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드메의 세계에 온 당신의 선택

by 천소이

예전에 연예인들이 가상 결혼을 한다는 내용의 ‘우리 결혼했어요(줄여서 우결)’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그들의 표정과 행동은 다른 연예인과의 열애설이 터져 관심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까지 애청자(그중 나도 있었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뜻밖의 조합으로 커플이 될수록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번 티격태격하고 엇갈리던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며 어긋났던 부분을 맞춰나가고 다정하게 변하면, 그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며 다음 회를 챙겨봤다. 노련한 솜씨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출연자의 매력에 반하고, 서툰 행동과 말로 오해를 만드는 출연자에게 훈수를 뒀다. 어떤 커플이든 전체 구성과 줄거리는 비슷했는데,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색하게 말을 붙이고 공통점을 찾아 나가며 정이 들고, 호감 비슷한 감정이 들면서 친밀해지는 장면을 보면 연애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동료 연예인들과 상견례 자리를 마련하고, 상대방이 일하고 있는 현장이나 복귀 무대에 찾아가서 응원하고, 신혼집에서 요리하는 ‘결혼’ 에피소드는 연애보다 좀 더 깊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우결’에서 하이라이트는 결혼 화보를 찍는 에피소드였다. 여자 출연자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오면, 남자 출연자는 눈을 떼지 못하고 넘쳐 흐르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지는 스튜디오 촬영에서 다양한 콘셉트로 옷, 머리, 메이크업을 바꿔가며 그들은 직업 정신을 발휘했다. 카메라 앞에서 눈빛이 변하는 그들이 작정하고 난 멋지고 아름답다고 뽐내자, 더욱 화려하게 빛나 보였다. 그들이 반짝거리면서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연예인이니까 저렇게 꾸밀 수 있는 거겠지, 라고 남 일처럼 생각하며 순진하게 웃었던 난, 그땐 몰랐다. 몇 년만 지나면 휴대전화 화면에 왕자님과 공주님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맞이할 거란 것을. 그리고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음을.




내게도 ‘스드메’ 문을 여는 날이 왔다. 욕심을 부릴수록 가격은 올라가고, 어설프게 조금 하는 것보다 제대로 다 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주워 담으며 흔들렸다. 결혼은 마음껏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돈을 많이 쓴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것으로 사야 한다고, 일생에 한 번이니까 가장 예쁜 걸 고르라며 소비를 부추긴다. 하늘하늘한 레이스에 둘러싸여 꽃과 보석으로 몸을 장식하고, 여기저기서 기분 좋은 말로 칭찬해주기만 하는데,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마음이 붕붕 떠서, 좀처럼 열리지 않던 지갑이 활짝 열린다. 근검절약을 목표로 살아왔던 나조차도 화려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소비를 절제할 수 있었던 격언이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면서, 흔들리던 나를 붙잡을 수 있었다.


난 드레스를 가장 먼저 제외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드레스에 잠시 시선을 뺏겼지만, 결국 선택한 건 몸에 맞게 떨어지는 단정한 원피스였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내게 딱 맞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단순하고 맵시가 있으면서 파티 분위기가 나는, 우리 결혼식에 어울릴 완벽한 원피스를 선택했다. 심지어 가격까지 너무 착했다. 구두를 사기 위해 또다시 인터넷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굽이 낮은 단화와 운동화만 신어서 말랑한 내 뒤꿈치는 새 구두를 잠깐 신어도 쉽게 벗겨질 정도로 연약했다. 부드러운 재질의 구두가 필요했다.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세상에는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물건이 만들어지고, 늘 어디에나 쇼핑의 유혹이 숨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웨딩”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화려하게 늘어나는 장식과 그에 비례해 올라가는 가격을 수시로 마주쳤다. 내가 찾은 구두는 금박 테가 있는 리본 장식이 있는 2cm 높이의 하얀 플랫 슈즈였다. 폭신폭신한 뒤꿈치 쪽 가죽과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은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줬다.


스튜디오는 얘기하자면 길어서 다음 편으로 넘긴다. 잠깐 언급하면, 우린 스튜디오 촬영을 하긴 했다. 다만, 모든 과정을 우리가 직접 진행했다. 결과는 상상에 맡겼다가 다음 편에서 얘기하겠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메이크업이었다. 그는 나만 받아도 된다고 했지만, 난 둘 다 받거나 안 받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콤팩트 쿠션을 볼에 팡팡 두드리고 아이라인을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섀도를 층층이 겹쳐 눈두덩에 색칠하던 때가 있었다. 내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게 꽤 재밌었는데, 화장이 의무로 바뀌자 지루해졌다. 그리고 화장의 의무에 의문이 들었던 날, 화장하던 손을 내려놓았다. 원래도 보잘것없던 화장 실력은 더욱 초라해졌지만, 얼굴은 제 빛을 찾았으며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가끔 얼굴에 색깔을 넣고 싶을 때면, 화장대 구석에 넣어둔 화장품을 꺼내서 화장을 했다. 얼굴을 가리는 화장이 아니라, 얼굴에 색깔을 넣는 재미로 기분이 좋아지는 화장을 하니, 실력이 좋고 나쁨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식은 좀 달랐다. 내가 어쩌다 한번 하는 화장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고 예뻤으면 좋겠다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우린 둘 다 메이크업을 받기로 했다.


스드메 세계에서 내가 선택한 건, 생략할 건 생략해서 가볍게 만들고 부족한 부분은 한껏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고 두 사람 모두 만족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본 진짜 결혼의 현실은 ‘우결’에서 보았던 달콤한 행동과 로맨틱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진짜 삶이 펼쳐졌고, 매 순간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릴지 선택해야 했다. 스드메의 세계에서 우리의 선택은 앞으로 함께할 여정의 첫 관문이었을 뿐이다. 계속 이어지는 선택에 내성이 생길 무렵, 우린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께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식’을 진행하기 위해 소신 발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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