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좋’이 ‘느낌이 좋다’의 줄임말로 쓰인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친구들을 만나서 “이 카페 느좋이다. 이 커피도 느좋인데.”라고 얘기했더니, 그들은 ‘너 또 늦었구나.’라고 말하는 듯 측은한 눈빛을 내게 모았다. 이제 그 말은 안 쓴다고 했다. 이제 막 써보기도 전에 지나간 말 대신, 그들은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을 알려줬다. 왜 세상에는 감도 안 오는 줄임말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며, 내가 알기도 전에 금방 사라져버리는 걸까. 내가 ‘느좋’을 처음 듣고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지었던 표정이, 딸에게 스몰웨딩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부모님의 표정과 비슷했을까.
부모님께 스몰웨딩을 처음 말했을 때, 두 분은 처음 들어보는 줄임말을 듣는 것처럼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난 아주 작게 하는 결혼식이라고 대답했다. 일반 예식장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식당을 빌리고,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서 소박하게 한 끼를 같이 먹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 거기서 끝나지 않고 조금 더 말을 이어갔다. 드레스는 안 입고 하얀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굽이 높은 구두는 불편해서, 발이 편하고 굽이 낮은 구두를 신을 거예요. 꽃장식은 너무 화려하고 비싸서 아예 생략하거나 화분만 몇 개 놓을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직접 다 할 거예요. 예물과 예단도 생략하고 싶어요.
나의 속사포 랩 같은 말에 부모님의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했다. “그래도 괜찮은 거니? 한 번 있는 결혼인데 괜찮겠어?” 오랜 침묵을 깨고 엄마가 입을 열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게 가장 편하고 사람들도 혼란스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나오는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많으면 좋은데.” 엄마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엄마를 보며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내가 추구하는 결혼을 부모님도 이해해주길 바라는 고집 센 딸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목에 힘을 주고 외쳤다.
“요즘 유행이래요!”
두 분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주 오래전부터 스몰웨딩을 생각했다. 만약 결혼한다면 아주 작게 하고 싶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결혼식에 갈지 말지, 축의금은 할지 말지, 한다면 얼마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웠다. 난 서로의 이모저모를 재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짧은 식에서 잠깐 인사를 하고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과 마음을 내준 것에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 우리에게 커다랗고 화려한 곳은 어울리지 않았다. 소박하고 작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직접 찾아보지 않아서 몰랐던 건지, 정말 내가 말한 대로 유행이 된 건지, 주변에서 스몰웨딩을 했다는 얘기가 간간이 들려왔다. 유행에 어두운 내 귀에 들어올 정도면, 확실히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스몰웨딩을 하는 것 같다. 동생의 건너 친구는 홍대 카페의 옥상을 빌려서 테이블을 놓고 야외 바비큐 파티를 하며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사촌 오빠는 직계 가족만 모여서 조용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거로 결혼식을 대신했다고 했다. 아빠 친구의 딸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식을 올릴 거라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신한테 어울리는 결혼식을 진행하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상견례를 하는 날이 왔다. 양가 부모님이 처음으로 만나는 날, 기혼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분위기가 어색해지자마자 바로 음식을 넣어줘서 어색함을 무마해줄 수 있다는 한정식 코스요리를 내는 식당을 예약했다. 숫기 없는 부모님을 걱정했던 난, 생각보다 활발하게 이야기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새로 알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서로 칭찬을 주고받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음식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계속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야기는 흘러 ‘스몰웨딩’으로 이어졌다.
“둘이 스몰웨딩을 한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양가 부모님은 서로에게 번갈아 물었다.
“두 아이의 결정이 중요한 거니까요. 고집 센 것도 알고. 둘이서 잘 해낼 거라 믿어요.”
우린 괜찮아도 상대편에서 섭섭해하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부모님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한시름 놓은 표정이 된 부모님들의 얼굴을 보고, 우리도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결혼 전에 예물이나 혼수 문제로 싸운다는, 내가 그동안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은 우리 곁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와 그가 비슷한 사람으로 통했던 것처럼, 우리 집안과 그의 집안이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의 결정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고집이 센 자식들을 이기지 못한 부모로 살아왔기 때문에, 소신을 지키고 밀고 나가는 힘을 가진 자식들이라는 걸 알기에, 부모님들은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이렇게 양가 부모님들에게도 우리의 스몰웨딩을 알리고,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만큼은 생략하지 말자고 두 손을 붙잡고 얘기했던 게 딱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