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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Mar 24. 2023

슬픈 외국어

그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요즘 듣고 있는 뇌과학 박사님의 팟캐스트 에피소드 중에서 집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골랐다. 학교 연구실까지 운전하면서 잠깐 시작 부분을 듣고, 시간이 나는 대로 짬짬이 들으면 요즘 한참 산만해져 버린 머릿속을 좀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팟캐스트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제 겨우 인간의 본능적인 학습 욕구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뿐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조금 더 듣고 나면, 어쩌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사고를 전환하고, 습관을 바꾸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겠지, 기대가 되는 한 편,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시큰해져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집중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본인의 뇌를 다루고 연습해야 한다는 도입 부분이었다. 어릴 때에는 일부러 집중하거나 의식하지 않더라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고 오래 기억하게 되지만, 25세가 되면 그 능력이 드라마틱하게 사라진다는 박사님의 설명 중에서, 유독 25세가 괜히 더 또박또박 크고 선명하게 확대되어서, 끝내 마음이 따갑다고 느끼고야 만다.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영어였다. 그때까지 두 달 이상 길게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었기에 나의 영어 실력이란 관광지 식당의 메뉴판과 토익, 토플 시험 성적표 사이의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 정도였다. 영어로 책을 읽는 것도 느릿느릿했고, 듣기 시험의 또박또박한 발음이 아닌 영화 속에서 온갖 억양과 속도로 쏟아지는 영어가 귀에 들어올 리도 만무했고, 영어로 글을 쓸 일이 당최 어디에 있었겠나, 그러니 대학원 합격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만큼 나의 보잘것없는 영어 실력이 걱정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첫 학기, 한국인의 밥정을 쌓으며 가끔씩 점심을 같이 하고 신입생의 고충을 들어주던 선배가 있었는데,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신입생에게는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내공 충만한 3년 차 박사생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한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학교에서도, 심지어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기에, 나는 그녀가 부럽다고 말했다.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언어로써의 영어를 제대로 배웠을 테고, 벌써 미국에 온 지 3년이 넘었으니까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영어에도 익숙할 테니까 말이다. 그때 그녀가 말했었다, "영어 잘하게 되는 건... 다음 생에서나 기대해 봐야죠. 이번 생은 글렀어요." 


그렇다. 그녀도 스물다섯을 한참 넘긴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이제 '겨우' 몇 년을 지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미국생활이 자연스럽게 가져다 줄 영어 실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이 외국으로 1년씩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에 영어 학원에도 취직하고, 외국계 회사에도 취직하고 하더라 싶어서, 1년이면 내 영어 실력도 꽤 멋있게 늘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 친구들은 20대에 어학연수를 했던 거고,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차이라는 것까지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그녀보다 더 오래,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그녀의 그 말이 겸손이 아니라 사실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영어는 다음 생에서나 잘하기를 기대해야죠."를 어떤 톤으로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에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녀의 말은 전혀 슬프거나 쓸쓸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그저 담담하게 어떤 사실을 전하는 사람처럼, 아무런 감정이 깔려 있지 않았다. 미국 생활 5년 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원어민 같은 완벽한'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를 대하는 마음이었다고, 깨닫는다.






몇 학기 전, 지도교수님과 온라인 수업 준비를 같이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2주에 한 번씩 새로운 주제로 학습 내용과 과제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학생들에게 발행하기 전에 틀린 부분은 없는지, 링크나 파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같이 점검하곤 했다. 한 번은 교수님이 쓴 인트로 부분에, "Making lemons out of lemonade"라는 표현이 있었다. 잠시 멈추어 생각했다. 흔히 쓰는 표현은 "Make lemonade out of lemons" 아닌가.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라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그것을 기회로 삼으라는 의미로 식상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인데, "레모네이드로 레몬을 만들라"라고 쓰시다니.


고백하건대, 나는 교수님이 쓰신 이 표현이 뭔가 색다른 재치와 위트가 담겨 새롭게 유행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연구뿐만 아니라 문학 소설도 가까이하시고 언어 감각이 남다르신 분이라 줄곧 동경해 왔기에. 하지만 다시 문장을 읽어보면 문맥상으로는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야 맞는데.


한참 망설이다가,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이것저것 피드백 이메일을 쓰면서, "그런데 레모네이드로 레몬을 만든다는 것은 요즘 나온 새로운 표현인가요?" 하고 덧붙였다. 당연히 교수님은 푸하하 웃으시면서, 본인의 실수를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문장을 고쳐 쓰셨다.


모르면 물어볼 수 있고, 헷갈리면 확인할 수 있고, 뭔가 어색하면 어색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영어를 제2 외국어로 쓰는 입장에서 "내가 뭐라고" 싶어서 망설이게 되는 것은 그저 내 마음이 선을 그어 놓은 자격지심일 뿐이다. 설령 "레모네이드로 레몬을 만들라"는 것이 요즘 새로 나온 유행어라고 할지라도, 다른 학생들이었다면,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말을 꺼냈을 것이다. 이거 잘못 쓰신 거 같은데요? 하고. 그리고 만약에 교수님이 잘못 쓴 게 아니라고 한들, 그렇군요! 몰랐는데 오늘 하나 배웠네요! 했을 것이다.


영어에 대한 나의 자격지심과 부담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서 인지, 가끔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난 어쩌면 정말로 레모네이드를 쥐어짜서 레몬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유학생 에세이 콘테스트에 짧은 글을 제출했던 것이다. 영어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좀 내려놓고 싶기도 했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려는 기획 의도도 멋져 보였고, 무엇보다 딱딱한 논문이 아닌 조금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영어로 써보고 싶기도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기분으로, 주말 커피숍에서 야금야금 글을 쓰고 다듬어 제출했는데, 베스트 대학원생 에세이로 뽑혔다.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 피해 갈 수 없을 온갖 형태의 혼란스러움도, 인생이 주는 레몬으로부터 레모네이드로 만들어가는 과정도, 참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 나만 유별나게 겪는 것이 아니며, 그런 마음이 버거울 때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챙기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에세이에 레모네이드 이야기를 쓴 건 아니고, 미국에 와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살아가는 일이 그 이전 챕터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며, 너무 조급하게 자신을 미국 스타일로 바꾸어야 하는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원어민처럼 화려한 스피치를 할 수는 없더라도,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차오르는 값진 선물인가. 이 소식을 들은 나의 지도 교수님은, 이전에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I know you are a great writer!"라고 외치셨다. 그녀도 나를 작가,라고 불렀다.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스스로를 가두어 놓던 영어에 대한 자격지심을 인지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또 몇 년이 걸린 것 같다. 인정한다고 해서, 영어가 더 잘 된다거나 소심함이 사라지거나 그렇지는 않다. 대신,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 때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영어에 대해 날을 세워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25세 이전에 유학 온 학생들처럼 어디선가 '주워들은' 표현을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되는 기적 같은 경험은 일어나지 않지만, 괜찮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우아하게 돌려 말할 수 있는 표현을 듣게 되면 슬그머니 메모를 해 두고 연습해 본다.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은 다음 생애에나 기대해 볼 일이겠지만,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영어에 대한 나의 목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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