수님의 통찰력에 기대고 싶었던 나는, 부끄러운 질문을 하고야 만다. "A 방향으로 수정할 수도 있고, B 방향으로 수정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은 어느 쪽을 추천하시렵니까?" 굳이 변명하자면, 어느 방향으로도 연구는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연구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을 보고 계시다면 조금 더 의미 있는 방향을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었다. 교수님은 그저 웃으시면서, "더 추가해야 하거나 고쳐야 할 내용은 없어. 이미 필요한 내용은 다 담겨 있어. 잘 다듬기만 하면 돼. 아까 말한대로 이론적 배경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연구 문제와 인터뷰 항목을 살펴봐" 하고, 다시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스스로 찾도록 하셨다.


여전히 토론식 수업에 질문할 거리를 가져가는 일은 부담스럽고, 권위 높으신 교수님께 질문과 조언을 구하는 일은 긴장되고 어렵다. 떼어 놓으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자존심과 자괴감으로 앞으로도 여러 번 맥주캔을 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닌가 봐"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쳐 버리기에는, 나는 이미 배우는 사람이 배움의 주체가 되는 배움의 맛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

미국에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고,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처음이라, 이곳에서의 경험을 다른 곳과 비교할 능력은 없어요. 한국에서 학생으로 18년을, 교사로서 12년을 보낸 뒤에 경험하는 미국의 한 교육 대학원 생활은 문득문득 제대로 배우는 일과 제대로 가르치는 일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곤 하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이지만, 같은 마음으로 교 육을 고민하는 분들과 "이상적인 배움을 향하여" 매거진을 통해 조금씩 공유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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